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전날에 만들어둔 수제 요구르트를 투명한 유리컵에 담는다. 몇가지 과일을 조금씩 넣고 견과류를 담아내면 소박한 아침식사로 제격이다. 냉동과일이 녹아 입안이 차가워지고 단단한 견과류를 저작운동으로 부수고 으깨면서 한껏 타액이 분비되면 요구르트와 함께 음식물이 목구멍을 타고 미끄러지듯 넘어간다. 일어나자마자 입맛이 없을 때도 토핑을 곁들인 요구르트를 숟가락으로 떠서  천천히 씹어 삼키면 느릿하고 꽤 괜찮은 아침시간이 된다.

먹고 나서 설거지통 앞에 섰다. 수세미에 세제를 묻히고 컵을 집어 드는데 하얀 요구르트가 묻은 유리컵 벽면으로 거뭇거뭇한 얼룩이 비쳤다. 이게 무슨 얼룩이지? 가만 들여다 보니 평소에 차를 끓여 마시던 컵이라 찻물이 스며든 것 같다. 매일같이 사용하고 깨끗하게 닦아 씻어 말리는 데도 유리컵은 조금씩 때가 쌓이고 있었다. 대충 보기에는 투명해도 조금씩 물드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다가 요구르트의 하얀 얼룩에 비춰보니 유리에 찌든 때가 선명했다. 

며칠 전, 과천 보리수 선원의 설 집중수행을 다녀왔다. 평소 수행은 게을렀고 별 좋은 일을 한 것은 없어도 나쁜 짓은 하지 않았다고 자만했다. 수행을 하는 동안 거친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차례는 더 올라왔으며 그러한 자신을 그대로 봐주지 못해 수시로 마음이 불편하고 답답했다. 이미 수행 일정의 많은 시간을 번민으로 소모했기 때문에 산란한 마음을 뒤로 하고 그저 알고, 보는 것만으로 수행을 이어가는 것이 간절했다. 번잡한 마음으로는 수행처에서 아무 말 없이 법문을 듣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수행하면서 바깥에서 해오던 행동을 발견하더라도 너무 싫어하지 않도록” 

매일 8계를 받들고 법문으로 배운 것을 반복하며 잊지 않으려 노력했다.

‘지금 어디 있는가, 몸과 마음은 어떠한가, 사띠는 지니고 있는가.’

익숙해지면 그저 지켜보았다. 잊고 있던 마음 한 켠에서 마음의 찌든 때를 마주했다. 거친 생각이 올라오면 올라왔구나 알고 통증이 일어나면 일어나는 대로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보았다. 해결할 마음, 없애야 할 마음도 없이 ‘그냥’ 바라만 보는데 오히려 마음은 진정되어 갔다.

매일 씻는 물잔에 찌든 때가 끼었다고 베이킹 소다와 레몬즙을 넣고 뜨거운 물을 가득 부어 놓았다. 마음에는 어떠했나. 매일 꺼내어 쓰면서도 찌든 때가 덕지덕지 낄 때까지 몰랐으면서 알아도 모른 척 방관하지 않았던가.  

집중수행은 어쩌면 마음에 법이라는 밝은 빛을 반조하는 일인지 모른다. 쉽게 내던져온 지난 말과 행위를 얼만큼 책임질 수 있는지, 매사 얼마나 분별하고 판단하며 살아왔는지, 그동안 몸과 마음이 얼마나 관심 밖이었는지도 알게 된다. 

집중수행이 끝나고 산란함은 안개처럼 찾아왔다. 대상을 놓쳤음을 알고 산란한 상태임을 알고 있다. 현생만 수십 년 동안 쌓인 마음의 더께가 쉽게 사라지지 않겠지만 글을 쓰는 동안에도 손가락을 굽힘, 폄, 발바닥은 바닥에 닿음, 허리를 바로 폄, 엉덩이의 무게감을 감지하며 ‘분량이 다 되어간다’를  그렇게 알며 일상에서도 그저 바라보고 알기를 이어가고자 한다. 

그러는 동안 벌써 유리컵에 찌든 때가 지워진 것 같다. 마저 설거지 하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