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무소의 뿔

소식 무소의 뿔

첫번째 집중수행

김상성
2024-09-03

선원에서 집중 수행을 처음 시작한 해는 2016년 여름이었습니다. 같은 해 5월에 자애수행에 참여하면서 처음 선바위 선원을 방문하고 스님을 뵙게 되었습니다. 기존의 절과는 다른 형태의 건물 구조와 낯선 가사를 하고 계신 스님의 모습에 처음에는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나 맑으신 음성의 법문을 듣고 간단한 자애 훈련을 한 후, 기분이 상쾌해짐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장면은 법문을 마치고 나가시는 스님의 발걸음입니다. 마치 물 위를 스치듯 조용하고 부드럽게 나아가시는 모습이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상당히 우아하고 매력적인 동작으로 기억에 남아있습니다.


선원을 소개해준 사람은 누나였는데 본인도 MBSR의 한국 대표가 선바위 선원에서 수련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당시 저는 한계 상황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사립 대학의 교원으로 근무하면서 넘치는 수업과 각종 행정 일들, 연구비 신청과 집행, 실험지도, 논문 작성 등 살인적인 업무에 수년간 줄곧 시달려 왔었습니다. 처음에 미국 연구소에서 한국 대학으로 옮길 때는 젊은 패기로 무슨 상황이 닥쳐도 돌파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귀국 전 은퇴하신 동문 선배께서 말씀하시길 골프를 자주 치는 건강한 친구가 있었는데 오퍼를 받고 한국 오일 회사에서 근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분도 은퇴 준비는 충분히 되어 있었는데 장관과 같은 큰 명예직을 꿈꿨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국에 간지 반년 만에 저 세상으로 가셨다는 비보를 듣고 놀랐는데 알고 보니 각종 격무와 인간관계에 시달리다 그렇게 되었다고, 저보고도 건강 잃지 않게 조심하라고 조언해 주셨습니다. 


저는 원래 건강 체질이고 꾸준히 운동도 해와서 제게는 해당하지 않는 조언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수년간 직장 생활은 심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이고 갉아먹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원 없는 중진 자본주의 국가의 처절한 경쟁 구도는 세계 최고의 자살율, 최저의 출산율을 기록하기에 충분하였고, 저 또한 그 파고를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성경을 묵상하고 요가수트라나 바가바드기타 등을 읽으며 정신적 에너지를 공급받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정신적 자원마져 고갈되고 나서는 손가락도 움직이기 힘들고 일에 집중하지 못해 멍하게 바라보기만 하는 저 자신을 보고 마음의 깊은 병을 얻었음을, 중증 우울증 직전에 도달했음을 자각했습니다. 처음엔 심리상담을 찾아봤는데 일할 시간도 부족 한데다 비급여의 부담, 무엇보다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컸습니다. 남에게 의지한들 나를 얼마큼 이해해 줄 것이며 그렇다 한들 현 상황이 변하지 않는데 무엇이 달라질까?


절망적인 심리 상태에서 맞은 자애 수행은 제 마음에 뭔가 ‘밝고 따뜻함’을 주었고 이 긍정적인 이끌림으로 제주도에서 열린 집중수행까지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한여름에 집중수행이라는 기대로 제주도를 향한 여행은 기쁨으로 가득했습니다. 도착한 수행관은 대학교의 연수 센터여서 산 중턱의 목 좋은 곳에 넓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일주일간 지내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짐을 풀고 몇 안 되는 수행자들과 묵언 수행을 하고 저녁을 먹고 스님을 기다렸습니다. 집중수행에 처음 참여하는 들뜬 마음으로 수행법에 대한 내용과 이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안내를 들었습니다. 수행법은 경행을 30분 이상하고 발의 감각에 집중하며 명칭을 붙이라는 것, 좌선 시 날숨과 들숨에 따른 배의 움직임에 명칭을 붙여가며 관찰하고 혼침과 통증이 오더라도 마찬가지로 명칭을 붙여가며 관찰하라는 것, 좌선을 한 시간 이상 하지 말라는 것 등이었습니다. 뭔가 대단한 비법이 있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너무 평범하고 재미없는 방식에 살짝 실망도 하였지만, 그렇게 따라 정해진 시간까지 수행을 하였습니다. 


그 모든 시간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떠오르고 ‘내가 여기서 뭐하고 있나’하는 한심스러운 느낌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후 취침 전 다시 모여 수행 경험을 나누며 스님께 질문하는 시간에서 다른 사람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이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께서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걸음 하나하나에 명칭을 붙이며 경행하며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숙소까지의 거리가 멀지 않았지만 경행으로 가다 보니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그 길에 스님과 마주쳤는데 경행에 집중하라는 말씀을 따라 걷다 보니 취침 인사를 드리는 행위가 말씀을 어기는 것 같아 그대로 지나쳤습니다. 왠지 무례하게 행한 것 같아 내심 죄송했지만, 스님께서 ‘음~’하며 낮은 목소리를 내셔서 괜찮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숙소는 여러 명이 자는 큰 방인데 첫날은 중년의 스님 한 분과 방을 같이 쓰게 되었습니다. 묵언 규칙에 따라 목례만 드리고 잠을 청했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 정해진 시간에 기상하여 새벽 공기를 가르며 예불 하러 가는 길이 상쾌했던 기억이 납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수행법에 대한 지도를 듣고 바로 수행에 들어갔습니다. 나름 집중하면서 배의 움직임을 관찰하는데 오르락내리락, 불룩해졌다 꺼졌다하는 모습의 관찰에서 새로울 것도 배울 것도 전혀 없었는데 도대체 뭘 보라는 건지 지루함을 넘어 성냄까지 일어났습니다. 이런 사실을 인터뷰 시간에 스님께 말씀드리며 차라리 이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새로운 지식을 얻겠고 운동을 했으면 몸이 더 건강해졌을 텐데 왜 이런 의미 없는 행위에 시간을 보내는지 모르겠다고 듣기에 불쾌할 수 있는 말을 드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웃으시며 그래도 여기서 수행하는 시간 동안 그렇지 않았으면 불선업을 쌓을 시간들이 최소한 줄지는 않았느냐 하시며 계속 관찰하도록 하셨습니다. 돌아가서 오후 내내 다시 집중하며 뭔가 내가 놓친 것이 없나 샅샅이 찾으며 인내의 시간을 보내는데 이는 마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어딘가 묻혀있을 다이아 원석을 찾기 위해 기약없이 땅을 파고 내려가는 심정과 같았습니다. 남자 수행홀에는 열 명 미만의 수행자들이 경행과 죄선을 반복하며 조용하지만 각자의 치열한 사투를 벌이며 수행하고 있었고 이들은 마치 같은 전장에서 싸우는 전우들과 같은 느낌이 들어 저의 외로운 분투의 과정에 힘이 되었습니다.


한번은 제주도에 비바람의 광풍이 부는데 외부 홀에서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제 앞의 차례가 같은 방의 스님이셔서 그 분께서 먼저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인터뷰 자리에 마침 물이 고여 있었는데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려고 하시니 붓다락키따 스님께서 제지하시며 마른 곳에 앉으라고 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중에 통성명하여 알게 된 법안 스님이셨는데, 이미 출가하신 스님이신데도 궂은 자리도 마다하지 않고 구도하시는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숙소에 돌아와 비록 묵언 수행 중이었지만 짧게 대화도 나누면서 미얀마에 가셔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신 사실도 알게 되었고, 부드럽고 겸손한 목소리와 낯빛에서 수행자의 향기를 느꼈습니다. 아난다 존자가 “수행에서 좋은 도반의 존재는 수행의 반만큼이나 중요한 것 같습니다”고 하셨을 때 부처님께서 “아난다여 그대는 틀렸다” 세 번 말하시며 “그건 수행의 전부와 같다”고 하신 말씀이 와 닿았습니다.


사흘 정도 지났을 때 인내의 한계에 다다랐고 아무리 수행하고 관찰해도 찾아지는게 없었습니다. 그때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대상의 움직임을 객관적으로 ‘정량화’해보자는 시도를 하여 규칙적인 움직임을 X축에는 시간을, Y축에는 배의 높낮이를 상정하여 가상의 그래프를 그려보았습니다. 그렇게 그려진 그래프에 일어나고 꺼짐의 속도를 적용하니 뭔가 규칙적인 패턴이 ‘관찰’되었습니다. 기쁜 마음에 인터뷰 시 이 사실을 말씀드렸는데 스님께선 그 사실이 과연 맞는지, 설사 맞는다 한들 거기에 어떤 지혜의 요소가 있으며 성냄과 어리석음을 소멸한 방법이 어디 있는가 물으셨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희망도 사라지며 절망적인 마음에 다시 수행홀로 돌아와 자포자기한 상태로 어둑어둑해져 가는 공간속에 몸을 내맡겼습니다. 그때 그동안 무심했던 귀꾸라미와 풀벌레 소리가 그제서야 들리며 모든게 무너진 마음을 위로해 주었습니다. 풀벌레 소리와 함께 저물어가는 태양 빛의 자취가 시시각각으로 다른 색깔을 내뿜으며 같은 산자락의 모습도 다른 느낌으로 표현하면서 수묵화처럼 은은히 소멸해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습니다.


나머지 날들은 이미 기대를 접은 상태여서 가벼운 마음으로 계속 경행과 좌선을 번갈아가며 관찰하였습니다. 아침 식사하러 가는 길에 근처의 바위위에 잠깐 앉아보면서 청량한 자연을 내려다 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보시고 나중에 법안스님께서 혹시 전에 기 수련을 해보았는가 물어보시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중반을 넘긴 사흘은 마음의 부담이 많이 가라앉은 상태여서 홀가분한 느낌이 들었고 그동안 묵직했던 마음이 확실히 가벼워짐이 체감되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아침에 다같이 주위의 나무들을 정돈하며 청소하는 시간을 가졌고 어느덧 정든 이곳과 도반들을 떠날 때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무엇보다 큰 기대를 가지고 왔으나 뚜렷한 깨달음의 경험이 없이 떠남이 가장 아쉬웠습니다. 마지막에 스님께 이를 고하였더니 열심히 잘 했다고 하시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돌아갈 때 수련원 앞에서 마을 버스를 탔는데 사람들이 비좁은 곳에 함께 있는 상황이 굉장히 낯설게 느껴졌고 승객들의 모습, 의상, 표정들의 세부적인 모습이 강렬히 느껴졌습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 승객들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나고 스쳐 지나가던 간판들과 외부 풍경의 기억이 살아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공항에서도 지속되었고 집에 와서도 한동안 이어졌습니다. 몇 주 뒤 스님께서 보내신 이메일에서 ‘제주도도 없고 수행도 없고 지혜만이 남는다’는 말씀을 읽고 처음 겪은 집중수행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비록 강렬한 체험의 경험이 없었지만 그 모든 분위기, 도반들, 법문들, 예민해진 의식의 느낌 이 모든 것들은 기분좋은 새로움이었고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가치있는 경험임은 분명하여 이후 수년간에 걸쳐 집중수행에 지속적으로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인생의 다른 모든 상황과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첫 만남, 첫 경험이 그 특정 단계 시작의 수준을 결정하며 향후의 향방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을 고려할 때, 저의 첫 집중수행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좋은 만남, 제대로된 지도로 시작되었음을 이제 돌이켜볼 때 더 절실히 느껴지며 이를 가능하게 해주신 스님과 보이지 않는 운명의 손길에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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