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행은 정진력(노력하는 힘)을 키우는 자세이며, 마음의 활력을 일으킵니다.
* 활력((活力): 활동하는 힘, 즉 무언가를 움직이고 지속하게 하는 생기, 에너지(국어사전)
위빠사나 수행에서 마음의 활력은 대상을 놓치지 않고 계속 관찰하게 하는 힘입니다.
흥분하거나 이를 악물고 노력하는 힘과는 다릅니다.
노력이 약하면 졸음이나 멍함, 게으름으로 기울고, 노력이 강하면 긴장, 초조, 과도한 애씀으로 기웁니다.
노력과 집중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때 편안하면서도 분명하게 관찰이 지속됩니다.
보리수 스님께서 수행할 때 늘 마음의 활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 하시지만,
솔직히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냥 명칭만 잘 붙이고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제 마음대로 생각하고 뭉뚱그려 넘겼던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 제주 집중수행을 하면서 제가 그동안
어설프게 안다고 착각하며 수행해 왔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라도 분명하게 알면서 하자고 마음을 먹었지요.
경행에서 닿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저는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제 수준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닿음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동안 닿음에만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발이 바닥에 닿을 때와 닿고 나서, 그 다음 움직임이 일어날 때까지 닿음도 매번 조금씩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닿음이 더 분명히 드러나 그 대상을 중심으로 관찰했고,
이후에는 듦-닿음의 움직임도 함께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경행을 하다가 문득 스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의 활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활력을 일으키는 것 역시 마음이 부지런히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기억 났습니다.
보리수 스님께서 미얀마에서 수행하실 때, 자신을 던져 수행한 유일한 가르침은
“천천히 움직여라, 모든 것에 명칭을 붙여라.” 였다고 합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며 움직임은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틀려도 괜찮으니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명칭을 붙여보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움직임이 느릴 때 명칭을 얼마나 많이 붙일 수 있는지 아시나요?
발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몸의 감각, 눈을 깜박이는 것, 침을 삼키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생각, 마음, 놓침 등등 너무 많아 놀랐고,
놓친 것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몸은 이미 저만큼 움직이고 있고...
그래서 닭이 바로 앞의 모이만 쪼아 먹듯 현재 대상만 보고 가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명칭을 붙이다 성급한 마음이 일어나면 성급함이라고 알고 명칭을 붙이면 그 성급함이 어느새 없어지고
현재의 움직임만 분명하게 남아 그 움직임을 알고 명칭을 붙였습니다.
명칭 붙이는 일이 쉽지 않고 ‘패스’ 하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모든 것에 명칭을 붙여라’는 말씀만 붙잡고 계속 노력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언제부터인가 경행을 하는 동안 힘들거나 아프지 않고 대상에 계속 명칭을 붙일 수 있게 되었고,
그대로 좌선까지 이어지게 되더군요.
경행에서 마음의 활력을 키우고 싶으신가요?
욕심내지 말고 ‘닿음’처럼 지금 분명한 한 가지 대상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모든 현상을 빠짐없이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강하게 드러나는 몸과 마음의 현상에 간단히 명칭을 붙이면 됩니다.
경행은 정진력(노력하는 힘)을 키우는 자세이며, 마음의 활력을 일으킵니다.
* 활력((活力): 활동하는 힘, 즉 무언가를 움직이고 지속하게 하는 생기, 에너지(국어사전)
위빠사나 수행에서 마음의 활력은 대상을 놓치지 않고 계속 관찰하게 하는 힘입니다.
흥분하거나 이를 악물고 노력하는 힘과는 다릅니다.
노력이 약하면 졸음이나 멍함, 게으름으로 기울고, 노력이 강하면 긴장, 초조, 과도한 애씀으로 기웁니다.
노력과 집중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때 편안하면서도 분명하게 관찰이 지속됩니다.
보리수 스님께서 수행할 때 늘 마음의 활력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 하시지만,
솔직히 그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냥 명칭만 잘 붙이고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제 마음대로 생각하고 뭉뚱그려 넘겼던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 제주 집중수행을 하면서 제가 그동안
어설프게 안다고 착각하며 수행해 왔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 가지라도 분명하게 알면서 하자고 마음을 먹었지요.
경행에서 닿음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신가요?
저는 대답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대답하지 못하는 것이 현재 제 수준임을 인정했습니다.
그리고 닿음이 무엇인지 알고자 한동안 닿음에만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발이 바닥에 닿을 때와 닿고 나서, 그 다음 움직임이 일어날 때까지 닿음도 매번 조금씩 달랐습니다.
당시에는 닿음이 더 분명히 드러나 그 대상을 중심으로 관찰했고,
이후에는 듦-닿음의 움직임도 함께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경행을 하다가 문득 스님께서 말씀하신 마음의 활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활력을 일으키는 것 역시 마음이 부지런히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씀이 기억 났습니다.
보리수 스님께서 미얀마에서 수행하실 때, 자신을 던져 수행한 유일한 가르침은
“천천히 움직여라, 모든 것에 명칭을 붙여라.” 였다고 합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며 움직임은 욕심내지 말고 천천히,
틀려도 괜찮으니 놓치지 않고 부지런히 명칭을 붙여보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움직임이 느릴 때 명칭을 얼마나 많이 붙일 수 있는지 아시나요?
발의 움직임 뿐만 아니라 몸의 감각, 눈을 깜박이는 것, 침을 삼키는 것,
보는 것, 듣는 것, 냄새, 생각, 마음, 놓침 등등 너무 많아 놀랐고,
놓친 것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는 동안 몸은 이미 저만큼 움직이고 있고...
그래서 닭이 바로 앞의 모이만 쪼아 먹듯 현재 대상만 보고 가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명칭을 붙이다 성급한 마음이 일어나면 성급함이라고 알고 명칭을 붙이면 그 성급함이 어느새 없어지고
현재의 움직임만 분명하게 남아 그 움직임을 알고 명칭을 붙였습니다.
명칭 붙이는 일이 쉽지 않고 ‘패스’ 하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모든 것에 명칭을 붙여라’는 말씀만 붙잡고 계속 노력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언제부터인가 경행을 하는 동안 힘들거나 아프지 않고 대상에 계속 명칭을 붙일 수 있게 되었고,
그대로 좌선까지 이어지게 되더군요.
경행에서 마음의 활력을 키우고 싶으신가요?
욕심내지 말고 ‘닿음’처럼 지금 분명한 한 가지 대상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모든 현상을 빠짐없이 붙잡으려 애쓰기보다, 강하게 드러나는 몸과 마음의 현상에 간단히 명칭을 붙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