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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8-31 10:09
가톨릭 신자가 스님께 질문드립니다.
 글쓴이 : 진리의 길
조회 : 234  

저는 모태 신앙인으로 그리스도교(로마 가톨릭, 천주교)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입니다.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나, 진리탐구에 대한 호기심으로 여러 종교들에 관심을 갖기도 하였습니다그러다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다수의 불교 서적과 빠알리어 경전, 불교역사책들을 검토해본 결과 현재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대승 불교는 불교의 이름을 가진 종교(대승에 대한 비판을 할 의도는 없습니다 그저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심이 있을 뿐, 대승불교에는 더 이상 관심이 없다는 의미입니다.)이며2500년전 인도에서 시작된 '고타마 싯다르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어나가고 있는 불교는 상좌부 불교라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그 이후 테라와다 불교에 관한 경전과 수행서적(위빠사나,사마타에 관한 마하시 사야도 파욱 사야도 등등 )들을 집중적으로 탐독하였고 비록 직접 스님을 찾아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으나, 참 진리에 가까이 하고자 하는 유일한 마음으로 '알아차리는' 수행, 특히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행을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어려운 수행을 혼자서만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진리탐구의 길에 이르는 중, 제가 모태신앙으로 갖고 있는 천주교 신앙에서 배운 절대유일한 신- 한분이신 하느님-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고 그저 윤회하는 줄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로만 바라보는 불교의 신관과 충돌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불교는하느님을 경외하지 않는 교만한 무리들인간의 지혜를 통해 스스로 신의 경지에 이르려는 교만한 자들로 생각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 모두가 지옥에 떨어진다고 단죄하지는 않습니다.-  예외적인 상황에서는 그리스도교인이 아닌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그리스도교는 가르칩니다.)

(물론, 세상의 평화를 위해 관용과 존중의 자세로 종교인을 대할 때에는 절대로 위와 같은 생각으로 접근하면 안 되지만, 천주교는 흔히 알려진 바와 달리 종교다원주의가 아닌 , 한 분이신 하느님과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종교입니다. 타종교에 대한 포용적인 자세는 세상의 평화를 위한, 과거 교회의 타종교에 대한 폭력적 배타적 태도가 예수님이 말씀하신 사랑의 가르침과 모순된다는 반성적 고려에서 나타난 것이지, 포용적인 자세가 결코, 다른 신을 인정하거나, 하느님을 포기한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그리스도교가 절대자에 대한 가르침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불교와 달리 그 지향점이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제가 불교서적을 통해 이해한 불교는 먼저, 부처님의 깨달음 -삼법인과 사성제, 고집멸도-팔정도-열반 이라는 현세에서의 고통을 느껴 원인을 파악하고 그것을 소멸하려는 길(지혜)를 알고, 그것을 수행하여 완전한 고통의 소멸로 가는 지극히 현실의 삶에 초점을 맞추어진 깨달음이라고 느꼈습니다때문에 생전에 부처님께서도 깨달으셨고, 많은 제자들이 아라한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현실에 삶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보다는 내세에 더 큰 초점이 있습니다고통이 있어도 그 고통을 해결하기보다는 그 고통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습니다.(구약성경에서 욥기라는 경전 중 한권의 책이 있는데, 사탄이 고통을 욥이라는 어느 사람에게 주면서, 하느님께 욥을 시험할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아 욥이 엄청난 고통(질병, 배신 등등)을 받게 되고, 그 고통 중에도 하느님을 저주하지 않고 그것을 끝까지 인내해 나가는 내용이 있기도 합니다.)  - 다만 이웃의 현실적 고통 앞에서는,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예수님)에게 해준 것이라는 가르침에 따라, 적극적으로 그들과 연대하고 공감하며, 병원을 세우거나 사회복지사업활동에 적극적인 것이 그리스도교의 입장이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도, 병든 비구가 동료들에게 외면 당하여 자신의 오물속에서 뒹구는 것을 보시고, 말 없이 그 병든 비구를 씻기며 행동으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깨달음을 위한 수행과, 타인에 대한 연민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죠. 

인간의 삶은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며인생의 순례를 하느님이 주신 계명을 잘 지키며 특히 예수님이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을 잘 지켜 살아간 자는 사후에 그 행동에 따라 심판을 받아 부활하여 영원한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교를 믿는 궁극적 목적입니다. 현세에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고 고통이 많이 있더라도, 하느님의 뜻에 맡게 사는 사람은 천국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열매는 얻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하느님의 뜻을 고의로 무시한 채로 살아간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죠(참고로 여기서 지옥은, 하느님께서 매정한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을 영원한 고통에 넣기 위해 만들어낸 공간이 아니라 본인의 자유의지에 따라, 본인이 자발적으로 선택한, 하느님과 멀어진 상태를 의미합니다. 천국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데, 주님의 계명을 어기고, 살인, 간음, 도둑질, 거짓증언 등등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세속의 즐거움이나 육체적 쾌락에 빠져 나쁘게 살아간 사람들이 죽는 순간까지도 회개하지 않아서 스스로 걸어가게 된 곳이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본인의 과보에 따라 지옥에 가는 것과 유사한 면이 있습니다. 다만, 흔히 알려진 뜨거운 지옥불이나 유황불, 사탄이 지옥에 떨어진 인간을 고문하는 곳이라는 이미지는 특히 중세시대에 그 고통을 묘사하기 위한 방편으로 널리 쓰였던 하나의 개념인 것이죠.) 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서론이 매우 길어졌습니다.

절대자인 창조주가 윤회하는 어리석은 존재라면과연 그 절대가 과연 절대자인지실제로 절대자가 아닌 그보다 열등한 잡신(?)을 참된 절대자와 혼동하여 그렇게 어리석은 존재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윤회하는 것도 모르는 어리석은 절대자' 라는 말 자체가 모순적인 문장이라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 중에도 자신만의 잘못된 견해에 사로잡혀 자신의 주관을 투사하여 만들어낸 하느님의 상을 갖고,- 무자비한 하느님, 매정한 하느님, 폭력적인 하느님, 나의 소원만들어주고 남의 소원은 거절하는 하느님 등등-

그것에 실망하여 신앙을 잃기도 합니다. 자신의 잘못된 하느님 상으로 올바른 신앙의 길을 걷지 못하고 구원의 가능성도 낮아질 수밖에 없는 비극적인 상황이 당면하게 되는 것이죠.)

쉬운 말로북경은 가봤는데, 베이징은 안 가봤다고 하는 사람,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이해하는데, 덧셈 뺄샘은 할 줄 모른다고 하는 천체물리학과 교수,헌법 제11항을 모르는 헌법소원 청구인의 변호사,낫 놓고 기역자 모르는 국어학자,성경이 몇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줄도 모르는 신학자,무상--무아, 윤회와 팔정도를 부정하는 큰스님처럼 모순적이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상대를 무시하는 주장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혹시, 윤회하는 존재로서의 절대자 창조주가 부처님이 보리수 나무 밑에서 깨달으시고, 중생들이 이해하지 못할까 걱정되어 설법을 주저하셨을 때, 설법을 권했던 그 범천 하느님(?)을 말하는 것인가요만약 그렇다면, 그런 윤회하는 존재의 말을 통하여 부처님의 위대한 가르침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인가요'윤회하는 절대자 창조주'라고 말씀하시는 경전적 근거나 부처님 말씀의 근거를 알고 싶습니다와서 보라는 말이 있듯이, 제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위에서 쓴 내용 중, 부족한 앎의 수준으로, 불교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부분도 명확히 지적해주셨으면 하는 바이고, 불교도가 아닌 저에게 너그럽게 바른 가르침을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진리의 길을 걷고 있는 스님께 지혜에 목말라하는 자가 연민과 지혜의 마음을 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