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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9-17 09:03
마음은 아는 것이며 대상에 따라 일어났다 사라진다.
 글쓴이 : 붓다락키따
조회 : 219  

1) 명상을 하면서 호흡, 신체의 움직임, 여러 감각들을 알아차릴 때 이것은 마음이 물질을 알아차리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6문중에서 '마음이 생길 때', 이 알아차림의 대상은 마음인가요, 물질인가요? 예를 들어서 갑자기 불안한 마음이 생겼을 때 이를 알아차리면 처음에는 그 대상이 마음으로 보이지만 그 다음에 연달아서 보이는 것은 불안한 마음을 불러온 원인, 즉 걱정거리, 어떤 사람, 사물, 미래에 대한 안 좋은 상상의 감각적인 표현 등등입니다. 이런 것들이 차례대로 떠올랐다가 사라집니다.

이렇게 마음속에 떠오르는 정신적인 작용의 대상은- 결국에는 물질로 봐야하는지요? 아니면 그것도 그 자체로 대상으로서의 마음인지요? [마음이 생길 때, 마음을 알고서 알아차리면 마음의 대상()은 물질이고 아는 것은 마음이다.] 어리석은 머리로는 이 문장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마음이 일어날 때 일어난 것은 뒤의 마음 또는 정신적입니다. 크게 마음 하나와 정신적 작용(쩨따시카) 52가지를 통칭 마음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개념으로 ’, ‘자아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오온뿐입니다. 이것들을 알아차릴 때, 대상(오온, 사념처, 몸과 마음, 육체적 과정과 정신적 과정)과 그것을 아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은 모든 것()을 대상으로 합니다. 현재 존재하는 물질. 과거에 있었던 마음의 대상, 과거의 마음까지도 모두 대상으로 합니다. 있는 것은 단지 대상과 마음뿐입니다. 그 외는 들어설 자리도 없고, 실체도 없습니다. 이 대상은 순간도 지속하지 않고 변합니다. 변한다는 것은 안정되지 않고, 완전하지 않고 불변(영혼)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이론적으로 안 것을 자신이란 몸과 마음에서 확인하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이고 몸과 마음의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 체험되는 것이 지혜입니다.

2) 또한, 지켜보는 마음이 대상이 되는 마음보다 더 높은 차원의 마음인가요? 대상이 되는 마음이 무상하다면, 지켜보는 마음과 집중력은 무상하지 않은 것인지... 조금 혼란스럽습니다.

더 높은 차원의 마음은 초선정보다 두 번째 선정이 높은 마음이며, 첫 번째 지혜보다 두 번째 지혜가 더 높은 마음이며, 첫 번째 닙바나를 체험한 수다원보다 두 번째인 사다함이 더 높은 마음입니다. , 대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려 대상과 대상의 틈 없어 번뇌를 다스려 마음이 청정한가에 따라 높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마음이란? 아는 것입니다. 대상이 일어날 때, 일어난 것을 아는 것은 마음입니다. 대상이 사라지면 아는 마음 또한 바로 사라집니다.

대상을 아는 마음과 아는 마음을 지켜보는 마음이 있을 때 대상은 더 명확하게 드러나고 예리한 바늘 끝의 1/16 같은 틈도 없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책에 있는 대로 하는 것보다 자신의 능력(정진력, 집중력, 청정함)을 보면서 갔으면 합니다. 대상이 드러나는 것은 정진력과 알아차림, 청정함에 따라 다르게 드러납니다. 우선은 분명하게 드러나는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았으면 합니다. 대상을 놓치지 않고 많이 알면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이 구분되며 마음과 마음의 작용들 또한 구분될 것입니다. 이때 대상을 아는 마음과 그 마음을 지켜보는 마음 또한 명확히 구분됩니다.

3) 유신견과 무아에 대해서 공부하다 보면 '타인'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보아야 할지 궁금해집니다. 그 또한 자아의 개념이 아니므로 마음-물질로 봐야 하는지, 아니면 단순히 감각 기관으로 인식되는 물질로 보아야 하는지요.

두 가지가 지혜로 구분됩니다. 개념과 실제입니다. 지금까지 안 것은 실제가 아니라 개념으로 안 것이었기에 같은 꽃을 보더라도 어느 때는 보기가 좋았고, 어느 때는 관심도 없었고 어느 때는 보기가 싫었습니다. 상대를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함은 볼 때 알아차리지 못해 보이는 것에 대해 나라는 것을 갖고 이 라는 것을 중심으로 판단(유추, 선입견, 왜곡, 착각, 전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일 때 바로 보이는 것을 알아차리면 보이는 것(모양, 형태, 대상)과 보이는 것을 아는 것(마음)만 있기에 상대와 자신, 좋고 나쁨, 맞다 틀렸다는 자기중심적 잘못된 판단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타인을 알려면 먼저 자신을 알면 됩니다. 개념으로 ’, ‘자아’, ‘영혼이란 몸과 마음을 알면 타인도 자신과 같은 몸과 마음뿐이란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날아가는 저 새도, 걸어가는 저 고양이도 단지 육체적 과정과 정신적 과정뿐입니다. 이것을 개념적으로 아무개, 누구라고 사회적으로 혼란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이름(명칭)을 지어 부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