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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19-12-28 14:35
    괴로움은 고통이 아니라 성스러움이다.
     글쓴이 : 붓다락키따
    조회 : 503  

    우선, 사성제에 관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고(일체개고)라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요? 수행을 통해서 지혜의 단계가 성숙이 되면 오온이 사라지는 것을 관하며 아는 것인가요? 아니면 세상살이 모든 것이 좋은 것도 결국 고통으로 귀착되는구나 라는 경험으로 아는 것인가요?

    아프고 늙는 것이 자신의 허락과 좋아함 없이 일방적으로 쏜살 같이 오며 몸-마음의 매우 빠른 변화가 지혜로는 괴로움으로 인식됩니다. 두 가지 괴로움이 있는데 하나는 지혜가 없을 때 인식되는 것으로 하고 싶은 것이 뜻대로 되지 않고, 싫은 것이 자주 일어나는 괴로움입니다. 이 괴로움으로 의욕 상실, 허무, 허망, 할 것을 쉽게 포기, 낙담, 불만족, 감각적 욕망, 집착 등과 싸우거나 밀쳐 내고자 하거나 과대, 과소로 보고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의 밑바탕에서 일어나는 이것을 괴로움으로 여깁니다.

    다른 하나는 지혜에서 일어나는 괴로움입니다. 이 괴로움은 단지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는 것을 평정심으로 담담히 지켜보는 데서 일어납니다. -마음의 빠른 변화를 알아차리면 항상 하지 않고, 해체되며 불안정하고, 부서지기 쉬우며 지속하지 않고, 변하기 쉽고 부실하고, 무너지기 쉬우며 죽기 마련이고, 형성된 것이고, 고통이고 재앙이고, 두려움이며 태어나기 마련이고 늙기 마련이며 병들기 마련이고 슬프기 마련이며 비탄하기 마련이고 절망하기 마련이며 가 아니고 실체가 없으며 의지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기에 몸-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오히려 몸-마음에서 혐오가 일어납니다. 혐오가 일어나기에 감각적 욕망에서 멀어져, 닙바나만 향하게 됩니다.

    괴로움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고. 실재이고 현존입니다.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보는가? 자신으로 보는가의 차이만 있습니다. 괴로움을 괴로움으로 보면 성스러움이 일어나지만 괴로움, 불만족으로 보면 고통이 일어납니다.

    두번째로, 미얀마에 파옥선원 가르침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이 아비담마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그 수행법으로 지혜를 얻어야만 도와 과에 이른다는 가르침은 다른 순수 위빠사나 수행으로 가는 것은 매우 길고 성공하기 어렵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어떤 길이 옳은 길인지요? 또한 한국에 정신과 의사인 전00박사님의 의견은 순수위빠사나 수행으로는 거시적인 무상,,무아를 확인할 수 있지만 아상을 떨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시는데 스님께서 이분과 대화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파옥선원 한국 수행처에 위빠사나 수행으로 무상 고 무아에 대한 질의를 드린 적이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살면서 아. 세상이 무상하네! 라는 깨달음과 같다? 라는 답변이 있어서요. 공개 답변이 곤란하시면 이메일로라도 부탁드립니다.

    위빠사나 수행법을 익히면 아비담마와 경전을 전혀 몰라도 그대로 체험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이 아비담마이고 경전이기 때문입니다. 가깝게 볼 수 있고 실재인 책은 놔두고 자신만큼 보이고 이해되는 책을 보는 시간이 더 길면 지금 같은 견해가 일어납니다. 책이나 들어서 안 것의 기억은 자신의 능력이나 해야 할 눈앞의 것보다 항상 멀리 있는 것을 지향합니다.

    책을 5~ 10분 보거나 법문을 한 시간 들었다면, 수행은 최소한 15시간 이상해야 합니다. 책으로 본 것을 몸-마음에서 확인하려면 바라밀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한 약 15시간 이상, 때에 따라서는 며칠이 걸립니다.

    이때 책이나 들어서 안 시간이 더 많고, -마음에서 확인하는 시간이 짧으면 사유와 말이 앞섭니다. 작은 체험이 마치 자신만 경험한 자신감이 아닌 자만심이 일어납니다.

    마음을 청정히 하는 일곱 단계에서 두 번째가 사마타 방법이고 세 번째부터가 위빠사나 방법입니다. 다른 면으로 마음을 청정히 하는 단계가 계정혜를 못 미치거나 벗어나지 않습니다. 사마타 목적은 오로지 집중입니다. 이때 집중의 힘을 선한 마음을 바탕으로 정진력으로 일으킨 후 집중력을 유지하는가? 보고, 듣는 것을 앞세워 순수한 집중의 힘이 아닌 개념의 힘으로 집중을 아는가는 완전히 다릅니다. 대부분 후자 방법에서 시작하거나 택합니다.

    집중의 힘으로 번뇌를 막아내어 마음이 청정한 후, 이때부터 위빠사나가 시작합니다. 위빠사나 목적은 지혜입니다. 순수 위빠사나 수행법을 하더라도 집중을 반드시 거치게 됩니다. 다만 집중만을 위한 방법인가 아니면 지혜를 방법으로 하는가의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를 이해하려면 하나만 알아서는 부족하고 최소한 두 개, 세 개의 연관된 것을 알아야 하고 자연히 알게 됩니다. 위빠사나 방법의 세 가지 특성에 대해 개인적 견해를 보임이 자신의 청정 상태의 한계이지 않을까 합니다. 왜냐하면 법은 단 하나의 맛이기 때문입니다.

    아상은 닙바나를 처음 체험한 수다원 과에서 일차적으로 소멸하고, 아라한이 되어야 완전히 소멸합니다. 무슨 수행법, 누가? 라는 궁금증이 일어나면, 깔라마 경을 보십시오.

    세번째로, 저는 현재 열심히 수행을 하지는 않았지만 간간히 관심을 갖고 꾸준히 일상생활에서 알아차림을 가지려고 했었습니다. 현재 무상, 무아가 무엇인지 이해는 갑니다만,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지 제가 경험한 것은 아직 초보적인 것인지. 향상된 것인지. 어떻게 바른 길로 갈 수 있는지를 점검을 받고 싶습니다.

    세 가지 특성에 너무 집착하거나 책(이론)에 매이지 않았으면 합니다. 지혜에서 세 가지 특성은 세 번째 단계입니다. 그전 단계가 분명하다면 그 힘으로 다음 단계인 지혜가 일어날 것이면 이 지혜가 지혜로 법(-마음의 성품)을 보여 줄 것입니다. 보여준 대로 말하면 됩니다.

    -생각을 생각으로 알아차리고 생각은 내가 일으키는것이 아니라 그냥 그때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어 일어나는구나 알고,

    생각은 내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생각입니다.

    정신현상에서 일어나는 ''라고 인식하는 여러 상들과(이걸 산냐라 하는지..예를 들면 누워있으면 누워있는 나의 모습이 담긴 이미지들과 누워있다는 위치, 방향성 등등이 서로 기인해서 짧은 시간 일어났다 사라짐을 알아차림. 글자를 보면 글자의 이미지와 방향성 뜻 연관된 물질느낌 들이 짧은 시간 일어났다 사라짐) ''라는 느낌들 심리들이 짧은 시간에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이 알아차려집니다. 알아차림을 이어가다보면 단지 그러한 정보를 담은 현상이 조각조각 조건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라고 알고 이해합니다. 아직 의도는 알아지지 않습니다. 천천히 하다보면 어떤 행위를 할 때 그곳으로 마음이 먼저 간다는 것만 알아집니다. 또한 스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어떤 것이 일어나면 그것을 조건으로 다른 것이 연이어 쌍으로 일어나는 것의 알아차림.

    오온에 관한 이해는 상과 행이 잘 구분지어지지 않는 것 같은데 상은 이건-이것 이런 식으로 연결되어있는 인식, 상카라는 형성 되어지는 것? 이건 심리 현상이 대상과 이어져 순간 만들어져(형성) 일어나는 것? 식은 볼 때는 봄만 있고 들을 때는 소리만 있고 이 두 현상은 같은 현상이 아님.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만. 식은 수행에서 이런 것을 구분하지는 않습니다. 올바로 이해하는 것인지요? (사실 여기서 미시적으로 오온의 작용을 알고 싶어서 파옥수행처의선정수행 후 관찰을 하고 싶습니다만, 선정에 들어가기가 스님들도 어려운 일이라 하셔서 재가자가 쉽지 않을 것이라 망설여지고 있습니다)

    -내몸이라는 이미지는 순간 일어났다 사라지고 단지 지수화풍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현상은 작년 말부터 시작되었는데 병인지요? 병원에도 가보았지만 원인을 알 수없는 통증.(사대가 너무 거칠게 일어납니다.) 정신과에서는 신체화장애 라고만 해서 약을 먹고 있습니다. 보는 것은 단지 봄으로 소리는 단지 소리로 알아지고 오직 봄과 소리와 냄새 맛 마음현상만이 계속 일어났다 사라지고 있고 여기에 ''는 없구나 라고 압니다.

    수행으로 몸-마음의 성품을 확인한 시간보다, 책 본 시간을 더 갖거나 사유 시간을 더 좋았던 것 같습니다. 나라는 것이 없다는 것이 입니다.

    마지막으로, 황당한 질문인데 공룡에 대해 경전에서는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괴로움과 이 괴로움을 소멸하는 것 외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 그런데 이런 것은 마음이 평안 할 때 주로 알아차려지고 화, 분노가 있을 때는 여전히 생각과 아상에 빠져 있으며 제어가 잘 안됩니다. 이것을 어떻게 제어해야하는지 그냥 불교와 수행이란 것을 모르는 사람과 똑같습니다.ㅜㅜ 그땐 이런 마음일 때는 그렇구나 라고 알아차리긴 합니다.

    이론으로는 몸-마음, 사마타-위빠사나에 대해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알지 못하거나 알더라도 약하기 때문입니다. 꾸준히 불선업보다 선업이 많아 마음이 청정하면 지금보다 더 깨어 있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