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초. 딸 가진 아버지 왈, 자기 딸을 기상청 사람들에게 시집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왜냐고 물으니 믿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일기 예보가 맞지 않음을 에두른 말이다. 앞날과 바깥에 관심이 별로지만 날씨만큼은 관심이 간다. 미세 먼지와 초미세 먼지, 자외선 때문이다.
과학적인 접근과 경험적인 판단, 다양한 정보와 기상 관측소에서 측정한 기온, 습도, 풍속, 강수량 등의 데이터를 활용 그리고 최고의 설비, 국가에서 가장 비싼 628억 원의 최신 고성능 슈퍼컴퓨터를 보유한 곳이 기상청이다. 세계에서 슈퍼컴퓨터의 성능은 4년마다 평균 10배 이상의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신의 최고 방법은 이미 2,600년 전에 완성되어 더 새것으로 변경 안 해도 된다. 그렇다 해도 앞날을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나 보다. 날씨 정보가 가장 정확할 때는 몇 시간 전, 하루 전날이다. 며칠 전, 일주일 전은 믿거나 따르지 않고 참고만 할 뿐이다.
수행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선 최신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정신의 최신과 최고는 위빠사나이다. 수많은 방법으로 마음을 계발하더라도 최종에는 위빠사나로 와야 한다. 오지 못했다면 마음의 안정과 편함만 있을 뿐 내가 했다, 한 것이 ‘나’라는 잘못된 견해와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편함도 한 끼의 식사가 위에 머무는 동안만 공복이 없듯이 길어야 위에 머무는 시간 정도도 안 된다.
그러면 정신으로 최신, 최고는 어떤 것일까? 팔정도이다. 미비하여 칠정도, 구 정도라면 그것은 최신, 최고의 설비가 아니라 내일, 아니 지금의 날씨도 맞히지 못한다. 그 설비가 가동하는 곳과 범위는 사념처(마하사띠빳타나)이다. 기상 관측이 구름의 분포, 이동 경로, 대기 상태를 위성에서 도움받고, 슈퍼컴퓨터 모델을 사용하여 대기 상태를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하는 수치 예보 모델과 축적된 데이터와 모델을 종합하듯이 사념처의 범위와 작동 원리로 팔정도가 움직이는 것도 유사하다.
사념처의 범위는 정신 과정과 육체 과정이다. 즉 몸과 마음을 벗어나면 안 된다. 이 말은 ‘나는 누구이고 무엇인가?’이다. 나를 알고자 해야 한다. 자신을 모르고 상대, 자연, 우주가 존재한들 무슨 이익이 있을까? 왜 자신을 알아야 하나? 모든 이가 원하는 행복, 즐거움, 기쁨이 일어나는 곳이기에, 모든 이가 원하지 않는 괴로움, 성냄이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어나는 원인에서 해결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물건을 던진 곳으로 달려가는 개처럼, 이리저리 바쁘기만 하지, 제대로 해결 못 하지 않던가?
기상 예보는 일주일 전, 오 일 전 예보하더라도 정확한 오늘을 위한 예보이다. 누구나 예측, 추측, 추론, 예감 등으로 다가올 내일을 예견할 수 있다. 정확성이 떨어지고 맞지 않지만, 앞날과 앞일을 알고자 한다. 앞날을 알면 삶의 질이 높아지고, 잘못됨을 미리 방지할 수 있을까? 아니라도 본다. 운동경기가 재미있는 것은 둥근 공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듯이, 경기가 끝난 비디오처럼 현재 시합을 본다면 신나고, 흥미진진하고 흥분하지 않을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도 마찬가지이다. 앞날이 아닌 지금만 알자는 것이다. 그래야 재미있고 흥미로 생동감으로 진지해져 동참하기 때문이다. 수행 방법도 날씨 보듯이 하면 된다. 자신이 날씨에 전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고, 바람만 가진다고 날씨의 변화를 막을 수 없듯이, 흐리면-흐림, 바람 불면- 바람 붐, 비 오면-비 옴으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하면 된다. 이렇게 안 하고 날씨(늙음, 병, 죽음)와 싸워서는 안 될 것이다.
날씨와 늙음, 병, 죽음, 성냄. 근심, 생각 등은 쳐다보아야 할 대상이지 자기 원하고 바라는 대로 따라와 주는 대상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그렇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고 생각으로 일어난 모든 것을 날씨처럼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 위빠사나이며 이것이 정신으로 최신, 최고의 장비를 갖춘 자신으로 소낙비 올지, 바람 불지는 모르더라도 성냄, 탐욕, 자만, 집착,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선원 정원을 가꾸는 박미형 수행자
바위 위 꽃들
바위에서 자라는 야자수
80년 초. 딸 가진 아버지 왈, 자기 딸을 기상청 사람들에게 시집 보내고 싶지 않다고 한다. 왜냐고 물으니 믿을 수 없기 때문이란다. 일기 예보가 맞지 않음을 에두른 말이다. 앞날과 바깥에 관심이 별로지만 날씨만큼은 관심이 간다. 미세 먼지와 초미세 먼지, 자외선 때문이다.
과학적인 접근과 경험적인 판단, 다양한 정보와 기상 관측소에서 측정한 기온, 습도, 풍속, 강수량 등의 데이터를 활용 그리고 최고의 설비, 국가에서 가장 비싼 628억 원의 최신 고성능 슈퍼컴퓨터를 보유한 곳이 기상청이다. 세계에서 슈퍼컴퓨터의 성능은 4년마다 평균 10배 이상의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고 한다.
그러나 정신의 최고 방법은 이미 2,600년 전에 완성되어 더 새것으로 변경 안 해도 된다. 그렇다 해도 앞날을 예측하는 것이 쉽지 않나 보다. 날씨 정보가 가장 정확할 때는 몇 시간 전, 하루 전날이다. 며칠 전, 일주일 전은 믿거나 따르지 않고 참고만 할 뿐이다.
수행도 이와 같지 않을까? 우선 최신 시설을 갖추어야 한다. 정신의 최신과 최고는 위빠사나이다. 수많은 방법으로 마음을 계발하더라도 최종에는 위빠사나로 와야 한다. 오지 못했다면 마음의 안정과 편함만 있을 뿐 내가 했다, 한 것이 ‘나’라는 잘못된 견해와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 편함도 한 끼의 식사가 위에 머무는 동안만 공복이 없듯이 길어야 위에 머무는 시간 정도도 안 된다.
그러면 정신으로 최신, 최고는 어떤 것일까? 팔정도이다. 미비하여 칠정도, 구 정도라면 그것은 최신, 최고의 설비가 아니라 내일, 아니 지금의 날씨도 맞히지 못한다. 그 설비가 가동하는 곳과 범위는 사념처(마하사띠빳타나)이다. 기상 관측이 구름의 분포, 이동 경로, 대기 상태를 위성에서 도움받고, 슈퍼컴퓨터 모델을 사용하여 대기 상태를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하는 수치 예보 모델과 축적된 데이터와 모델을 종합하듯이 사념처의 범위와 작동 원리로 팔정도가 움직이는 것도 유사하다.
사념처의 범위는 정신 과정과 육체 과정이다. 즉 몸과 마음을 벗어나면 안 된다. 이 말은 ‘나는 누구이고 무엇인가?’이다. 나를 알고자 해야 한다. 자신을 모르고 상대, 자연, 우주가 존재한들 무슨 이익이 있을까? 왜 자신을 알아야 하나? 모든 이가 원하는 행복, 즐거움, 기쁨이 일어나는 곳이기에, 모든 이가 원하지 않는 괴로움, 성냄이 일어나는 곳이기 때문이다. 일어나는 원인에서 해결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물건을 던진 곳으로 달려가는 개처럼, 이리저리 바쁘기만 하지, 제대로 해결 못 하지 않던가?
기상 예보는 일주일 전, 오 일 전 예보하더라도 정확한 오늘을 위한 예보이다. 누구나 예측, 추측, 추론, 예감 등으로 다가올 내일을 예견할 수 있다. 정확성이 떨어지고 맞지 않지만, 앞날과 앞일을 알고자 한다. 앞날을 알면 삶의 질이 높아지고, 잘못됨을 미리 방지할 수 있을까? 아니라도 본다. 운동경기가 재미있는 것은 둥근 공이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듯이, 경기가 끝난 비디오처럼 현재 시합을 본다면 신나고, 흥미진진하고 흥분하지 않을 것이다.
위빠사나 수행도 마찬가지이다. 앞날이 아닌 지금만 알자는 것이다. 그래야 재미있고 흥미로 생동감으로 진지해져 동참하기 때문이다. 수행 방법도 날씨 보듯이 하면 된다. 자신이 날씨에 전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고, 바람만 가진다고 날씨의 변화를 막을 수 없듯이, 흐리면-흐림, 바람 불면- 바람 붐, 비 오면-비 옴으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이 하면 된다. 이렇게 안 하고 날씨(늙음, 병, 죽음)와 싸워서는 안 될 것이다.
날씨와 늙음, 병, 죽음, 성냄. 근심, 생각 등은 쳐다보아야 할 대상이지 자기 원하고 바라는 대로 따라와 주는 대상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그렇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접촉하고 생각으로 일어난 모든 것을 날씨처럼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이 위빠사나이며 이것이 정신으로 최신, 최고의 장비를 갖춘 자신으로 소낙비 올지, 바람 불지는 모르더라도 성냄, 탐욕, 자만, 집착,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선원 정원을 가꾸는 박미형 수행자
바위 위 꽃들
바위에서 자라는 야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