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자기 이해, “잃어버린 순수함과 현대인의 고통” – 138

보리수 스님
2025-06-23

실재와 개념의 차이, 잃어버린 순수함을 찾아서

우리는 이제 중요한 질문 앞에 서 있다. 실재와 개념의 차이는 과연 무엇이며,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고통과 행복을 비롯한 우리의 내면세계는 이 두 차원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형성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실재를 잃어버린 채 개념의 세계에 갇혀 살아가고 있는가? 실재는 형태를 넘어선 본질적 경험인데 말이다. 


음악을 생각해 보자.

악보는 개념이다. 아무리 정교한 화성 이론을 이해해도, 실제 연주를 들었을 때의 감동과는 전혀 다르다. 스트라빈스키의「봄의 제전」을 들으며 가슴이 벅차오르고 전율이 이는 그 순간, 그것이 실재다.

 

잃어버린 순수함과 현대인의 고통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를 보자. 어릴 때 맑고 투명한 감각과 순수함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몸은 피폐해지고 마음은 오염되어 간다. 우울증과 불안장애가 급증하고 작은 스트레스조차 견디기 힘들어한다. 탈진 증후군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개념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다. 몸이 피곤해도 ‘괜찮다’고 여기고, 마음이 슬퍼도 ‘웃어야 한다’고 자신을 속인다. 몸과 마음이 보내는 실재의 신호(반응)를 무시하고, 사회가 요구하는 개념의 기준에 자신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 한다.

 

성과주의는 이러한 왜곡을 더욱 심화시킨다. 학점, 연봉, 직급, 평수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이 숫자와 개념으로 환산된다. 그러나 정작 ‘나는 지금 행복한가?’, ‘만족스러운가?’, ‘건강한가?’와 같은 본질적인 질문은 뒷전이다. 실재는 밀려나고, 개념만이 모든 걸 차지하는가 싶다. 


디지털 시대는 개념의 과부하를 불러왔다. 

종일 디지털 기기로 정보를 처리하고, 메신저로 소통하며, SNS를 통해 끊임없이 남과 비교한다. 모든 것이 개념화된 정보다. 반면, 스치는 바람, 따사로운 햇살, 사람의 온기를 가까이하는 실재의 경험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어느 때가 되면 사회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활동 범위는 좁아지고, 몸의 힘도 점점 약해진다. 반면 가야 할 날은 가깝다. 어쩌면 이 시기부터 연어가 태어난 자리를 찾듯이, 우리 또한 잃어버린 순수함을 되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교육에 대한 성찰

그렇다면 학교에 다니지 말아야 할까? 사회생활을 하지 않거나 세속을 떠난다면 어떨까?

 

그럴 수는 없다. 교육과 사회생활은 인간으로서 필요한 과정이다. 개념을 배우고 활용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능력이기도 하다. 문제는, 개념 만을 배우고 실재를 망각하는 데 있다.

 

우리는 학교 교육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고등학교, 나아가 대학교, 더 오르고자 석사,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박사, 쥐어짜 낸 연구 실적이라는 많은 논문이 정작 자신에게 무엇을 주었던가? 지식은 늘었지만, 실재에서 일어나는 지혜는 없다. 정보는 넘치지만, 실제 삶을 사는 능력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균형이 중요하다. 개념도 배우되, 실재도 배워 잃지 않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론도 배우되, 직접 체험하고 몸과 마음으로 아는 시간도 가져야 한다.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체득하는 위빠사나 수행이 절실하다. 


실재로 돌아가는 길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이미 받은 졸업장과 자격증을 되돌릴 수도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실재(어릴 때의 감각) ⇒ 개념(성장과 사회생활) ⇒ 실재(수행을 통한 회복)의 순환 고리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개념의 세계에서 실재로 되돌아가려면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방법이 필요하다. 위빠사나 수행만이 유일하다. 그러나 일상에서도 실재를 회복하는 방법들이 있다. 


일상에서 실재를 경험하는 방법들

  1. 걸을 때: 발이 땅에 닿는 감각에 주의를 기울인다. 발바닥의 무게감, 단단함 등 감각을 그대로 알자.
  2. 먹을 때: 음식을 천천히 씹으며 맛, 온도, 질감을 충분히 알기에, “맛있다/없다” 라는 판단보다는 그 자체의 감각과 느낌(웨다나)을 주시한다.
  3. 호흡 주시: 숨을 조절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호흡의 들숨과 날숨 길이를 그대로 따라가서면 알자.
  4. 느낌(감정)과 현재 마음 상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즐거우면, ‘즐거움’을 그대로 주시하고, 불만족이 일어나면 나의 불만족이 아닌 단지 ‘불만족’만 주시하기. 화날 때 “화내면 안돼.”라고 생각하기보다. ‘화’라는 마음(찟따)이 몸과 마음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주시하여 알자.
  5. 자연에서: 나무를 보고, 꽃 냄새를 맡고, 새소리를 들을 때 개념 없이 감각 그대로를 받아들인다. 볼 때는 ‘봄’, ‘봄’으로. 냄새 맡으면 ‘맡음’, ‘맡음’으로. 소리를 들으면 ‘들음’, ‘들음’으로 알자.

 

우리는 어린 시절 실재의 세계에서 살았다. 그러나 자라면서 부모, 학교, 사회, 종교가 가르쳐온 모든 것은 결국 개념이다. 그들 또한 실재를 잃고 개념만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행의 핵심은 단순하다.

수행의 본질은 단순하다. 위빠사나 수행은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실재를 해석하지 않고, 그 자체로 아는 것이다. 모양이나 색깔, 위치, 원인을 유추하거나 선입견과 판단을 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감각, 느낌, 마음 상태인 실재만을 있는 그대로 아는 것이다. 


새로운 삶의 가능성

실재를 회복하면 삶이 어떻게 달라질까?

 

  1.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피로하면 쉬고, 슬프면 그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바라본다. 실재와 싸우지 않으니, 불만, 힘듦이 없어져 훨씬 부드럽고 여유로워진다.
  2. 관계가 깊어진다: 상대를 직업, 학력, 외모 같은 개념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 상태와 존재 그 자체를 그대로 주시하기에 진정한 소통이 시작한다.
  3. 창의력이 샘솟는다: 개념적 틀에서 벗어나 지금을 새롭게 경험함으로써 창조성이 발현된다. 예술가들이 말하는 ‘영감’은 실재의 순간에서 솟아오른다.
  4. 평화로워진다: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은 모두 개념의 산물이다. 현재라는 실재 속에 머물면, 자연스럽게 평화와 진정한 행복이 찾아온다.

 

물론 개념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개념도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균형이다. 개념은 삶의 도구이지, 실재 삶 자체가 아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순수한 경험, 모든 것이 생생하고 신선했던 그 시절로 완전히 돌아갈 수는 없지만, 그 순수함의 본질은 되찾을 수 있다.

그것이 진정한 성숙이다. 개념도 알고, 실재도 아는 것. 머리로도 살고, 가슴으로도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온전한 인간의 모습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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