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환경, 좋은 조건, 그리고 실제 ‘좋음’에 관하다.
우리는 남들보다 더 좋은 환경과 조건 속에 살아가는 것 만으로 과연 진정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누리는 편리함과 풍족함이 정말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지, 그만큼의 몫을 감당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본 적 있으신가요?
인도 순례에서 던진 질문
어느 해, 보리수선원 수행자들과 함께 인도의 붓다 4대 성지를 중심으로 한 곳에 2~4일씩 머물며 붓다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정 때다.
수행자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한편, 성지를 벗어나면 전혀 다른 문화와 전통, 관습, 일상과 마주했다. 새로움에 설레면서도, 때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도 많았다.
예컨대, 손으로 음식을 먹는 방식, 거리의 소와 쓰레기, 열악한 위생 상태, 낯선 종교 의례들… 한국과 비교하면 불편하고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많았다. 여러분이라면 어떠셨을까요?
인천공항 도착해서 수행자들이 잠시 소감을 나누고 조용해졌다.
“붓다의 발자취를 찾아 인도에서 수행자들과 함께한 시간, 여러분은 어떤 경험이 기억에 남나요?” “우리는 인도보다 훨씬 쾌적하고 풍족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도인들보다 더 나은 점이 무엇일까요? 더 너그럽고, 덜 탐욕스럽고, 덜 화를 낼까요? 실제로 자신의 마음이나 행동에서 더 나은 점이 무엇이었나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순례 중 한국과는 다른 모습들을 보며 우리는 실제로 ‘더 낫고 좋음’이란 조건에서 좋은 조건의 한국인인 자신이 그만한 가치 있는 행위를 했는가 물은 것이다.
“여러분은 그들보다 좋은 조건을 갖춘 만큼, 더 월등한 것이 무엇인지요? 더 좋은 조건을 누리는 우리가 과연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요? 조건이 나아질수록 자신의 마음도 함께 너그럽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조건이 좋을 때, 마음도 함께 성장했는지 자신할 수 있을까요? 혹시 우리는 다른 문화의 불편함 만을 기준 삼아, 너무 쉽게 인도와 그 사람들을 판단한 건 아닌지요?”
좋은 조건 = 좋은 삶?
누군가 “제주도 보리수선원은 나무도 많고 꽃도 다양하고, 공기도 맑고 조용하니 얼마나 좋으세요?” 한다. 선뜻 “네, 정말 좋아요.”라고 대답하지 못할 때가 있다.
과연 그 ‘좋음’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는가, 문득 돌아보기 때문이다. 좋은 환경 속에 살면서 다른 이에게 베풂이 빈약하고 마음 씀이 빈곤하다면, 내가 누리는 안락함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혹시 조건이 주는 만족감에 안주하여 게으르다면, 진정한 ‘좋음’의 본질을 잊고 있는 건은 아닐까?
‘좋다’는 말의 여러 얼굴
우리는 언제 ‘좋다’고 말할까요?
- 기분이 흐뭇할 때, “오늘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좋아.”
- 보기 좋을 때, “그 옷 너한테 잘 어울려. 정말 좋다.”
- 성품이 바를 때,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돕는 행위는 좋은 일이야.”
- 관계가 원만할 때, “우리 사이좋잖아.”
- 기준에 부합할 때, “이 계획 좋다.”
이처럼 ‘좋다’는 표현은 어디에나 쉽게 붙지만, 대부분 감정적이거나 주관적인 판단에 그치기도 한다. 폭넓고 긍정적인 표현이지만, 그만한 내실이나 값어치가 없다면, 순간에 들뜬 마음이나 자기만족에 불과할 수도 있다.
누구에게 좋은가?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다.
그 ‘좋다’는 말이, 자신만 좋은가? 아니면 나와 상대 모두에게 좋은가?
자기 혼자만의 만족을 진정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만 기쁨이 되고, 상대나 주변에는 무관하거나 해가 된다면, 그것은 결국 이기적인 기쁨일 뿐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좋음’이란,
자신도 이롭고,
상대도 유익하며,
원인도 좋고 결과도 좋아,
사회나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좋음’의 실제 의미
좋은 환경과 조건은 분명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곧 좋은 삶을 보장하진 않는다.
그 조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내는가,
바로 여기에 ‘실제 좋음’의 의미가 달려 있다.
‘좋다’는 말은 쉽다.
하지만 좋은 조건이 주어진 만큼,
나는 더 너그러워졌는가,
내 삶은 더 평온해졌는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 자신이 누리는 편리함과 풍요로움이 단지 내 몫만이 아니기를,
‘좋다’고 여긴 것이 내 곁사람들도 함께 좋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가?
그 만족이 단지 내 기분으로 끝났는가, 아니면 주위에 이로움을 남겼는가?
‘좋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진정한 ‘좋음’이란, 혼자만이 누리는 만족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 그리고 이 세상 모두에게 이로울 때 완성된다.
오늘 자신이 누리는 편함과 풍요로움,
그것이 단지 자기 몫 만은 아니기를,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흔적이 되었으면 싶다.


좋은 환경, 좋은 조건, 그리고 실제 ‘좋음’에 관하다.
우리는 남들보다 더 좋은 환경과 조건 속에 살아가는 것 만으로 과연 진정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이 누리는 편리함과 풍족함이 정말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지, 그만큼의 몫을 감당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본 적 있으신가요?
인도 순례에서 던진 질문
어느 해, 보리수선원 수행자들과 함께 인도의 붓다 4대 성지를 중심으로 한 곳에 2~4일씩 머물며 붓다의 자취를 따라가는 여정 때다.
수행자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한편, 성지를 벗어나면 전혀 다른 문화와 전통, 관습, 일상과 마주했다. 새로움에 설레면서도, 때로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도 많았다.
예컨대, 손으로 음식을 먹는 방식, 거리의 소와 쓰레기, 열악한 위생 상태, 낯선 종교 의례들… 한국과 비교하면 불편하고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장면들이 많았다. 여러분이라면 어떠셨을까요?
인천공항 도착해서 수행자들이 잠시 소감을 나누고 조용해졌다.
“붓다의 발자취를 찾아 인도에서 수행자들과 함께한 시간, 여러분은 어떤 경험이 기억에 남나요?” “우리는 인도보다 훨씬 쾌적하고 풍족한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도인들보다 더 나은 점이 무엇일까요? 더 너그럽고, 덜 탐욕스럽고, 덜 화를 낼까요? 실제로 자신의 마음이나 행동에서 더 나은 점이 무엇이었나요?"
아무런 대답이 없다. 순례 중 한국과는 다른 모습들을 보며 우리는 실제로 ‘더 낫고 좋음’이란 조건에서 좋은 조건의 한국인인 자신이 그만한 가치 있는 행위를 했는가 물은 것이다.
“여러분은 그들보다 좋은 조건을 갖춘 만큼, 더 월등한 것이 무엇인지요? 더 좋은 조건을 누리는 우리가 과연 더 나은 삶을 살고 있을까요? 조건이 나아질수록 자신의 마음도 함께 너그럽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조건이 좋을 때, 마음도 함께 성장했는지 자신할 수 있을까요? 혹시 우리는 다른 문화의 불편함 만을 기준 삼아, 너무 쉽게 인도와 그 사람들을 판단한 건 아닌지요?”
좋은 조건 = 좋은 삶?
누군가 “제주도 보리수선원은 나무도 많고 꽃도 다양하고, 공기도 맑고 조용하니 얼마나 좋으세요?” 한다. 선뜻 “네, 정말 좋아요.”라고 대답하지 못할 때가 있다.
과연 그 ‘좋음’에 걸맞은 삶을 살고 있는가, 문득 돌아보기 때문이다. 좋은 환경 속에 살면서 다른 이에게 베풂이 빈약하고 마음 씀이 빈곤하다면, 내가 누리는 안락함이 과연 무슨 의미일까? 혹시 조건이 주는 만족감에 안주하여 게으르다면, 진정한 ‘좋음’의 본질을 잊고 있는 건은 아닐까?
‘좋다’는 말의 여러 얼굴
우리는 언제 ‘좋다’고 말할까요?
- 기분이 흐뭇할 때, “오늘 날씨가 좋아서 기분이 좋아.”
- 보기 좋을 때, “그 옷 너한테 잘 어울려. 정말 좋다.”
- 성품이 바를 때,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돕는 행위는 좋은 일이야.”
- 관계가 원만할 때, “우리 사이좋잖아.”
- 기준에 부합할 때, “이 계획 좋다.”
이처럼 ‘좋다’는 표현은 어디에나 쉽게 붙지만, 대부분 감정적이거나 주관적인 판단에 그치기도 한다. 폭넓고 긍정적인 표현이지만, 그만한 내실이나 값어치가 없다면, 순간에 들뜬 마음이나 자기만족에 불과할 수도 있다.
누구에게 좋은가?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다.
그 ‘좋다’는 말이, 자신만 좋은가? 아니면 나와 상대 모두에게 좋은가?
자기 혼자만의 만족을 진정 ‘좋다’고 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만 기쁨이 되고, 상대나 주변에는 무관하거나 해가 된다면, 그것은 결국 이기적인 기쁨일 뿐일지도 모른다.
진정한 ‘좋음’이란,
자신도 이롭고,
상대도 유익하며,
원인도 좋고 결과도 좋아,
사회나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좋음’의 실제 의미
좋은 환경과 조건은 분명 삶을 풍요롭게 만든다.
하지만 그것이 곧 좋은 삶을 보장하진 않는다.
그 조건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내는가,
바로 여기에 ‘실제 좋음’의 의미가 달려 있다.
‘좋다’는 말은 쉽다.
하지만 좋은 조건이 주어진 만큼,
나는 더 너그러워졌는가,
내 삶은 더 평온해졌는가,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오늘 자신이 누리는 편리함과 풍요로움이 단지 내 몫만이 아니기를,
‘좋다’고 여긴 것이 내 곁사람들도 함께 좋아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는가?
그 만족이 단지 내 기분으로 끝났는가, 아니면 주위에 이로움을 남겼는가?
‘좋다’는 말을 쉽게 하지만,
진정한 ‘좋음’이란, 혼자만이 누리는 만족이 아니라, 자신과 상대, 그리고 이 세상 모두에게 이로울 때 완성된다.
오늘 자신이 누리는 편함과 풍요로움,
그것이 단지 자기 몫 만은 아니기를,
누군가에게도 따뜻한 흔적이 되었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