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기업에서 명상 가르치는 일을 하던 때이다. 반복적으로 같은 프로그램 명상을 안내하다 보니 마음은 점점 서걱서걱 모래 밟는 소리를 냈다. 황폐했다. 마음이 맑지 못한 상태를 포장하게 되는 것이 무엇보다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일한 만큼 받는 강의료를 포기하고 한 달 넘는 수행 일정을 잡아 미얀마로 떠났다.
간 곳은 아주 큰 사원이다. 매일 법회가 열리고 많은 사람이 와서 법문 듣고 수행한다. 예불과 법회 할 때마다 밖에서도 들을 수 있게 크게 확성기를 틀어놓는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곳저곳에 있는 확성기를 보면서 아마도 참석 못 한 사부대중과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법을 들려주기 위한 배려로 생각하게 되었다.
맨 처음 당황한 것은 법당 창문이 막힌 창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벽 예불 때마다 많은 새가 들어와 이곳저곳 천장 위에 앉아 지저귄다. 더구나 선풍기는 새벽부터 계속 돌아가기에 법당에서 조용함을 기대할 수 없다. 법당을 마주 보고 있는 숙소 또한 창문이 막혀 있지 않아 담 너머 공원에서 아이들 축구하는 소리, 밤마다 한꺼번에 짖어대는 개들의 합창,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함께 읽는 게송 등등 다양한 소리를 매일 듣게 된다. 소리로부터 잠시 자유로울 때는 전기가 나갈 정도로 엄청난 비가 무서울 정도로 한꺼번에 쏟아지며 모든 소리를 잠식하고 귀가 먹먹해질 때이다.
그리고 법당 바닥은 마루지만 하얀 새똥이 여러 곳에서 보이고 흙이 발에 밟힌다. 법당 방석들은 얇은 돗자리 만들어졌는데 땀에 절어 대부분 얼룩이 가득 묻어 있기에 선뜻 집기가 꺼려지고 예불은 물론이고 수행할 때 모기장 없이는 절대 앉아 있을 수 없다. 미얀마에 대한 환상은 뜨거운 여름에 오면 아주 쉽게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곳이 수행처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커다란 법당에 들어서면 수많은 수행자의 숨이 배어있는 듯한 장엄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아주 넓고 길게 펼쳐진 반질거리는 짙은 고동색 마룻바닥은 저절로 마음을 조용하게 한다. 그런데 불 밝혀 놓은 황금빛 부처님은 평소 접해온 자비롭고 인자하신 부처님 모습이 아니다. 마치 모든 고통을 제압한 듯 범접할 수 없는 무한한 강인함이 두드러지면서도 인고한 세월을 지닌 인간적 표정도 있으신 모습이다. 그렇게 부처님은 중앙에 거대하게 앉아 있으시다. 나는 자연스럽게 작디작아져 순수한 마음이 된다.
그런데 나는 안타깝게 이 사원의 수행 일정을 알 수가 없었다. 모두 미얀마어로만 공지되어 있고 상주하는 통역인도 없다. 특별한 경우 외부에 있는 통역인에게 요청하여 상담할 수는 있으나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은 한국 가기 전 한국어를 배우며 공양 돕는 청년에게 부탁하여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해결하고 나머지는 눈치껏 따라갔다. 이런 언어적 어려움과 달리 나는 새벽예불과 법회에 참석하면 스님의 경전 읊는 음색만으로도, 알아듣는 몇 개의 빨리어 단어만으로도 자주 감동되어 울컥했다.
처음에는 새벽 예불 후 숙소에서 수행하다 저녁에 있는 법회와 수행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좀 더 익숙해지면서 새벽 예불 후 그대로 계속 큰 법당에서 수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큰 법당에서 수행하던 수행자들이 바로 옆 복도를 사이에 두고 평소 비어있던 큰 법당으로 옮겨 갔다. 왜 그들이 자리를 옮기는지 몰랐다. 버스를 타고 온 많은 재가자도 그 법당으로 갔다. 점심 공양 후 잠시 그 법당 앞에 서 있었는데 사원 허드렛일을 돕는 나이 드신 분이 come 하며 나를 끌고 그 법당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방석을 놓아주고 수행하라는 몸짓으로 알려주었다.
그분이 나가고 나서 들러보니 이미 벽을 끼고 수행자들이 모두 자리를 잡았다. 앞에도 이미 남자 재가자들, 여자 출가자들 자리가 다 있었다. 그분이 지목해 준 앞자리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님을 직감으로 알고 뒤로 가서 통로 옆자리에 방석을 놓았다.
그리곤 이 자리에서 다른 수행자들과 함께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수행했다. 좀 지나 알게 되었는데 10일 집중 수행에 모두 참여한 것이었다. 여기는 새로 지은 법당이라 에어컨도 있고 닫힌 창문이다. 하지만 연세 든 수행자들이 계셔서인지 수행 중 이런저런 힘듦을 소리로 다 표시 낸다. 거기다 에어컨도 계속 켜져 있기에 여기 역시 조용함은 쉽지 않다. 그리고 많은 참가자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경행은 없다. 만약 한다 해도 공간이 없다. 다만 쉬는 시간 통로를 끼고 걷곤 하는데 알아차림을 두고 걷는 발걸음인지 의심될 정도로 발을 끌면서 걷기에 수행을 이어가려는 나에게는 쉬는 시간은 괴로움이었다.
10일 집중 수행 기간에 매일 법문을 해 주신다. 그런데 언어를 모르니 내용을 이해 못 하고 인터뷰도 요청할 수 없다. 하지만 걱정은 안 되었다. 나에겐 어디에서도 통할 수 있는 보리수선원에서 혹독히 익힌 인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열심히 수행만 했다.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 만큼.
(다음 편에 계속)
어느 기업에서 명상 가르치는 일을 하던 때이다. 반복적으로 같은 프로그램 명상을 안내하다 보니 마음은 점점 서걱서걱 모래 밟는 소리를 냈다. 황폐했다. 마음이 맑지 못한 상태를 포장하게 되는 것이 무엇보다 나에게 고통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일한 만큼 받는 강의료를 포기하고 한 달 넘는 수행 일정을 잡아 미얀마로 떠났다.
간 곳은 아주 큰 사원이다. 매일 법회가 열리고 많은 사람이 와서 법문 듣고 수행한다. 예불과 법회 할 때마다 밖에서도 들을 수 있게 크게 확성기를 틀어놓는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이곳저곳에 있는 확성기를 보면서 아마도 참석 못 한 사부대중과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게 법을 들려주기 위한 배려로 생각하게 되었다.
맨 처음 당황한 것은 법당 창문이 막힌 창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새벽 예불 때마다 많은 새가 들어와 이곳저곳 천장 위에 앉아 지저귄다. 더구나 선풍기는 새벽부터 계속 돌아가기에 법당에서 조용함을 기대할 수 없다. 법당을 마주 보고 있는 숙소 또한 창문이 막혀 있지 않아 담 너머 공원에서 아이들 축구하는 소리, 밤마다 한꺼번에 짖어대는 개들의 합창,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이 함께 읽는 게송 등등 다양한 소리를 매일 듣게 된다. 소리로부터 잠시 자유로울 때는 전기가 나갈 정도로 엄청난 비가 무서울 정도로 한꺼번에 쏟아지며 모든 소리를 잠식하고 귀가 먹먹해질 때이다.
그리고 법당 바닥은 마루지만 하얀 새똥이 여러 곳에서 보이고 흙이 발에 밟힌다. 법당 방석들은 얇은 돗자리 만들어졌는데 땀에 절어 대부분 얼룩이 가득 묻어 있기에 선뜻 집기가 꺼려지고 예불은 물론이고 수행할 때 모기장 없이는 절대 앉아 있을 수 없다. 미얀마에 대한 환상은 뜨거운 여름에 오면 아주 쉽게 내려놓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곳이 수행처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커다란 법당에 들어서면 수많은 수행자의 숨이 배어있는 듯한 장엄함이 묻어나기 때문이다. 또한 아주 넓고 길게 펼쳐진 반질거리는 짙은 고동색 마룻바닥은 저절로 마음을 조용하게 한다. 그런데 불 밝혀 놓은 황금빛 부처님은 평소 접해온 자비롭고 인자하신 부처님 모습이 아니다. 마치 모든 고통을 제압한 듯 범접할 수 없는 무한한 강인함이 두드러지면서도 인고한 세월을 지닌 인간적 표정도 있으신 모습이다. 그렇게 부처님은 중앙에 거대하게 앉아 있으시다. 나는 자연스럽게 작디작아져 순수한 마음이 된다.
그런데 나는 안타깝게 이 사원의 수행 일정을 알 수가 없었다. 모두 미얀마어로만 공지되어 있고 상주하는 통역인도 없다. 특별한 경우 외부에 있는 통역인에게 요청하여 상담할 수는 있으나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대부분은 한국 가기 전 한국어를 배우며 공양 돕는 청년에게 부탁하여 아주 기본적인 것들을 해결하고 나머지는 눈치껏 따라갔다. 이런 언어적 어려움과 달리 나는 새벽예불과 법회에 참석하면 스님의 경전 읊는 음색만으로도, 알아듣는 몇 개의 빨리어 단어만으로도 자주 감동되어 울컥했다.
처음에는 새벽 예불 후 숙소에서 수행하다 저녁에 있는 법회와 수행에 참석하고 돌아왔다. 좀 더 익숙해지면서 새벽 예불 후 그대로 계속 큰 법당에서 수행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평소 큰 법당에서 수행하던 수행자들이 바로 옆 복도를 사이에 두고 평소 비어있던 큰 법당으로 옮겨 갔다. 왜 그들이 자리를 옮기는지 몰랐다. 버스를 타고 온 많은 재가자도 그 법당으로 갔다. 점심 공양 후 잠시 그 법당 앞에 서 있었는데 사원 허드렛일을 돕는 나이 드신 분이 come 하며 나를 끌고 그 법당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방석을 놓아주고 수행하라는 몸짓으로 알려주었다.
그분이 나가고 나서 들러보니 이미 벽을 끼고 수행자들이 모두 자리를 잡았다. 앞에도 이미 남자 재가자들, 여자 출가자들 자리가 다 있었다. 그분이 지목해 준 앞자리는 내가 있을 자리가 아님을 직감으로 알고 뒤로 가서 통로 옆자리에 방석을 놓았다.
그리곤 이 자리에서 다른 수행자들과 함께 새벽부터 밤까지 하루 종일 수행했다. 좀 지나 알게 되었는데 10일 집중 수행에 모두 참여한 것이었다. 여기는 새로 지은 법당이라 에어컨도 있고 닫힌 창문이다. 하지만 연세 든 수행자들이 계셔서인지 수행 중 이런저런 힘듦을 소리로 다 표시 낸다. 거기다 에어컨도 계속 켜져 있기에 여기 역시 조용함은 쉽지 않다. 그리고 많은 참가자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경행은 없다. 만약 한다 해도 공간이 없다. 다만 쉬는 시간 통로를 끼고 걷곤 하는데 알아차림을 두고 걷는 발걸음인지 의심될 정도로 발을 끌면서 걷기에 수행을 이어가려는 나에게는 쉬는 시간은 괴로움이었다.
10일 집중 수행 기간에 매일 법문을 해 주신다. 그런데 언어를 모르니 내용을 이해 못 하고 인터뷰도 요청할 수 없다. 하지만 걱정은 안 되었다. 나에겐 어디에서도 통할 수 있는 보리수선원에서 혹독히 익힌 인내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열심히 수행만 했다. 이 자리에서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 만큼.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