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행복’과 ‘사랑’이 무엇이고, 어떤 상태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막연히 ‘최고의 것’, ‘좋은 것’으로만 생각한다. 무엇이 삶을 행복과 사랑으로 만들어주는가?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한가? 왜 그런가? 그것은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은 돈에서 행복을 찾고 열심히 돈을 모은다. 그래서 행복하던가? 그렇다면 재벌들이 왜 자살하는가. 또 어떤 사람은 권력과 명예에서 행복을 찾는다. 물론 이것들이 적지 않은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내려오거나 유지 기간이 짧다는 것을 알 때 얼마나 슬프던가. 배우자, 친구, 자식, 애장품, 좋아하는 것들이 행복의 원천으로 보이지만 이것들도 긴 삶의 여정에서 보면 잠시이며 언젠가는 자신의 곁을 빠르게 떠난다. 이때의 가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면 행복은 어디에 있나? 행복은 온전한 마음 상태에서 찾아온다. 행복한 상태는 스스로 성질에 맞는 자체의 욕구가 완전히 충족된 최고의 마음 상태이다.
<네 가지 행복>
① 물질로 일어나는 행복
② 감정으로 일어나는 행복
③ 지적 행복
④ 정신적 행복
먹는 것으로 이 네 가지를 보자. 물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먹는 것을 현실의 행복으로 받아들인다. 이 음식이 몸을 튼튼하게 지탱할 것으로 여겨 행복감에 젖는다. 육체 건강을 위해 먹는 것이 물질의 행복이다. 그런데 그날 먹고 싶고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면 즐거움으로 입이 벌려지고 입안에 벌써 침이 고인다. 이때가 감정의 행복이다. 반찬이 몸에 이로운지 해로운지는 신경 쓰지 않고 기대하는 맛이 만족감을 일으킨다. 욕구의 만족으로 일어나는 행복이기에 해로운 음식이란 것을 알지만 먹는다. 이성이 발달하고 지적인 사람이 다이어트 중이라면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없다. 마침 알맞은 음식이 나왔다면 “지금 다이어트 중인데 몸에 딱 맞는 음식이야.”라고 이성으로 음식을 판단한 후에 얻은 행복이 지적 행복이다. 정신이 성숙하고 차분한 사람이라면 음식에서 다른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이 음식은 정갈하고 순수한 음식으로 몸을 무겁게 하지 않아 혼미한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한다. 이 음식으로 수행에 박차를 더할 수 있어 행복하다.”라는 경우는 정신적 행복이다. 이처럼 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먹는가에 따라 행복의 가치 단계도 달라진다.
<또 다른 행복>
1) 거친 행복: 대다수 사람이 다양하게 경험하는 행복으로 감각의 즐거움을 일으키는 행복이다. 예)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즐거운 소리를 듣고, 좋은 냄새를 맡고. 맛있는 것을 맛보고, 부드러운 감촉으로 몸에서 일어나는 기쁨을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기쁨·즐거움·행복을 만끽한다.
2) 부드러운 행복: 천상의 세계(정신)에선 아무런 고통과 괴로움이 없고 오직 쾌락의 즐거움과 감각의 기쁨만 있는 곳으로 감각 쾌락이 행복에 이르는 곳으로 순수한 행동을 했을 때 맛보게 된다.
3) 극치의 행복: 집중의 행복은 마음을 다스려서 얻어지는 온전한 정신 상태로 집중된 마음에서 일어나는 행복은 덧없이 사라지는 거친 감각의 쾌락과 비교할 수 없다. 집중의 마음은 감각의 대상에서 벗어나 하나의 대상과 일치할 때 일어난다. 이때엔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상태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선 자신이 원하는 만큼 지속할 수도 있다. 이때의 마음은 자애·연민·함께 기뻐하는 마음·평정심으로 일어난다.
4) 완벽한 행복: 깨어있는 행복은 분명하고, 명확하고, 철저하고, 꾸미거나 덧칠을 안 한 그대로의 순수한 상태의 행복이다. 이때엔 몸과 마음의 성품을 깊이 꿰뚫어 아는 지혜가 생기고 모든 것(온)을 세 가지 특성으로 체험한다. 집중된 마음에서 일어나는 행복은 감각적 즐거움에 빠져 있는 행복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행복의 마음은 마음이 청정한 상태에서 의식이 수정처럼 맑고 투명하며 순수한 직관의 기쁨을 동반하며, 몸과 마음의 완전한 휴식으로 고요하고 시원함을 선사한다. 더하여 모든 번뇌를 소멸한 열반의 고요한 행복을 누리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완전한 행복을 언제나 누린다.

애월 밤바다
사람들은 ‘행복’과 ‘사랑’이 무엇이고, 어떤 상태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막연히 ‘최고의 것’, ‘좋은 것’으로만 생각한다. 무엇이 삶을 행복과 사랑으로 만들어주는가?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인가?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한가? 왜 그런가? 그것은 엉뚱한 곳에서 행복을 찾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은 돈에서 행복을 찾고 열심히 돈을 모은다. 그래서 행복하던가? 그렇다면 재벌들이 왜 자살하는가. 또 어떤 사람은 권력과 명예에서 행복을 찾는다. 물론 이것들이 적지 않은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내려오거나 유지 기간이 짧다는 것을 알 때 얼마나 슬프던가. 배우자, 친구, 자식, 애장품, 좋아하는 것들이 행복의 원천으로 보이지만 이것들도 긴 삶의 여정에서 보면 잠시이며 언젠가는 자신의 곁을 빠르게 떠난다. 이때의 가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러면 행복은 어디에 있나? 행복은 온전한 마음 상태에서 찾아온다. 행복한 상태는 스스로 성질에 맞는 자체의 욕구가 완전히 충족된 최고의 마음 상태이다.
<네 가지 행복>
① 물질로 일어나는 행복
② 감정으로 일어나는 행복
③ 지적 행복
④ 정신적 행복
먹는 것으로 이 네 가지를 보자. 물질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먹는 것을 현실의 행복으로 받아들인다. 이 음식이 몸을 튼튼하게 지탱할 것으로 여겨 행복감에 젖는다. 육체 건강을 위해 먹는 것이 물질의 행복이다. 그런데 그날 먹고 싶고 좋아하는 음식이 나오면 즐거움으로 입이 벌려지고 입안에 벌써 침이 고인다. 이때가 감정의 행복이다. 반찬이 몸에 이로운지 해로운지는 신경 쓰지 않고 기대하는 맛이 만족감을 일으킨다. 욕구의 만족으로 일어나는 행복이기에 해로운 음식이란 것을 알지만 먹는다. 이성이 발달하고 지적인 사람이 다이어트 중이라면 아무 음식이나 먹을 수 없다. 마침 알맞은 음식이 나왔다면 “지금 다이어트 중인데 몸에 딱 맞는 음식이야.”라고 이성으로 음식을 판단한 후에 얻은 행복이 지적 행복이다. 정신이 성숙하고 차분한 사람이라면 음식에서 다른 즐거움을 찾을 것이다. “이 음식은 정갈하고 순수한 음식으로 몸을 무겁게 하지 않아 혼미한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한다. 이 음식으로 수행에 박차를 더할 수 있어 행복하다.”라는 경우는 정신적 행복이다. 이처럼 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마음가짐으로 먹는가에 따라 행복의 가치 단계도 달라진다.
<또 다른 행복>
1) 거친 행복: 대다수 사람이 다양하게 경험하는 행복으로 감각의 즐거움을 일으키는 행복이다. 예) 아름다운 것을 보거나, 즐거운 소리를 듣고, 좋은 냄새를 맡고. 맛있는 것을 맛보고, 부드러운 감촉으로 몸에서 일어나는 기쁨을 경험함으로써 우리는 기쁨·즐거움·행복을 만끽한다.
2) 부드러운 행복: 천상의 세계(정신)에선 아무런 고통과 괴로움이 없고 오직 쾌락의 즐거움과 감각의 기쁨만 있는 곳으로 감각 쾌락이 행복에 이르는 곳으로 순수한 행동을 했을 때 맛보게 된다.
3) 극치의 행복: 집중의 행복은 마음을 다스려서 얻어지는 온전한 정신 상태로 집중된 마음에서 일어나는 행복은 덧없이 사라지는 거친 감각의 쾌락과 비교할 수 없다. 집중의 마음은 감각의 대상에서 벗어나 하나의 대상과 일치할 때 일어난다. 이때엔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상태가 아니라 경우에 따라선 자신이 원하는 만큼 지속할 수도 있다. 이때의 마음은 자애·연민·함께 기뻐하는 마음·평정심으로 일어난다.
4) 완벽한 행복: 깨어있는 행복은 분명하고, 명확하고, 철저하고, 꾸미거나 덧칠을 안 한 그대로의 순수한 상태의 행복이다. 이때엔 몸과 마음의 성품을 깊이 꿰뚫어 아는 지혜가 생기고 모든 것(온)을 세 가지 특성으로 체험한다. 집중된 마음에서 일어나는 행복은 감각적 즐거움에 빠져 있는 행복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 행복의 마음은 마음이 청정한 상태에서 의식이 수정처럼 맑고 투명하며 순수한 직관의 기쁨을 동반하며, 몸과 마음의 완전한 휴식으로 고요하고 시원함을 선사한다. 더하여 모든 번뇌를 소멸한 열반의 고요한 행복을 누리면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는 완전한 행복을 언제나 누린다.
애월 밤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