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살고 있으니 – 131

보리수 스님
2025-05-05

세월 앞에 서다

보리수선원 개원이 올해 30년이다. 그때 초등학생들이, 언제 장가가서 벌써 자식들을 데리고 선원에 왔으니, 세월 빠름이 눈앞에 있다.

 

나는 시간과 함께 사이좋게 나란히 걷는다고 여겼는데, 거울에 비친 얼굴이 아버지를 닮더니, 어느새 어린 시절 기억 속 할아버지 얼굴과 비슷해졌다. 늙음이 시간을 추월하는가 싶다.

 

오랜만에 만나는 이들이 인부를 물은 뒤 “스님, 누가 돌아갔습니다.” 한다. 나보다 연장자가 떠났다면 역시 오래 산 순서대로 가는구나 싶다. 어쩌다 젊은 사람이 떠났다는 소식에,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다가오며 순서를 아무도 모르고 당할 자도 아무도 없구나. 또래가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내게도 한 걸음 더 가까이 오는구나 싶다. 


마지막 필요한 일주일

죽음이 두렵지 않지만, 그래도 준비할 시간이 일주일 정도 있어 살아온 흔적을 차분히 정리하고 싶다. 모든 메일 계정과 자료를 정리하고, 노트북도 초기화하여 살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싶다.

 

불필요한 물건과 책들은 필요한 이에게 나누고, 남는 것은 기부하여 머물던 공간까지 깨끗이 정돈하면 좋겠다.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마지막으로 진 빚이 있는지 살펴보아 갚고 떠나면 홀가분하겠다. 보고 싶은 사람들을 살펴보아 그리움의 갈증까지 풀고 가려면 이 정도 시간은 필요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준비 시간이 오히려 줄어든다. 일주일에서 닷새. 이제는 죽는데 무슨 정리 시간이 필요할까, 정리를 핑곗거리로 생을 붙들고 있는 건 아닐까 싶다. 정리할 수 있으면 하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미처 정리 못 한 짐이 나를 붙잡지는 못할성싶다. 그냥 훌쩍 떠나면 ‘돼’ 한다.

 

살아 있을 땐 미워하고 증오와 싸늘한 말로 지내다가도 막상 세상을 떠나면 미담과 미화가 그렇게 장엄하고 아름답게 쏟아질 수 없다. 죽고 나서야 ‘훌륭한 사람’, ‘법 없이도 살 사람’, ‘정말 괜찮은 분’, ‘아까운 분’이 된다. 그러니 죽어도 손해는 아닐 성싶다.


기계의 질주에서 자기 자리를 묻는다

공항 대기실에서 TV를 본다. AI, 로봇, 최첨단 기술들이 운동 경기장 입구에 먼저 들어가려고 줄지듯이, 줄줄이 새로운 제품과 기술들이 쏟아져 나온다. 사람과 첨단 기계는 잘하는 영역이 다르다. 사람은 상황을 종합하여 계획을 세우고 복잡한 상황에서 순서를 정해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방대한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하는 일은 느리고 못 한다. 반면 AI 등 첨단 기계는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단숨에 처리하지만, 관련 지식과 맥락이 부족하면 오히려 잘못된 결과를 그대로 믿고 따른다. 자신은 기계를 활용한다지만 기계에 이용당한 못한 꼴이다.

 

기술 발전이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새로운 제품, 첨단기술 제품이 자신에게 왜 필요하고 어떤 도움을 주는지 꼭 있어야 할 것인지, 그 변화가 과연 내 삶의 문제를 어느 만큼 해결해 주고, 진정 필요한 것인지 한번쯤 되돌아볼 일이다. 넘쳐나는 정보에 휘둘려 꼭두각시처럼 끌려다니는 대신, 자신만의 기준과 방향을 잃지 않음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해졌다. 


새로운 건 없다

뉴스를 본다고 해서 새로운 소식을 접하는 건 아니다. 하루의 사건, 사고를 담았다고는 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십 년 전, 이십 년 전, 아니 오십 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날짜와 이름, 얼굴만 바뀌었을 뿐. 전쟁, 살인, 절도, 폭행, 화재, 사기, 교육, 생계, 범죄를 통틀어서 오늘 이야기가 칠십 년 전에도 이미 그랬다. 그 당시에 없던 사람들에게만 새로운 소식이다. 그들도 언젠가 세월에 이끌려가면 새로운 정보와 소식이 아니라 ‘반복되는 무소식’이라 하겠지. 그때와 다른 것은, 그 자리에 지금 자신이 있는 것 뿐이다.


세상일도 유행이 돌고 돌 듯이 숫자만 바뀔 뿐 반복일 성싶다. 팔십, 구십, 백 년을 산다 한들, 달이 해를 못 벗고 주위만 돌 듯이 삶도 궤도 안을 맴돌 뿐이다. 오래 산다고 새로움을 보거나 듣는 게 아니라, 이미 겪은 일들을 조금 더 정신 차려 보거나 깊이 바라보고 다시 생각할 기회를 가질 뿐, 전혀 새로움이 없음을 확인만 하다 허송세월로 떠나지 않나 싶다. ‘오래된 미래’가 떠오른다. 


미래는 스스로 설계

삶은 복권이 아니다.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 이야기를 읽고 운을 기다린다면 정작 자기만의 충실한 삶에서 시련을 헤쳐 나감이 아무 소용이 없다. 시간이 흐른다고 저절로 미래가 만들어지진 않는다. 미래는 우연이 아닌 자기 노력으로 설계하고 다져야 할 삶의 과정이다. 가장 단단하고 바른 설계도는 팔정도(八正道), 하나뿐이다.

 

말이 많은 것 보니

너무 오래 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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