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어떤 일과 관련해 두 번 만났고 몇 차례 통화한 사람이 있다. 현장에서 만나 처리할 일은 끝났고 후속 작업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예상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순간 너무 당연하게 그 사람이 뭔가 기술적인(내가 알지 못하는) 제한 설정을 걸어두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고, 대충 어물쩍 넘어가려는 대처라고 생각하니 짜증이 올라왔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내 쪽이고 시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빨리 처리해야겠기에 어떻게 서로 껄끄럽지 않게 풀어갈지 고심하고는 다음 날 그 사람과 통화를 시도했다.
내 쪽에서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고 처리하다 보니 이런 오류가 발생해서 문제가 있었다고 통화하는 과정 중에 일방적으로 그 사람을 오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상은 기술적인 문제가 전혀 아니었고 절차에 오류가 있었을 뿐인데 예상대로 되지 않자 섣불리 그렇게 판단했음을 안 것이다.
다행히 상대방은 내가 오해했음을 눈치채지 못했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이므로 한 번 더 설명해 주는 것으로 나를 이해 시키고자 했다. 물론 그 사람이 한 번 더 설명한 내용은 이미 설명을 들어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모르는 척 설명을 다 듣고는 도와줘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통화를 끝냈다.
순간 밀려오는 민망함과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통화하면서 알게 되었기에 망정이지 대면한 상태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섣부른 판단에서 비롯된 이 경솔함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상대를 향했던 언짢음을 필시 들켰을 터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해로 인해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더 키우는 것까지 진행되지는 않았다는 점이지만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그전에 오해할 만한 그 사람의 발언이 있기는 했었는데 그 또한 나의 주관적 해석일 수 있고,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빠르게 해답을 얻으려고 하는 효율 중심의 사고 습관이 바르게 분별하는 기능을 방해한 것인데 습관이니 앞으로는 고쳐야지 하는 것으로 정리하기에는 작지만 큰일이다.
이 경솔함을 어떻게 다스릴까는 수행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상대는 알지 못하는 이 민망함과 미안함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다만 평소 스님께서 불선을 행했거든 선행을 더 많이 하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으나 당시에 할 수 있던 것은 호흡에 주의를 가져가 요동을 가라앉히고 그 사람을 향해 미안함을 한껏 담아 자애를 보내는 것 뿐이었다.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그 사람이 건강하기를”
“그 사람이 몸 마음 항상 평안하기를”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윤회의 과거 생부터 제가 어리석음으로 인해 행위 · 말 · 생각으로 지은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 예불문 ‘참회와 용서’ 중에서 -
최근 어떤 일과 관련해 두 번 만났고 몇 차례 통화한 사람이 있다. 현장에서 만나 처리할 일은 끝났고 후속 작업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예상했던 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순간 너무 당연하게 그 사람이 뭔가 기술적인(내가 알지 못하는) 제한 설정을 걸어두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고, 대충 어물쩍 넘어가려는 대처라고 생각하니 짜증이 올라왔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내 쪽이고 시급한 것은 아니었지만 빨리 처리해야겠기에 어떻게 서로 껄끄럽지 않게 풀어갈지 고심하고는 다음 날 그 사람과 통화를 시도했다.
내 쪽에서 원하는 것은 이런 것이고 처리하다 보니 이런 오류가 발생해서 문제가 있었다고 통화하는 과정 중에 일방적으로 그 사람을 오해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상은 기술적인 문제가 전혀 아니었고 절차에 오류가 있었을 뿐인데 예상대로 되지 않자 섣불리 그렇게 판단했음을 안 것이다.
다행히 상대방은 내가 오해했음을 눈치채지 못했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이므로 한 번 더 설명해 주는 것으로 나를 이해 시키고자 했다. 물론 그 사람이 한 번 더 설명한 내용은 이미 설명을 들어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모르는 척 설명을 다 듣고는 도와줘 감사하다는 말을 남기고 통화를 끝냈다.
순간 밀려오는 민망함과 상대에게 미안한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통화하면서 알게 되었기에 망정이지 대면한 상태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섣부른 판단에서 비롯된 이 경솔함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상대를 향했던 언짢음을 필시 들켰을 터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오해로 인해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감정을 더 키우는 것까지 진행되지는 않았다는 점이지만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그전에 오해할 만한 그 사람의 발언이 있기는 했었는데 그 또한 나의 주관적 해석일 수 있고, 어떤 상황에 놓였을 때 빠르게 해답을 얻으려고 하는 효율 중심의 사고 습관이 바르게 분별하는 기능을 방해한 것인데 습관이니 앞으로는 고쳐야지 하는 것으로 정리하기에는 작지만 큰일이다.
이 경솔함을 어떻게 다스릴까는 수행으로 해결해야 하지만, 상대는 알지 못하는 이 민망함과 미안함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이 떠오르질 않았다. 다만 평소 스님께서 불선을 행했거든 선행을 더 많이 하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으나 당시에 할 수 있던 것은 호흡에 주의를 가져가 요동을 가라앉히고 그 사람을 향해 미안함을 한껏 담아 자애를 보내는 것 뿐이었다.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그 사람이 건강하기를”
“그 사람이 몸 마음 항상 평안하기를”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는 윤회의 과거 생부터 제가 어리석음으로 인해 행위 · 말 · 생각으로 지은
모든 잘못을 진심으로 참회합니다.” - 예불문 ‘참회와 용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