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와 불안, 성냄에서 벗어나 차분하고 즐거운 상태의 변화는 누구나 원한다. 바람직한 변화는 그렇지 못한 변화를 약하게 하거나 변화 자체가 없도록 한다. 누구나 이런 변화를 원하고 바라지만 실상은 생각뿐 지난 달력 한 장을 찢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다. 무엇 때문에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못하나? 원함이 약해서인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아서일까? 실상은 진정 원하는 가치를 모르기에 막연한 바람만 있지 진정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랬으면 좋겠다는 이런저런 많은 생각 중의 하나일 뿐이라서 그렇다. 이에는 어리석음과 게으름이 큰 몫을 차지한다. 또 이 원함보다 다른 것을 하고 싶은 것이 앞서기에 이번 기회에는 잊히거나 뒤처지고 그러다가 잊혀지면 다시 시작한다. 후회의 반복이다.
어느 때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바람직한 변화가 생길까?
우선은 이리저리 과거와 미래로 방황하는 산란한 마음이 없고 마음이 안정될 때 일어난다. 즉 집중의 상태가 자신이 변화될 때이다. 이보다 더 분명한 변화는 지혜가 일어날 때이다.
알고 보면 이 세상을 이끄는 가장 힘이 강한 것은 마음이다.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왜 저런가?’ 하지만 실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마음이 그렇게 한 것이다. 자애, 연민, 평온, 기쁨, 환희, 즐거움, 행복 이런 마음이 있을 때와 성냄, 질투, 자만, 인색의 마음이 있을 때가 다른 것은 ‘성격’, ‘학력’, ‘나이’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다.
자애, 연민, 즐거움, 행복 등은 마음이 집중이 되었을 때만 일어난다. 집중이 안 되면 마음이 산만하고 산란하고 방황하고 요동친다. 이럴 때, 성냄, 질투, 우울, 스트레스, 슬픔, 후회, 경쟁, 무시 등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정신적 상태가 일어난다. 이 상태에서 말과 행위를 하면 상대에게 피해를 주고 관계가 악화하여 후회와 자책으로 낮은 자존감이 더 낮아진다. 또한, 이 상태에서 행동하면 격한 몸짓이나 거친 손짓으로 상태를 더 악화시켜 가족도 적으로 만들어 자신과 상대 모두 심한 마음의 상처를 깊게 한다.
알고 보면 자신이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살아온 많은 날로서 손아래 사람들이 있고, 나이가 있어 어른이고, 배운 지식이 있고, 살아온 날에서 많은 사람과 상대한 경험이 있고,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한 것을 안 것이 있고, 남들이 가보지 못하고 먹어보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을 했다고 해도 산란한 상태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잊어날 수밖에 없다. 이제 바람직한 방향으로 왜 움직이지 못한지 알았다. 그 해결 방법은 마음이 산란하지 않도록 다스리는 것이다.
소리가 들릴 때 마음은 바깥으로 향하여 느낌(웨다나)에 따라 소리에 대해 좋다, 싫다고 판단한다. 좋다고 판단하는 것을 모르면 원하고 취하고 움켜쥐려는 탐욕으로 이어지고, 싫다는 판단이 일어남을 모르면 불만족이 일어난다. 마음이 바깥으로 향해 망아지처럼 산란한 상태가 되어서 그런 것이다. 바깥을 향한 마음을 안으로 끌어들여서 들릴 때 들리는 것을 아는 상태가 지속하는 것이 집중이다.
음료수를 마시려면 팔을 움직여야 한다. 이때 움직이는 팔에 마음을 기울인다. 내 팔이 아니라 음료수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움직이는 것에만 마음을 기울여 움직임은 감각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 상태가 지속하는 것이 집중이다.
걸을 때는 발바닥에 마음을 기울이고, 음식을 씹을 때 치아와 혀의 움직임에 마음을 기울인다. 이러면 마음은 바깥으로 향하지 않는다. 이 상태가 집중이며 집중의 상태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생각만으로는 복잡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해보면 매우 간단하다.
후회와 불안, 성냄에서 벗어나 차분하고 즐거운 상태의 변화는 누구나 원한다. 바람직한 변화는 그렇지 못한 변화를 약하게 하거나 변화 자체가 없도록 한다. 누구나 이런 변화를 원하고 바라지만 실상은 생각뿐 지난 달력 한 장을 찢는 것으로 대신할 뿐이다. 무엇 때문에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못하나? 원함이 약해서인가? 원하는 것이 분명하지 않아서일까? 실상은 진정 원하는 가치를 모르기에 막연한 바람만 있지 진정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랬으면 좋겠다는 이런저런 많은 생각 중의 하나일 뿐이라서 그렇다. 이에는 어리석음과 게으름이 큰 몫을 차지한다. 또 이 원함보다 다른 것을 하고 싶은 것이 앞서기에 이번 기회에는 잊히거나 뒤처지고 그러다가 잊혀지면 다시 시작한다. 후회의 반복이다.
어느 때 어떻게 해야 자신에게 바람직한 변화가 생길까?
우선은 이리저리 과거와 미래로 방황하는 산란한 마음이 없고 마음이 안정될 때 일어난다. 즉 집중의 상태가 자신이 변화될 때이다. 이보다 더 분명한 변화는 지혜가 일어날 때이다.
알고 보면 이 세상을 이끄는 가장 힘이 강한 것은 마음이다. 마음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왜 저런가?’ 하지만 실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마음이 그렇게 한 것이다. 자애, 연민, 평온, 기쁨, 환희, 즐거움, 행복 이런 마음이 있을 때와 성냄, 질투, 자만, 인색의 마음이 있을 때가 다른 것은 ‘성격’, ‘학력’, ‘나이’ 때문이 아니라 마음 때문이다.
자애, 연민, 즐거움, 행복 등은 마음이 집중이 되었을 때만 일어난다. 집중이 안 되면 마음이 산만하고 산란하고 방황하고 요동친다. 이럴 때, 성냄, 질투, 우울, 스트레스, 슬픔, 후회, 경쟁, 무시 등 전혀 바람직하지 않은 정신적 상태가 일어난다. 이 상태에서 말과 행위를 하면 상대에게 피해를 주고 관계가 악화하여 후회와 자책으로 낮은 자존감이 더 낮아진다. 또한, 이 상태에서 행동하면 격한 몸짓이나 거친 손짓으로 상태를 더 악화시켜 가족도 적으로 만들어 자신과 상대 모두 심한 마음의 상처를 깊게 한다.
알고 보면 자신이 그런 것이 아니다. 자신은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안다. 살아온 많은 날로서 손아래 사람들이 있고, 나이가 있어 어른이고, 배운 지식이 있고, 살아온 날에서 많은 사람과 상대한 경험이 있고, 다른 사람이 알지 못한 것을 안 것이 있고, 남들이 가보지 못하고 먹어보지 못하고 보지 못한 것을 했다고 해도 산란한 상태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잊어날 수밖에 없다. 이제 바람직한 방향으로 왜 움직이지 못한지 알았다. 그 해결 방법은 마음이 산란하지 않도록 다스리는 것이다.
소리가 들릴 때 마음은 바깥으로 향하여 느낌(웨다나)에 따라 소리에 대해 좋다, 싫다고 판단한다. 좋다고 판단하는 것을 모르면 원하고 취하고 움켜쥐려는 탐욕으로 이어지고, 싫다는 판단이 일어남을 모르면 불만족이 일어난다. 마음이 바깥으로 향해 망아지처럼 산란한 상태가 되어서 그런 것이다. 바깥을 향한 마음을 안으로 끌어들여서 들릴 때 들리는 것을 아는 상태가 지속하는 것이 집중이다.
음료수를 마시려면 팔을 움직여야 한다. 이때 움직이는 팔에 마음을 기울인다. 내 팔이 아니라 음료수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움직이는 것에만 마음을 기울여 움직임은 감각으로 드러날 것이다. 이 상태가 지속하는 것이 집중이다.
걸을 때는 발바닥에 마음을 기울이고, 음식을 씹을 때 치아와 혀의 움직임에 마음을 기울인다. 이러면 마음은 바깥으로 향하지 않는다. 이 상태가 집중이며 집중의 상태에서 변화가 일어난다. 생각만으로는 복잡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해보면 매우 간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