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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01 09:03
불교와 타 종교의 같음과 다름
 글쓴이 : 붓다락키따
조회 : 297  

불교에 대해서 바르게 알고 공부하는 분과 이야기 나누어 기쁩니다. 모든 강물이 바다로 향하듯이 성경이 흘러가는 곳이 산상수훈이듯이 불교는 팔정도로 모입니다. 이 두 가지 같음과 차이로 이야기하면 더 좋을 텐데, 이것을 벗어난, 나도 정확히 모르는 물음이기에 초점에서 벗어나 내가 알고 있는 불교를 앞세운 수준에서 이야기합니다. 누가 이야기했고, 책에 있다고 해도 자신이 의지하는 종교의 굳건한 믿음에 흔들림 없이 나갔으면 합니다..

세 가지 존재설이 있습니다. 하나는 창조설입니다. 하나는 자연적 설입니다. 하나는 모든 것은 생겼다가 사라진다는 설입니다. 불교는 세 번째 설에 가깝습니다. 우선 불교가 태동되기 전 사유, 지각, 사마타의 세계에서는 신의 존재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불교라는 위빠사나 방식인 모든 것을 긍정과 부정, 상상, 지각, 착각, 유추 없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세계가 있고부터는 신의 존재가 없다는 것이 지혜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렇기에 불교에서는 세상을 창조했다는 창조신에 대해 긍정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그 신을 만든 것은 누구인가? 라는 의문에 정확한 대답과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믿음을 바탕으로 하지 않은 이들을 이해시키거나 설득하기 어려운 대답뿐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창조했고, 인간을 창조한 신이라면 불교에서 말하는 몸이란 28가지 요소로 이루어졌고, 정신적 작용은 52가지라는 것보다 더 자세한 가르침이 있어야 하는데 구약, 신약을 눈을 크게 뜨고 보더라도 비슷한 말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신 또한 인간보다 나은 것은 맞지만 윤회에서 완전히 벗어난 존재는 아니라고 봅니다. 여기에서 세상의 시작을 불교는 무지(어리석음)로 보고 끝을 지혜(닙바나)로 봅니다. 기독교에서도 시작을 어둠(사탄, 원죄)을 물리친 빛으로 보지만 방법론으로 불교는 논리적이며 증명할 수 있는 수행(사마타와 위빠사나) 체계가 있지만 타 종교는 오른뺨을 맞으면 왼뺨을 내밀어라’, ‘내 이웃을 사랑하라’, ‘모든 것 중 제일은 사랑이라며 고린도 전서에서 사랑에 대한 말씀은 있지만, 구체적 실천하는 법은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마치 솜씨 좋은 요리사가 만든 음식만 먹는 것 같고 음식물을 흘리더라도 먹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고 먹여주는 것 같습니다. 여기에서 불교는 음식 만드는 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줍니다. 누구나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요리할 수 있는 법을 자세히 가르쳐 주어 자기 수준부터 최고 요리사가 되는 방법을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가르쳐줍니다.

불교는 개인주의적이고 염세주의적 철학도 불교를 믿는 나라만의 종교가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종교의 부족한 면을 보충하고 구체화하기에 적합합니다. 다른 예로 그 나라의 민속, 토속신앙을 무시하거나 없애지 않고 오히려 부족한 곳을 보충해 주었습니다. 그렇기에 타 종교와 갈등이나 불화를 일으키지 않았기에 이천육백 년간 평화롭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종교라면 벽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종교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주는 마음의 가르침이며 본성의 수련이며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어야 할 것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종교를 말하는 것에는 한계와 오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우선 불교와 타 종교를 비교하는 것은 종교학자라면 몰라도, 부모가 비교, 판단 대상이 안 되듯이 서로 비교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도 굳이 비교한다면, 하나()=, 진리, 실제/ 예수님=부처님과 비교해야 할 것입니다. 같은 목적이라면 행복 추구입니다. 같은 추구지만 다릅니다. 불교는 현재를 중시하고 타 종교는 다음 생을 중시합니다. 불교는 자신(오온)에서 출발해 닙바나(열반)를 종착으로 합니다. 타 종교는 신으로 시작해 신의 나라로 끝납니다. 불교는 원인과 결과 뿐 중간에 개입할 수 있는 것이 없지만, 타 종교도 원인과 결과를 말하지만 중간에 항상 신이 개입하여 은총과 벌로 심판합니다

부처님은 지혜와 자애를 강조했고, 예수님은 믿음과 복종, 사랑을 강조했으며, 부처님은 무조건 따르지 말라 했지만 예수님은 신, 예수에게 예배를 주장했습니다. 부처님은 자신(오온)에 대한 이해를, 예수님은 믿음을 강조하며 활동했습니다. 반대자들을 대하는 것에도 차이를 보입니다. 부처님은 참을성과 지혜로 수용하셨고, 예수님은 단호히 대했습니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과 제자들과의 관계에서도 부처님=제자들이 같다고 했습니다. 신은 주인, 예수님은 신의 아들, 교인-신의 종이라는 수평적 사고와 수직적 사고의 차이가 있으며, 그 당시 시대 상황을 대처하는 것에도 방법적으로 다르게 문제를 풀었습니다. 부처님은 지금도 남아 있는 카스트 제도와 사회에 동의 안 하셨지만 직접 변화보다는 진리(실제)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 어리석음을 알게 하고자 했지만, 예수님은 신의 개념과 불일치한 사회, 문화를 부정했기에 부딪침이 있었습니다.

불교는 이 세상의 모든 불행과 고통이 신이 만들고 역사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본성을 망각하고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강과 산, 바다가 쓰레기 더미로 변해 기온 변동이 일어난 것이 신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가짐으로 봅니다. 이것의 해결 방법 역시 자신을 다스리는 것에 달려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기적이고 폭력적이며, 감각적 욕망과 성냄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상대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을 안 사람은 자신이 싫은 것은 상대도 싫다는 것을 알아 남과 상반되는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모든 생명의 삶은 인과의 법칙이나 마음 법칙의 지배를 받습니다. 이 법칙이 우주는 지배하는 것이지 신이 우주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지혜의 종교인 불교입니다.

종교가 자신을 위해 있는가? 자신이 종교를 위해 있는가? 종교를 위해 있다면 구원받고자 믿음만 강해지고, 자신을 위해 있다면 괴로움과 불만족에서 벗어나고자 지혜가 강해질 것입니다. 이 두 가지 길 중 선택하여 묵묵히 실천으로 이어졌으면 합니다.


진리의 길 18-09-03 20:21
 
스님! 답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제가 불교에 대해,
책을 통해 알아 가고자 했던 지난날의 노력이
마냥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앎과 수행은 동일한 것이 아니고 저의 앎으로 불교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역시 잘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달아주신 답변을 읽고나서
부처님이 말씀하신 '중도'의 길과 연관지어 생각해봐야 겠다는
직감이 들었지만, 시간을 갖고 스님의 답변을 곰곰이 더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것이 평생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스님께 대한 예의라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번 답변에 감사드리며, 다음에 또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