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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01-01 09:58
    마음이 가는 곳은 두 곳입니다.
     글쓴이 : 붓다락키따
    조회 : 141  

    우선 작년부터 몸의 감각들이 너무 거칠게 일어납니다. 처음에는 통증이었는데 약을 먹고 나서부터는 아주 거친 감각들이 일어납니다. 호흡을 알아차리려 해도 몸의 거친 감각들에 매몰되어 이곳에만 마음이 가있습니다. 마치 통증이 일어나면 거기에만 가있듯이 말입니다. 무엇을 알아차려야 할지요?

    다른 분명한 대상이 없을 때 호흡은 죽을 때까지 언제나 있고, 현재 마음 상태이기에 호흡을 일차적 대상으로 합니다. 하지만, 호흡보다 다른 분명한 대상이 있으면 그 대상이 현재, 지금의 대상이기에 지금의 대상을 주시해야 합니다. 호흡이 아니라 지금의 분명한 대상을 주시해야 마음이 분명해지고, 명확해져 착각, 왜곡, 전도, 상상, 추측, 생각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대상을 주시하는 마음은 크게 두 곳으로 갑니다. 하나는 분명한 곳으로 가고, 다른 하나는 습관적인 곳으로 갑니다. 산란하면 습관적으로 가고 차분, 고요하면 분명한 곳으로 갑니다. 다시 대상을 주시하는 마음은 몸과 마음 외는 가지 않습니다. 더하여 대상을 주시하는 마음은 6곳 외는 가지 않습니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고, 생각입니다.

    다시 호흡, 통증은 몸입니다. 주시했는데도 대상이 지속하면 이때는 몸을 주시하지 말고 느낌(왜다나)을 주시하십시오. 싫고, 불쾌하고, 거부하는 느낌이 없으면 통증도 없어질 것입니다.

    둘째로 수행이 깊어지면 몸의 찰나의 움직임들이 모두 프레임 단위로 끊겨져 알아차려지는 과정을 거치게 되나요? 이런 단계를 거쳐야 열반으로 나아가는 것인지요?

    진달래는 코스모스에 왜 늦게 꽃 피냐고 하지 않습니다코스모스는 진달래에 아직 추운데 꽃 피냐고 하지 않습니다코스모스는 코스모스 때 피고진달래 또한다른 꽃 따라 하지 않고 진달래 때 필 것입니다꽃 피겠다는 것을 잊지 않고 조건이 맞으면 필 것입니다.

    오온(몸-마음)에서 확인하고 분명히 알고자 위빠사나 수행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이 아닌지요? 닭이 눈앞의 먹이만 하나씩 쪼아 먹지 먼 곳의 먹이를 달려가 먹지 않습니다. 닭처럼 오늘, 지금 할 것만 쪼아 먹은 후, 앞의 먹이가 없을 때만 한 걸음 옮겨 다른 곳의 먹이를 먹듯이 살고 수행하는 것은 어떤지요?

    세 번째로 대상과 아는 마음이 쌍으로 일어나는 것은 대상이 일어나면 아는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 것인가요?

    구구단을 알아야 분수, 방정식도 알듯이, 우선은 몸과 마음을 구분하는 힘을 갖추고 그다음 원인과 결과에 대한 앎이 생기면 그 힘으로 다음 단계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음은 대상과 몸이란 토대가 있어야 일어납니다. 대상이 없으면 마음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대상을 아는 것이 마음입니다. 현재 마음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알면 수행이 재미있을 겁니다.

    네 번째로 어떤 스님의 경우 생각이 일어났을 때에 이해하고 내려놓기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요?

    기후에 따라 옷을 입지 계절에 따라 옷 입지 않을 것입니다. 수행자에 따라 수행 면담은 다릅니다. 혼미한 상태일 때, 혀를 깨물어 혼미한 상태를 물리쳐야 한다. 합니다. 때에 따라서는 일어나 경행하라고 합니다. 아니면 잠을 좀 자라고 합니다.

    이처럼 그 수행자의 신심, 이해력, 정진력, 집중력, 바라밀 등이 어떤지 모르고서 한 가지로만 보는 것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어느 스님의 단편적인 것, 어떤 방법보다 경전을 근거로 판단했으면 합니다.

    보고 들은 것은 일차적인 방향 표시판이고 표시판을 보았으면 다음 단계로 지시 방향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목적지가 안 나오면 방향이 잘못된 것이니 다시 방향을 정정해 달리면 됩니다. 달리지도 않고 표시판 밑에서 갈 곳에 대해 생각하거나 얼마 달리지 않고 목적지에 대한 걱정, 동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위빠사나 방법은 지금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입니다. 사라지기 위해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어떻게 변화하고, 반응하는지 알기 위해 지켜봐야 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알기 위해 마음을 청정히 하고자합니다. 무엇을? -마음(오온), ? -마음에서 자신이 원하고 원하지 않는 것들이 일어나기에. 현재 대상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면 원하는 것만 일어나고 지켜보지 못하면 원하지 않는 것들이 일어납니다.

    마지막으로 놓아버림, 내려놓기란 도대체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요? '놓아버려야겠다' 라고 생각한다고 놓아버려지지 않기에..

    마음을 계발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마타(집중, 고요)로써 산란한 마음을 선한 마음 상태에서 안정, 차분, 고요히 하여 대상에 가라앉는 방법과 다른 하나는 대상(오온)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을 정확히 확립하는 위빠사나(지혜)입니다. 이 두 가지를 이론적으로 잘 구분하여 어느 스님, 어느 곳보다 대념처경(사띠빳타나 숫따) 가르침으로 재보아야 정확합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가정이 있으면서 생계에 얽매이고 하고 싶은거 다 하겠다고 하면서 수행한다는 게 너무도 모순인 것 같습니다. 스님이 되어 일평생 정진에만 열중해도 금생에 깨달을지 말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이런 현실이 너무도 모순되어집니다. 불법을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르는데 황금 같은 인연을 이리도 허망하게 보내는 것도 아쉬운데 그럼에도 열심히 수행도 안하는 태도를 자책하지만. 마음 같아서는 스님이 되고 싶지만. 그것도 누가 받아주며 절에 들어간들 열심히 하지 못하여 중도하차하면 더 어려워질까 봐 감히 아무것도 못하고 주저하고만 있습니다. 좋은 말씀이 있으시면 덕담을 베풀어 주십시오.

    바른 견해와 신심, 정진력으로 선업과 지혜의 조건을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에 조건이 다 갖추어진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가 갖추어지면 하나가 미약하고, 하나가 되면 다른 하나에서 장애를 만나게 됩니다. 재가자이기에 조건이 안 되어 진보가 없다는 것은 게으른 핑계가 아닌지요. 재가자지만 아나함까지 갔던 분들이 많습니다. 어떤 조건이라도 그 조건에서 후회 없는 행동과 마음으로 일주일 계획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더 알찬 삶을 원하면 하루만 보면서 지내면 됩니다. 손가락 길이가 다르기에 어떤 용도에서도 편하게 사용하듯이.

    어떤 생에서건 반드시 출가(포기, 결정심) 바라밀이 있어야 합니다. 바라밀을 쌓아 불선업에서 멀어지고 벗어나기 위해 출가해야 힙니다. 깨달음은 그런 원인이 되면 결과로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입니다. 깨달음 보다 깨어 있고자 해야 합니다.

    토끼는 노루를 보면서 왜 나는 빨리 달리지 못하나 하지 않습니다. 노루 또한 토끼를 보면서 왜 저렇게 걸음이 짧은가 하지 않을 것입니다. ? 걸음보다 먹거리 찾고 가족 돌보고,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보호하는 것 외는 관심 두질 않기 때문입니다. 토끼는 토끼만큼 호흡하고 노루는 노루만큼 많은 양의 호흡만 가질 뿐입니다.

    수행하는데 왜 스님들이 자신의 비교 우위와 판단 대상이 되는지요? 대부분의 스님은 재가자들이 마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집착의 대상이 되거나, 현실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 하더라도 역량과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스님들, 다른 수행자들에 마음이 가지 않아야 합니다. 마음이 간다면 성급함이 있는가? 성냄이 있는가? 신심이 있는가? 정진력이 있는가, 알아차림을 지니고 있는가? 수행 주제를 잊어버리지 않았는가? 로 가는 것은 괜찮지만 그 외는 지금처럼 마음이 요동치고, 사유만 난무하게 됩니다.

    나중에 후회하거나 포기하더라도 십바라밀인 선업 쌓는 것을 염두에 두면서 일상생활하면 반드시 그 선업만 따라와서 모이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