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스님의 + - = x ÷
위빠사나(Vipassana)는 빨리어이다. ‘위(Vi)'는 다양한 방식을 의미하고 '빳사나(passana)'는 봄을 의미하는 복합어로써 '다양한 방식으로 본다’는 뜻이다.
또, 위는 오취온의 세 가지 특성인 무상(아닛짜)하고 고통스럽고(둑카) 무아(아낫타)를 뜻하고, 빳사나는 앎 또는 바른 이해를 의미한다. 합쳐진 뜻은 마음(名; nāma)과 몸(色; rūpa)의 세 가지 특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뜻한다.
다른 또, 위빠사나는 꿰뚫어 보다. 또는 똑바로 안다는 뜻이다. 위빠사나는 세간의 진실한 모습을 볼 때 선입견, 편견, 욕구의 개입 없이 현상 그 자체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위빠사나는 어느 정도의 선정(집중)을 얻는 것뿐 아니라 오취온(몸, 느낌, 지각, 정신적 형성, 의식) 현상에 무상, 고, 무아(비인격적 성품)가 그대로 드러난다. 따라서 수행자가 자기 경험을 통해 오취온을 무상, 고, 무아로 드러난 것을 알았을 때가 바로 위빠사나이다.
위빠사나를 영어권에서는 ‘통찰 insight’라 하고 한문권에서는 내관(內觀)이라 한다. 사띠를 영어권에서는 mindful이라 하고 한문권에서는 念이라 하고 한국에서는 알아차림, 마음챙김, 새김이라 한다. 하지만 위빠사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실제로 수행하는 수행자들이고 분명히 아는 사람은 지혜를 얻은 자뿐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사띠빳타나(사띠 확립)라고도 한다. 사띠를 지닐 때 위빠사나 지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위빠사나 지혜는 물질인 육체 현상과 정신 현상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
위빠사나 지혜를 얻으려면 산란한 상태가 없는 집중 상태인 청정한 마음이어야 한다. 즉 집중으로 마음이 정화될 때 지혜가 일어난다. 마음 집중은 지속하는 세심한 알아차림이 있어야 한다. 지속하는 사띠를 지니기 위해서는 장애, 방해 요소를 극복하는 정진이 있어야 한다. 정진이 있으려면 불법승 삼보와 수행법에 대한 강하고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 믿음(saddha)을 바탕으로 정진력(viriya)이 일어나고, 정진력을 바탕으로 사띠(sati)가 일어나며, 사띠가 유지되는 것이 마음 집중(samādhi)이며, 마음 집중으로 산란함이 없는 상태에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아 대상의 변화 과정을 볼 때, 위빠사나 지혜(paññā)가 일어난다.
집중수행 몇 년, 미얀마 몇 년이 아닌 이 다섯 가지가 나서서 일해야 한다.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다섯 가지를 오근(빤짜인드리아)이라 하며 나서서 일할 때를 오력(빤짜발라)이라고 한다. 이 다섯 가지 마음의 기능을 예리하게 지니고 반복으로 강하게 키우면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위빠사나 지혜가 일어나려면 현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세심하게 꿰뚫어야 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몸과 마음의 현상을 사띠로 주시하고, 지켜보는 것이 바로 위빠사나 수행이다.
위빠사나의 원칙
원칙을 기억하자. 일어나는 바로 그때, 있는 그대로 정신 차려서 알아차리고, 주시해야 한다. 자기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어떠하든 무엇이든지 그 대상에 대해 생각, 분석, 비판, 개념화하면 하는 것을 바로 알면 그것들은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단지 물질 과정과 정신 과정의 고유하고 일반 성품만 드러난다. 드러나는 것에 따라 지혜의 단계가 나누어진다.
선원 정원의 작약
선원 정원의 작은 동산
정원의 귤 꽃
보리수 스님의 + - = x ÷
위빠사나(Vipassana)는 빨리어이다. ‘위(Vi)'는 다양한 방식을 의미하고 '빳사나(passana)'는 봄을 의미하는 복합어로써 '다양한 방식으로 본다’는 뜻이다.
또, 위는 오취온의 세 가지 특성인 무상(아닛짜)하고 고통스럽고(둑카) 무아(아낫타)를 뜻하고, 빳사나는 앎 또는 바른 이해를 의미한다. 합쳐진 뜻은 마음(名; nāma)과 몸(色; rūpa)의 세 가지 특성에 대한 바른 이해를 뜻한다.
다른 또, 위빠사나는 꿰뚫어 보다. 또는 똑바로 안다는 뜻이다. 위빠사나는 세간의 진실한 모습을 볼 때 선입견, 편견, 욕구의 개입 없이 현상 그 자체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위빠사나는 어느 정도의 선정(집중)을 얻는 것뿐 아니라 오취온(몸, 느낌, 지각, 정신적 형성, 의식) 현상에 무상, 고, 무아(비인격적 성품)가 그대로 드러난다. 따라서 수행자가 자기 경험을 통해 오취온을 무상, 고, 무아로 드러난 것을 알았을 때가 바로 위빠사나이다.
위빠사나를 영어권에서는 ‘통찰 insight’라 하고 한문권에서는 내관(內觀)이라 한다. 사띠를 영어권에서는 mindful이라 하고 한문권에서는 念이라 하고 한국에서는 알아차림, 마음챙김, 새김이라 한다. 하지만 위빠사나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실제로 수행하는 수행자들이고 분명히 아는 사람은 지혜를 얻은 자뿐이다.
위빠사나 수행은 사띠빳타나(사띠 확립)라고도 한다. 사띠를 지닐 때 위빠사나 지혜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위빠사나 지혜는 물질인 육체 현상과 정신 현상의 진정한 본질에 대한 이해를 말한다.
위빠사나 지혜를 얻으려면 산란한 상태가 없는 집중 상태인 청정한 마음이어야 한다. 즉 집중으로 마음이 정화될 때 지혜가 일어난다. 마음 집중은 지속하는 세심한 알아차림이 있어야 한다. 지속하는 사띠를 지니기 위해서는 장애, 방해 요소를 극복하는 정진이 있어야 한다. 정진이 있으려면 불법승 삼보와 수행법에 대한 강하고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 믿음(saddha)을 바탕으로 정진력(viriya)이 일어나고, 정진력을 바탕으로 사띠(sati)가 일어나며, 사띠가 유지되는 것이 마음 집중(samādhi)이며, 마음 집중으로 산란함이 없는 상태에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아 대상의 변화 과정을 볼 때, 위빠사나 지혜(paññā)가 일어난다.
집중수행 몇 년, 미얀마 몇 년이 아닌 이 다섯 가지가 나서서 일해야 한다. 수행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 다섯 가지를 오근(빤짜인드리아)이라 하며 나서서 일할 때를 오력(빤짜발라)이라고 한다. 이 다섯 가지 마음의 기능을 예리하게 지니고 반복으로 강하게 키우면서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위빠사나 지혜가 일어나려면 현재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세심하게 꿰뚫어야 한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몸과 마음의 현상을 사띠로 주시하고, 지켜보는 것이 바로 위빠사나 수행이다.
위빠사나의 원칙
원칙을 기억하자. 일어나는 바로 그때, 있는 그대로 정신 차려서 알아차리고, 주시해야 한다. 자기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 어떠하든 무엇이든지 그 대상에 대해 생각, 분석, 비판, 개념화하면 하는 것을 바로 알면 그것들은 더 이상 진행하지 않고 단지 물질 과정과 정신 과정의 고유하고 일반 성품만 드러난다. 드러나는 것에 따라 지혜의 단계가 나누어진다.
선원 정원의 작약
선원 정원의 작은 동산
정원의 귤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