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위빠사나 법문을 들으며 고민하고 어려움을 느꼈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스님께서 수행의 대상에서는 두 가지 성품이 있다고 하신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대상이 지닌 고유한 성질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현상에 공통된(일반적) 성품이다.
예를 들어 딱딱함, 부드러움, 뜨거움, 차가움 같은 감각들은 대상의 고유한 성질이다. 그런데 그런 감각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다 보면, 그것들이 단지 한 순간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것임을 알게 된다. 스님께서는 이것을 ‘무상, 고, 무아’라는 세 가지 성품으로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그 뜻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 이해되기까지는 솔직히 긴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고유한 성질과 공통된 성품이 따로따로 이해되었지만, 수행을 이어가면서 점차 두 가지가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받아들이는 깊이도 조금씩 달라졌다. 고유한 성질을 자주 보고 알아차릴수록, 지금의 삶을 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수용하는 힘도 조금씩 생겨났다.
나아가 ‘일어난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라는 사실이 점차 가슴 깊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 진실을 받아들일수록, 집착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이런 체험이 쌓일수록, 스님의 법문이 더욱 깊이 새겨진다. 스님께서 직접 법문을 해주시거나, 수행자들의 질문에 답하실 때, 그 명확한 말씀 속에서 자연스럽게 기쁨이 일어난다. 정신이 맑아지고, 수행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단단해진다. 때로는 녹음된 법문을 듣는 것만으로도, 피곤했던 마음이 다시금 밝아지고, 활력을 되찾는다.
그렇다고 법문이 언제나 가슴에 와닿았던 것은 아니다. 집중 수행이나 초보 과정을 참여했을 때는, 가르침이 수행 현장에서 직접 체험되는 내용이라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대념처경 강의를 들었을 때는, 내용이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스님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자신이 불편했고, 때때로 속상하기도 했다. 반대로 질문하고 싶어도 어느 시점에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그만두기 일쑤였다.
초반 강의에서 스님은 수행 자세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특별한 가르침은 아니었다. 자세를 잡은 뒤, “침대처럼 움직이지 말아라.” 하신 말씀인데, 그 순간 움직임 없는 침대의 이미지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짧은 말씀이었지만 분명히 이해되니 기뻤다. 아무리 작고 단순한 가르침이라도, 마음에서 명확히 받아들여지는 순간 마음은 환해진다.
호흡 수행에 대한 설명도 기억에 남는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그저 그대로 알아차리라고 하셨다. 동물에 비유하시며, 토끼나 개는 호흡이 짧고, 코끼리는 길 것이니, 호흡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고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바라보라고 하셨다. 이해를 돕는 그 비유가 고마웠고, 긴장에서 벗어나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이해가 조금씩 쌓이다가도, 다시 막히는 지점이 생기곤 했다. 특히 ‘대상의 성품을 보아야 한다’라는 말씀이 그랬다. 솔직히 처음에는 ‘대상’이라는 말 자체도 어려웠다. 그런 상태에서 ‘성품을 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는 이해되는 듯하다가도, 돌아서면 다시 흐려졌다. 그 뜻이 마음속에서 명확하게 이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대상의 성품을 본다는 것은, 말로는 단순해 보여도, 그대로 머물러 알아차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반복해 관찰하다 보면, 비로소 참된 이해가 생겨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렇듯 수행안에서 가르침이 서서히 이해되고 체험으로 이어지다 보면,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그 이유가 자연스레 분명해진다. 그래서 오늘도, 그 가르침 앞에 조용히 고개 숙인다. 다시 배우는 마음이 된다.
오늘, 위빠사나 법문을 들으며 고민하고 어려움을 느꼈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스님께서 수행의 대상에서는 두 가지 성품이 있다고 하신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하나는 대상이 지닌 고유한 성질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현상에 공통된(일반적) 성품이다.
예를 들어 딱딱함, 부드러움, 뜨거움, 차가움 같은 감각들은 대상의 고유한 성질이다. 그런데 그런 감각들이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알아차리다 보면, 그것들이 단지 한 순간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것임을 알게 된다. 스님께서는 이것을 ‘무상, 고, 무아’라는 세 가지 성품으로 설명해 주셨다.
하지만 그 뜻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마음으로 이해되기까지는 솔직히 긴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는 고유한 성질과 공통된 성품이 따로따로 이해되었지만, 수행을 이어가면서 점차 두 가지가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받아들이는 깊이도 조금씩 달라졌다. 고유한 성질을 자주 보고 알아차릴수록, 지금의 삶을 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며 수용하는 힘도 조금씩 생겨났다.
나아가 ‘일어난 것은, 반드시 사라진다’라는 사실이 점차 가슴 깊이 다가왔다. 그리고 그 진실을 받아들일수록, 집착에서 조금씩 자유로워졌다.
이런 체험이 쌓일수록, 스님의 법문이 더욱 깊이 새겨진다. 스님께서 직접 법문을 해주시거나, 수행자들의 질문에 답하실 때, 그 명확한 말씀 속에서 자연스럽게 기쁨이 일어난다. 정신이 맑아지고, 수행에 대한 믿음과 확신으로 단단해진다. 때로는 녹음된 법문을 듣는 것만으로도, 피곤했던 마음이 다시금 밝아지고, 활력을 되찾는다.
그렇다고 법문이 언제나 가슴에 와닿았던 것은 아니다. 집중 수행이나 초보 과정을 참여했을 때는, 가르침이 수행 현장에서 직접 체험되는 내용이라 어렵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대념처경 강의를 들었을 때는, 내용이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 스님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자신이 불편했고, 때때로 속상하기도 했다. 반대로 질문하고 싶어도 어느 시점에 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다 그만두기 일쑤였다.
초반 강의에서 스님은 수행 자세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특별한 가르침은 아니었다. 자세를 잡은 뒤, “침대처럼 움직이지 말아라.” 하신 말씀인데, 그 순간 움직임 없는 침대의 이미지가 또렷하게 떠올랐다. 짧은 말씀이었지만 분명히 이해되니 기뻤다. 아무리 작고 단순한 가르침이라도, 마음에서 명확히 받아들여지는 순간 마음은 환해진다.
호흡 수행에 대한 설명도 기억에 남는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 짧으면 짧은 대로, 길면 긴 대로 그저 그대로 알아차리라고 하셨다. 동물에 비유하시며, 토끼나 개는 호흡이 짧고, 코끼리는 길 것이니, 호흡에 대한 편견을 갖지 말고 자연스럽게 들어오고 나가는 숨을 바라보라고 하셨다. 이해를 돕는 그 비유가 고마웠고, 긴장에서 벗어나 마음이 편안해졌다.
하지만 이해가 조금씩 쌓이다가도, 다시 막히는 지점이 생기곤 했다. 특히 ‘대상의 성품을 보아야 한다’라는 말씀이 그랬다. 솔직히 처음에는 ‘대상’이라는 말 자체도 어려웠다. 그런 상태에서 ‘성품을 보아야 한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는 이해되는 듯하다가도, 돌아서면 다시 흐려졌다. 그 뜻이 마음속에서 명확하게 이어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알게 되었다. 대상의 성품을 본다는 것은, 말로는 단순해 보여도, 그대로 머물러 알아차리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멈추지 않고 반복해 관찰하다 보면, 비로소 참된 이해가 생겨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렇듯 수행안에서 가르침이 서서히 이해되고 체험으로 이어지다 보면, 왜 이 길을 걷고 있는지, 그 이유가 자연스레 분명해진다. 그래서 오늘도, 그 가르침 앞에 조용히 고개 숙인다. 다시 배우는 마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