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위와 의도
☞ 위빠사나 지혜가 없으면 지금 하는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일으킬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결과를 보고 그 원인을 유추하거나 추측합니다.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의 관계도 명확히 모르기에 이를 ‘자신’, ‘영혼’으로 여기거나, 하나로 따로 여깁니다. 이러한 몸-마음의 연관 관계를 이해하는 첫 단계가 바로 의도입니다.
원인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에 앞서 ‘의도’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의도는 현재와 미래의 중간에 있으며, 모든 행위(몸, 말, 마음)의 출발점이 됩니다. 예를 들어, 걷기 위해서는 걷고자 하는 의도가 필요합니다.
업의 본질과 과정
업(깜마)은 몸, 말, 마음의 모든 행위를 포함합니다. 특히 마음에서 시작한 단순한 생각이 반복되거나 확대될 때 강력한 업이 됩니다.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그 업의 힘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예를 들어,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생각이 자주 일어나면 결국 그것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모릅니다. 이 방법이 바로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의도는 마음과 몸의 중간에 있으며, 의도는 몸의 근본 요소인 바람 요소를 자극해 우리가 걷거나 구부리는 등의 행위를 하도록 만듭니다. 마치 거센 물살에 몸을 던지면 그 흐름에 따라 떠내려가듯이, 우리는 의도의 속도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를 모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스스로 움직인다고 여깁니다.
사띠의 중요성
생각이나 느낌(웨다나)이 일어날 때 즉시 마음을 대상에 두고 면밀하고 정확하게 살피지 않으면 탐욕과 성냄 같은 번뇌가 커져 고통을 일으키며 업의 힘을 강하게 합니다. 그러나 명확한 알아차림을 통해 업이 발생하는 순간을 사띠할 수 있다면 번뇌가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는 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업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명확히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걷고자 하는 의도가 생길 때, 이 의도 또한 원인이 있어 일어난 것입니다. 모든 것은 원인을 가지며, 이는 우리가 지어 놓은 업의 결과입니다. 만일 생각이 일어났을 때 바로 사띠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 사라지더라도 그 결과로 의업이 됩니다. 이때 특정 생각으로 성냄이 일어나면 괴로운 느낌(웨다나)이 발생하고, 집착이 강할수록 괴로움은 커집니다. 괴로움이 있으면 절대 행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의 업과 업의 결과
업은 몸, 말, 마음의 행위로 이루어집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업이 생각으로만 그치면 마음의 업으로 머물지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그 업은 점차 강해집니다. 불건전하고 극단의 생각이 반복되면 결국 말과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의업이 더 발전하지 않고 멈추면 더 이상의 업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면 그 결과는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생각이 업이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번뇌로 인해 괴로워진다면 이는 곧 과보를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생각이 생길 때 바로 마음을 대상에 두고 면밀하고 정확하게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탐욕(로바), 성냄(도사)으로 생각이 자꾸 커져 갈애와 어리석음, 잘못된 견해가 점차 강해집니다. 그러나 사띠(명확한 알아차림)가 있다면 업은 사라집니다. 사실 업이 사라진다기보다는 다시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고,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인식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바로 사띠하지 않으면 업의 힘은 점점 강해지며 결국 말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사띠와 어리석음
몸과 마음의 현상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을 명확히 보면 업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모를 때만 업이 생깁니다. 업을 피하려면 현상을 명확히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업과 불선업의 결과를 두려워하기보다, 무지한 상태에서 업이 발생하므로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것만 기억하자
업의 힘을 다루기 위해서는 의도와 사띠가 핵심입니다. 의도와 사띠가 부족하면 무지로 인해 업의 힘이 점점 강해지므로,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의 현상을 일어나는 순간 바로 주의 깊고 세심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필수입니다.



행위와 의도
☞ 위빠사나 지혜가 없으면 지금 하는 말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일으킬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결과를 보고 그 원인을 유추하거나 추측합니다. 마찬가지로 몸과 마음의 관계도 명확히 모르기에 이를 ‘자신’, ‘영혼’으로 여기거나, 하나로 따로 여깁니다. 이러한 몸-마음의 연관 관계를 이해하는 첫 단계가 바로 의도입니다.
원인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알기 위해서는 말과 행동에 앞서 ‘의도’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의도는 현재와 미래의 중간에 있으며, 모든 행위(몸, 말, 마음)의 출발점이 됩니다. 예를 들어, 걷기 위해서는 걷고자 하는 의도가 필요합니다.
업의 본질과 과정
업(깜마)은 몸, 말, 마음의 모든 행위를 포함합니다. 특히 마음에서 시작한 단순한 생각이 반복되거나 확대될 때 강력한 업이 됩니다.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그 업의 힘은 더욱 강력해집니다. 예를 들어, 부정적이고 극단적인 생각이 자주 일어나면 결국 그것이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현재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모릅니다. 이 방법이 바로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의도는 마음과 몸의 중간에 있으며, 의도는 몸의 근본 요소인 바람 요소를 자극해 우리가 걷거나 구부리는 등의 행위를 하도록 만듭니다. 마치 거센 물살에 몸을 던지면 그 흐름에 따라 떠내려가듯이, 우리는 의도의 속도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를 모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스스로 움직인다고 여깁니다.
사띠의 중요성
생각이나 느낌(웨다나)이 일어날 때 즉시 마음을 대상에 두고 면밀하고 정확하게 살피지 않으면 탐욕과 성냄 같은 번뇌가 커져 고통을 일으키며 업의 힘을 강하게 합니다. 그러나 명확한 알아차림을 통해 업이 발생하는 순간을 사띠할 수 있다면 번뇌가 확대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이는 업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업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과정을 명확히 알아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걷고자 하는 의도가 생길 때, 이 의도 또한 원인이 있어 일어난 것입니다. 모든 것은 원인을 가지며, 이는 우리가 지어 놓은 업의 결과입니다. 만일 생각이 일어났을 때 바로 사띠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 사라지더라도 그 결과로 의업이 됩니다. 이때 특정 생각으로 성냄이 일어나면 괴로운 느낌(웨다나)이 발생하고, 집착이 강할수록 괴로움은 커집니다. 괴로움이 있으면 절대 행복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마음의 업과 업의 결과
업은 몸, 말, 마음의 행위로 이루어집니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업이 생각으로만 그치면 마음의 업으로 머물지만,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면 그 업은 점차 강해집니다. 불건전하고 극단의 생각이 반복되면 결국 말과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의업이 더 발전하지 않고 멈추면 더 이상의 업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각이 행동으로 이어지면 그 결과는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의 생각이 업이 될 수도, 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번뇌로 인해 괴로워진다면 이는 곧 과보를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생각이 생길 때 바로 마음을 대상에 두고 면밀하고 정확하게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탐욕(로바), 성냄(도사)으로 생각이 자꾸 커져 갈애와 어리석음, 잘못된 견해가 점차 강해집니다. 그러나 사띠(명확한 알아차림)가 있다면 업은 사라집니다. 사실 업이 사라진다기보다는 다시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고, 사라짐을 있는 그대로 인식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바로 사띠하지 않으면 업의 힘은 점점 강해지며 결국 말과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사띠와 어리석음
몸과 마음의 현상에서 일어남과 사라짐을 명확히 보면 업은 발생하지 않습니다. 모를 때만 업이 생깁니다. 업을 피하려면 현상을 명확히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업과 불선업의 결과를 두려워하기보다, 무지한 상태에서 업이 발생하므로 현상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는 무지를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것만 기억하자
업의 힘을 다루기 위해서는 의도와 사띠가 핵심입니다. 의도와 사띠가 부족하면 무지로 인해 업의 힘이 점점 강해지므로, 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의 현상을 일어나는 순간 바로 주의 깊고 세심하게 알아차리는 것이 필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