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법문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쫓아가다, 따라가다, 함께 가다: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세 가지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행위를 반복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러다 문득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기의 움직임을 규정하는 세 가지 단어 ― 쫓아가다, 따라가다, 함께 가다 ― 를 바탕으로 진정한 자기 계발과 방향을 살펴보자.
1. 쫓아가다: 끝나지 않는 경쟁과 불안
어릴 때는 엄마를, 청년기에는 이성을, 성인이 되어서는 돈과 지위, 노년에는 건강을 쫓는다. 우리의 마음은 늘 무엇인가를 ‘뒤쫓는’데 바쁘다. 남들의 성공을 기준으로 높은 연봉, 빠른 승진을 바라보고, 잠시 반짝이는 흐름과 소비 심리, 욕망을 좇으며 끝없는 쳇바퀴를 돈다.
수행의 관점에서 보면, ‘쫓아가다’는 대상에 가까이 접근하거나 붙잡으려는 강한 의도를 담는다. 주체(마음)가 대상을 능동적으로 뒤쫓는 관계이기에 부지런하지 않으면(정진력) 곧바로 뒤처진다. 대상은 주체를 피하려 하거나 그 존재를 모를 수도 있다. 이 관계는 대립이고 일방적이기에 재빠르고, 활력과 능동으로 움직여야 쫓아가게 된다.
그러나 세속에서는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 애쓸수록, 손은 허공만 움켜쥔다. 끝없는 추격은 결국 불안과 공허함만을 남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공’이라는 허상을 끝없이 쫓을 때 겪는 마음의 허전함이다.
2. 따라가다: 뒤를 잇거나 경로를 의존하는 행위
‘따라가다’는 앞선 이의 방식이나 경로를 그대로 잇는 행위다. 복잡한 요리법을 순서대로 따라 하거나, 명화를 모사하듯 학습의 측면에서는 유용한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비판적인 ‘따라감’은 경계해야 한다. ‘따라감’은 의존적이며,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남에게 맡겨 버린다는 뜻을 품고 있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투자법, 삶의 방식을 맹목적으로 좇거나, 시대의 흐름을 놓칠지 두려워 사회와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을 그대로 따르다 보면,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 자기만의 목소리와 진실로 원하는 목적지는 사라지고 목적지에 도착해도 진정한 기쁨은 맛보기 어렵다.
위빠사나의 관점에서 ‘따라간다’는 주체인 마음이 대상(오온)을 의도적으로 놓치지 않고 뒤이어 주시하는 움직임을 뜻한다. 수행에서는 대상을 정확히 알기 위해 그 변화와 흐름을 뒤에서 잇듯 따라가며, 이때 마음은 일정 부분 종속적·의존적인 위치에 놓인다. 즉, 마음이 대상의 뒤를 따르며 주시하는 관계이며, 그 과정에서 마음은 의도적으로 혹은 수동적으로 대상에 맞추어간다.
대상은 마음을 의식할 수도, 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마음은 대상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알기 위해 그에 맞춰 흐름을 따라간다. 선정과 지혜를 모방하듯 따라가는 과정도 수행에서 하나의 방법이 된다.
3. 함께 간다: 대등한 위치에서 함께 하기
‘함께 간다’는 같은 방향, 시간과 장소, 위치에서 출발(시작)과 동시에 같은 속도로 함께(밀착) 움직여야 한다. 가장 협력적이며 동등하고 대등한 관계에서 동일한 이동 행위를 공유한다.
어머니와 손을 잡고 마트에 함께 간다. (대등하고 친밀한 동행)
동료들과 저녁을 먹으러 함께 간다. (동행)
“산책하러 가는데, 너도 함께 갈래?” (동참 제안)
진정한 자기 계발과 마음의 평온은 바로 ‘함께 가기’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발맞춰야 할 대상은 타인이 아니다. 바로 ‘지금의 나’, 그리고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아는 ‘나의 가치관’이다.
위빠사나는 ‘함께 가기’이다. 밖으로 향하는 소란(쫓아가는 마음), 타인의 그림자(따라가는 생각)를 잠시 멈추고, 오직 현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움직임(현상)과 나란히 걸어야(밀착) 한다.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이 떠오르면, 그대로 지켜보자. 그리고 가장 순수한 나 자신인 ‘현재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며 평정심으로 함께하자.
무엇을 쫓고, 누구와 함께 갈 것인가?
인생의 방향성은 ‘쫓는 것’도 ‘따르는 것’도 아니다. 나의 진정한 가치(자애-집중, 지혜)를 세우고, 그 가치와 발을 맞추어 함께 걷는 것, 그것이 삶의 균형을 지탱해 준다.
마음가짐
오늘 하루, 잠시 멈추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쫓고 있는가? (인정? 소속?)
나는 누구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가? (타인의 잣대?)
나는 지금 나 자신과 함께 걷고 있는가? (내 안의 평온함과?)
내 안의 평온함과 함께 걷는 하루가 되기를 마음 깊이 바란다.



*실제 법문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쫓아가다, 따라가다, 함께 가다: 삶의 방향을 결정하는 세 가지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행위를 반복한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달리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쓴다. 그러다 문득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른다.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자기의 움직임을 규정하는 세 가지 단어 ― 쫓아가다, 따라가다, 함께 가다 ― 를 바탕으로 진정한 자기 계발과 방향을 살펴보자.
1. 쫓아가다: 끝나지 않는 경쟁과 불안
어릴 때는 엄마를, 청년기에는 이성을, 성인이 되어서는 돈과 지위, 노년에는 건강을 쫓는다. 우리의 마음은 늘 무엇인가를 ‘뒤쫓는’데 바쁘다. 남들의 성공을 기준으로 높은 연봉, 빠른 승진을 바라보고, 잠시 반짝이는 흐름과 소비 심리, 욕망을 좇으며 끝없는 쳇바퀴를 돈다.
수행의 관점에서 보면, ‘쫓아가다’는 대상에 가까이 접근하거나 붙잡으려는 강한 의도를 담는다. 주체(마음)가 대상을 능동적으로 뒤쫓는 관계이기에 부지런하지 않으면(정진력) 곧바로 뒤처진다. 대상은 주체를 피하려 하거나 그 존재를 모를 수도 있다. 이 관계는 대립이고 일방적이기에 재빠르고, 활력과 능동으로 움직여야 쫓아가게 된다.
그러나 세속에서는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 애쓸수록, 손은 허공만 움켜쥔다. 끝없는 추격은 결국 불안과 공허함만을 남긴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공’이라는 허상을 끝없이 쫓을 때 겪는 마음의 허전함이다.
2. 따라가다: 뒤를 잇거나 경로를 의존하는 행위
‘따라가다’는 앞선 이의 방식이나 경로를 그대로 잇는 행위다. 복잡한 요리법을 순서대로 따라 하거나, 명화를 모사하듯 학습의 측면에서는 유용한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무비판적인 ‘따라감’은 경계해야 한다. ‘따라감’은 의존적이며,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남에게 맡겨 버린다는 뜻을 품고 있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나 투자법, 삶의 방식을 맹목적으로 좇거나, 시대의 흐름을 놓칠지 두려워 사회와 세상이 정해 놓은 기준을 그대로 따르다 보면, 자신만의 속도와 방향, 자기만의 목소리와 진실로 원하는 목적지는 사라지고 목적지에 도착해도 진정한 기쁨은 맛보기 어렵다.
위빠사나의 관점에서 ‘따라간다’는 주체인 마음이 대상(오온)을 의도적으로 놓치지 않고 뒤이어 주시하는 움직임을 뜻한다. 수행에서는 대상을 정확히 알기 위해 그 변화와 흐름을 뒤에서 잇듯 따라가며, 이때 마음은 일정 부분 종속적·의존적인 위치에 놓인다. 즉, 마음이 대상의 뒤를 따르며 주시하는 관계이며, 그 과정에서 마음은 의도적으로 혹은 수동적으로 대상에 맞추어간다.
대상은 마음을 의식할 수도, 하지 못할 수도 있으며, 마음은 대상의 변화를 있는 그대로 알기 위해 그에 맞춰 흐름을 따라간다. 선정과 지혜를 모방하듯 따라가는 과정도 수행에서 하나의 방법이 된다.
3. 함께 간다: 대등한 위치에서 함께 하기
‘함께 간다’는 같은 방향, 시간과 장소, 위치에서 출발(시작)과 동시에 같은 속도로 함께(밀착) 움직여야 한다. 가장 협력적이며 동등하고 대등한 관계에서 동일한 이동 행위를 공유한다.
어머니와 손을 잡고 마트에 함께 간다. (대등하고 친밀한 동행)
동료들과 저녁을 먹으러 함께 간다. (동행)
“산책하러 가는데, 너도 함께 갈래?” (동참 제안)
진정한 자기 계발과 마음의 평온은 바로 ‘함께 가기’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발맞춰야 할 대상은 타인이 아니다. 바로 ‘지금의 나’, 그리고 내가 무엇을 소중히 여기는지 아는 ‘나의 가치관’이다.
위빠사나는 ‘함께 가기’이다. 밖으로 향하는 소란(쫓아가는 마음), 타인의 그림자(따라가는 생각)를 잠시 멈추고, 오직 현재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움직임(현상)과 나란히 걸어야(밀착) 한다. 과거의 후회나 미래의 불안이 떠오르면, 그대로 지켜보자. 그리고 가장 순수한 나 자신인 ‘현재의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주시하며 평정심으로 함께하자.
무엇을 쫓고, 누구와 함께 갈 것인가?
인생의 방향성은 ‘쫓는 것’도 ‘따르는 것’도 아니다. 나의 진정한 가치(자애-집중, 지혜)를 세우고, 그 가치와 발을 맞추어 함께 걷는 것, 그것이 삶의 균형을 지탱해 준다.
마음가짐
오늘 하루, 잠시 멈추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무엇을 쫓고 있는가? (인정? 소속?)
나는 누구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가? (타인의 잣대?)
나는 지금 나 자신과 함께 걷고 있는가? (내 안의 평온함과?)
내 안의 평온함과 함께 걷는 하루가 되기를 마음 깊이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