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일요일, 선원장 스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자애수행에 오랜만에 참석했다. 법문을 들고 말씀에 따라 수행을 하던 중이었다. 옆자리 수행자의 콧물 소리와 함께 울음 소리가 들리고 참으려고 애쓰는 느낌이 전해졌다. 순간 그 소리로 마음이 가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떠돌았다.
무슨 일이길래 수행 중에 우는 걸까.
휴지라도 가져다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는 척하면 오히려 그 사람이 더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그 사람에게 시간이 필요할꺼야, 모른척하고 수행하자.
마음을 다잡고 자애 문구를 되내이다가 문득 다음과 같이 생각이 이어졌다.
'모든 존재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온하기를 기원하면서, 바로 옆 수행자가 울고 있는데 모른척하고 수행하는 척하다니... 비겁하고 이기적이지 않은가.'
불편한 마음이 일어나고 갈등하고 주저하는 사이, 옆 사람의 소리가 사그러들었다. 그제야 마음이 안정되고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 수행 대상으로 마음이 향했다.
수행을 마칠 때쯤 스님께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여쭤보았다.
"신경쓰지 않고 수행할 수 있으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나서 수행하는 동안 마음이 어떠했는지 되돌아보았다. 불편함이 있었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수행하는 중이기 때문에 수행에만 마음을 기울이자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스스로 이기적이라고 판단하고 생각에 빠졌었다. 차라리 자애 수행을 잠시 멈추고 옆 사람을 살폈더라도 더 좋은 마음으로 수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마 스님이 계시고 자애 수행하는 중이라는 것에 더 마음을 두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솔직하지 못했고 분명하게 마음을 두지 못했다.
문득 예전에 기업 연수원에서 먹기 명상을 하던 때가 생각난다. 40명이 넘는 참가자들과 함께 식당에서 먹기 명상을 하던 중이었다. 앞자리에 앉은 선생님이 식사를 하다가 기침을 하는데 고통스러워 보였다. 물을 마시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다른 참가자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일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없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가 있는 곳에 가서 물을 챙겨 그 선생님에게 전해주고 다시 먹기명상을 했다. 생각에 끄달리지도 않았고 갈등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었고 마음도 편했다.
다시 이번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오롯이 수행 대상에 마음이 머물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마음을 챙겨 좋은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덤덤하게 하지 않을까 싶다. 쓸데없이 번민하며 수행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는 않다.
지난 주 일요일, 선원장 스님께서 이끌어 주시는 자애수행에 오랜만에 참석했다. 법문을 들고 말씀에 따라 수행을 하던 중이었다. 옆자리 수행자의 콧물 소리와 함께 울음 소리가 들리고 참으려고 애쓰는 느낌이 전해졌다. 순간 그 소리로 마음이 가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떠돌았다.
무슨 일이길래 수행 중에 우는 걸까.
휴지라도 가져다 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는 척하면 오히려 그 사람이 더 부담스러워하지 않을까.
그 사람에게 시간이 필요할꺼야, 모른척하고 수행하자.
마음을 다잡고 자애 문구를 되내이다가 문득 다음과 같이 생각이 이어졌다.
'모든 존재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평온하기를 기원하면서, 바로 옆 수행자가 울고 있는데 모른척하고 수행하는 척하다니... 비겁하고 이기적이지 않은가.'
불편한 마음이 일어나고 갈등하고 주저하는 사이, 옆 사람의 소리가 사그러들었다. 그제야 마음이 안정되고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 수행 대상으로 마음이 향했다.
수행을 마칠 때쯤 스님께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은지 여쭤보았다.
"신경쓰지 않고 수행할 수 있으면 가장 좋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이 불편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나서 수행하는 동안 마음이 어떠했는지 되돌아보았다. 불편함이 있었고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수행하는 중이기 때문에 수행에만 마음을 기울이자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고, 스스로 이기적이라고 판단하고 생각에 빠졌었다. 차라리 자애 수행을 잠시 멈추고 옆 사람을 살폈더라도 더 좋은 마음으로 수행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마 스님이 계시고 자애 수행하는 중이라는 것에 더 마음을 두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솔직하지 못했고 분명하게 마음을 두지 못했다.
문득 예전에 기업 연수원에서 먹기 명상을 하던 때가 생각난다. 40명이 넘는 참가자들과 함께 식당에서 먹기 명상을 하던 중이었다. 앞자리에 앉은 선생님이 식사를 하다가 기침을 하는데 고통스러워 보였다. 물을 마시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다른 참가자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일어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무 생각없이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정수기가 있는 곳에 가서 물을 챙겨 그 선생님에게 전해주고 다시 먹기명상을 했다. 생각에 끄달리지도 않았고 갈등하지도 않았다. 그냥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이었고 마음도 편했다.
다시 이번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오롯이 수행 대상에 마음이 머물러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마음을 챙겨 좋은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덤덤하게 하지 않을까 싶다. 쓸데없이 번민하며 수행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