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에서 거룩한 마음가짐 네 가지는 자애(mettā), 연민(karuṇā), 더불어 기뻐함(muditā), 평온(upekkhā)이다.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자애 수행의 여덟 가지 이익을 말한다. “편안하게 잠들고, 편안하게 깨어나고, 악몽을 꾸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비인간들이 좋아하고, 신들이 보호하고, 불이나 독이나 무기가 그를 해치지 못하고, 더 높은 경지를 통찰하지 못하더라도 범천의 세상에서 태어난다.”
청정도론에 나온 자애의 뜻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자애의 뜻은 호의를 가지기 때문에 자애이다. 애정을 가진다는 뜻이다. 친구에 대한 태도이기 때문에, 혹은 이것은 친구에게 일어나기 때문에 자애이다. 자애는 복리의 형태로 일어나는 것이 그 특징이다. 복리를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증오를 조복함으로 나타난다. 중생에 대해 사랑스러움을 보는 것이 가까운 원인이다. 악의를 가라앉힐 때 이것을 성취하고 갈애를 일으킬 때 실패한다.”
또한 자애는 악의를, 연민은 잔인함을, 같이 기뻐함은 따분함을, 평온은 적의와 찬사를 가라앉힐 때 성취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수행에 기반한 언설들이다. 아직 자애의 마음을 깊이 체험하지 못하고 있지만 평상시 자애의 마음을 품기만 해도 상반되는 감정인 증오와 분노가 가라앉음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불선한 감정과 연관되어 생기는 스트레스 호르몬에 의한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줄일 수 있다.
오래전 교원연수에서 처음 자애수행을 접했을 때다. 스님께서 생활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자애를 보내라는 법문을 하셨다. 아마 “당신이 행복하고 평온하고 건강하기를~”이런 문구를 마음에 되뇌며 자애를 보내라는 것으로 기억한다. 여담으로 혼잡한 버스나 전철에서 많은 사람들 때문에 짜증을 내기 쉬운데 이때가 엄청나게 많은 자애를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아니겠는가? 하는 말씀도 하셨다. 기회를 내서 자애수행만을 지도받은 적은 없다. 집중수행을 마치는 날에 한나절 정도만의 경험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스님 말씀에 따라 아침 산책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버스 탈 때, 전철 탈 때 의도적으로 자애의 문구를 마음속으로 염송한다. 밤길에 낯선 사람과 조우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면 혼잡에 따른 짜증도 없어지고, 타자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도 누그러지고, 그래서 마음이 온유해져서 좋다.
자애의 사회적 함의를 생각해 보았다. 교육을 포함해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협동보다 경쟁을 강조하는 것이다. 비단 우리 사회뿐이겠는가만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가 초래한 승자독식과 사회적 부의 편중, 수많은 굶주림과 불평등의 양산, 자본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의도적 갈등 조장과 분쟁의 유발 … . 그 결과 불행하게도 눈부신 물질 문명에 비정한 약육강식의 초라한 정신 문화가 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사회생물학적 연구는 오늘날 인간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고 문명을 일굴 수 있었던 근본적인 요인은 경쟁보다 협동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We are the world는 구호가 아니라 생명의 실상이다. 우리는 그것을 코로나 역병을 통해 생생히 경험했다. 누군가 아프면 나도 아플 수 있다는 사실. 따라서 모든 존재가 건강해야 나 역시 건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위에 개인적 감정으로 미워하는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사회에 몸담고 살아가는지라 Homo politicus임을 벗어날 수 없다. 정치적 견해와 올바름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특히 사실을 왜곡하는 뉴스를 볼 때 적개심과 분노가 솟구칠 때가 많다. 곰곰이 생각하다 궁여지책으로 그 감정을 연민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러한 감정이 옅어짐을 느낄 수 있어서 쓸모가 있는 방법이라고 자평한다. 가끔은 나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맞는지도 의심한다. 더 나아가 그 감정마저도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순간에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거듭 숙고하고 노력해야 하겠다.
오늘 하루도 나부터 자애를 일으키고 마주치는 사람마다 자애를 기원한다.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모든 존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내가 악의에서 벗어나기를~ 모든 존재들이 악의에서 벗어나기를~
내가 정신적, 육체적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모든 존재들이 정신적, 육체적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불교에서 거룩한 마음가짐 네 가지는 자애(mettā), 연민(karuṇā), 더불어 기뻐함(muditā), 평온(upekkhā)이다. 앙굿따라 니까야에서 자애 수행의 여덟 가지 이익을 말한다. “편안하게 잠들고, 편안하게 깨어나고, 악몽을 꾸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비인간들이 좋아하고, 신들이 보호하고, 불이나 독이나 무기가 그를 해치지 못하고, 더 높은 경지를 통찰하지 못하더라도 범천의 세상에서 태어난다.”
청정도론에 나온 자애의 뜻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자애의 뜻은 호의를 가지기 때문에 자애이다. 애정을 가진다는 뜻이다. 친구에 대한 태도이기 때문에, 혹은 이것은 친구에게 일어나기 때문에 자애이다. 자애는 복리의 형태로 일어나는 것이 그 특징이다. 복리를 가져오는 역할을 한다. 증오를 조복함으로 나타난다. 중생에 대해 사랑스러움을 보는 것이 가까운 원인이다. 악의를 가라앉힐 때 이것을 성취하고 갈애를 일으킬 때 실패한다.”
또한 자애는 악의를, 연민은 잔인함을, 같이 기뻐함은 따분함을, 평온은 적의와 찬사를 가라앉힐 때 성취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수행에 기반한 언설들이다. 아직 자애의 마음을 깊이 체험하지 못하고 있지만 평상시 자애의 마음을 품기만 해도 상반되는 감정인 증오와 분노가 가라앉음을 느낄 수 있다. 더불어 불선한 감정과 연관되어 생기는 스트레스 호르몬에 의한 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줄일 수 있다.
오래전 교원연수에서 처음 자애수행을 접했을 때다. 스님께서 생활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에게 자애를 보내라는 법문을 하셨다. 아마 “당신이 행복하고 평온하고 건강하기를~”이런 문구를 마음에 되뇌며 자애를 보내라는 것으로 기억한다. 여담으로 혼잡한 버스나 전철에서 많은 사람들 때문에 짜증을 내기 쉬운데 이때가 엄청나게 많은 자애를 보낼 수 있는 기회가 아니겠는가? 하는 말씀도 하셨다. 기회를 내서 자애수행만을 지도받은 적은 없다. 집중수행을 마치는 날에 한나절 정도만의 경험이 있을 뿐이다. 하지만 스님 말씀에 따라 아침 산책에서, 엘리베이터에서, 버스 탈 때, 전철 탈 때 의도적으로 자애의 문구를 마음속으로 염송한다. 밤길에 낯선 사람과 조우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면 혼잡에 따른 짜증도 없어지고, 타자에 대한 경계심과 두려움도 누그러지고, 그래서 마음이 온유해져서 좋다.
자애의 사회적 함의를 생각해 보았다. 교육을 포함해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협동보다 경쟁을 강조하는 것이다. 비단 우리 사회뿐이겠는가만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체제가 초래한 승자독식과 사회적 부의 편중, 수많은 굶주림과 불평등의 양산, 자본의 이익을 달성하기 위한 의도적 갈등 조장과 분쟁의 유발 … . 그 결과 불행하게도 눈부신 물질 문명에 비정한 약육강식의 초라한 정신 문화가 이 세계를 주도하고 있다. 사회생물학적 연구는 오늘날 인간이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고 문명을 일굴 수 있었던 근본적인 요인은 경쟁보다 협동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We are the world는 구호가 아니라 생명의 실상이다. 우리는 그것을 코로나 역병을 통해 생생히 경험했다. 누군가 아프면 나도 아플 수 있다는 사실. 따라서 모든 존재가 건강해야 나 역시 건강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위에 개인적 감정으로 미워하는 사람들은 없다. 하지만 사회에 몸담고 살아가는지라 Homo politicus임을 벗어날 수 없다. 정치적 견해와 올바름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면, 특히 사실을 왜곡하는 뉴스를 볼 때 적개심과 분노가 솟구칠 때가 많다. 곰곰이 생각하다 궁여지책으로 그 감정을 연민으로 바꾸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그러한 감정이 옅어짐을 느낄 수 있어서 쓸모가 있는 방법이라고 자평한다. 가끔은 나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맞는지도 의심한다. 더 나아가 그 감정마저도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순간에는 그렇게 하지 못한다. 거듭 숙고하고 노력해야 하겠다.
오늘 하루도 나부터 자애를 일으키고 마주치는 사람마다 자애를 기원한다.
‘내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모든 존재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화롭기를~
내가 악의에서 벗어나기를~ 모든 존재들이 악의에서 벗어나기를~
내가 정신적, 육체적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 모든 존재들이 정신적, 육체적 괴로움에서 벗어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