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  무소의 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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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한 걸음씩

김상희
2025-02-13

서귀포에서 제주시로 이사하고 얼마 후의 일이다. 남편과 아이가 해 질 녘에 산책을 갔다가 돌아와서 하는 말이 텃밭을 얻었다고 했다. 무슨 얘긴가 했더니, 동네 산책을 하다 우연히 밭 주인분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아이가 어리니 여기 빈 밭에 이것저것 기르며 아이와 좋은 추억을 쌓아보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 밭에 있는 채소며 과일도 맘껏 따다 먹으라고 하셨단다.

 

동화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 같지만, 이 인연은 벌써 팔 년째 이어지고 있다. 봄이면 아이와 동네 상점에서 모종을 고른다. 상추며 토마토를 정성스레 심고 가꾸면 그만큼 쑥쑥 자라나는데, 그 모습들이 아이 눈에는 마냥 신기할 것이다. 뿐만 아니다. 밭에 있는 복숭아, 오디, 무화과 할 것 없이 여러 나무에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면 그만의 색이 입혀지고 이내 어우러져 눈부신 계절을 선사한다.

 

따는 재미도 만만치가 않다. 그중에 오디를 좋아하는 아이는 철마다 눈을 빛내며 이리저리 솜씨 좋게 잘 익은 오디를 찾아낸다. 해맑은 아이의 웃음을 보고 있으면 주변 꽃과 나무들도 같이 웃으며 마음을 나누는 것 같다.

 

별로 말이 없으시지만, 이것저것 따다 먹어주면 마음이 좋고 오히려 고맙다는 아저씨의 말씀을 들으면 그래도 이 세상 살맛이 난다. 그 마음 따라 내 마음도 넉넉하고 푸근해진다. 그래, 좋은 일 하며 살아야겠다, 베풀며 살아야겠다. 어디서 따로 읽거나 배우지 않아도 그런 마음이 마음 가득히 찬다. 그 마음 조금이라도 표현하고 싶어 소소하게나마 준비한 선물을 드리며 정을 나누고 있다.

 

지난여름이었다. 아저씨께서 기르신 고추가 유난히 잘 자랐다. 잘 먹지 않으면 열매가 많이 달려도 곧 뽑고 새로운 것들을 심으시기에, 나와 동생은 부지런히 고추를 따다가 고추장아찌를 담갔다. 처음 만들어보기도 하고 저장 방법도 몰라 여기저기 검색해 보았다. 고추장아찌를 페트병에 넣어 보관하면 좋다는 글을 보고 장아찌를 페트병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서너 달 지났을까.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페트병들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이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찾아본 글에 이런 내용은 없었는데 하며 동생을 불렀다. 동생이 보고는 이러다 터지면 큰일이니 공기를 빼줘야겠다고 했다. 네다섯 병의 장아찌를 냉장고에서 꺼내 바닥에 놓았다.

 

동생 한 병, 나 한 병 각각 들고 서서히 뚜껑을 돌려보았다. 역시나 안에는 공기가 많이 차 있었다. 조금만 뚜껑을 많이 돌려도 국물이 같이 새어 나왔다. 동생은 차분히 앉아 뚜껑을 돌리고 있었지만, 어느 세월에 이걸 다 빼나 하는 마음에 나는 페트병을 들고 싱크대로 갔다. 뚜껑을 한 번에 열어볼 심산이었다. 뭐, 열어도 콜라처럼 거품 얼마 나오고 말겠지 싶었다.

 

난 호기롭게 뚜껑을 열었다. 그러자 고추장아찌와 국물이 사정없이 천장으로 폭발했다. 그중에 일부는 내 코끝까지 들어가 눈물샘을 자극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천장이며 바닥은 말할 것도 없이, 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장아찌 국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건너편에 있던 동생이 놀라서 쳐다보았다. 어이없이 내 꼴을 보던 동생이 빙긋 웃으며 한마디 했다.

 

“업도 한 번에 바꾸려고 하면 이렇게 되는 거야.”

 

그 당시 우리가 불교 관련서를 많이 읽고 있긴 했다. 그래도 업이라니. ‘업’보다는 ‘무의식’이 먼저 떠오른 내 옆에서, 동생은 또 무슨 업인지 오늘도 사고를 친 언니 대신 싱크대며 바닥을 말없이 닦고 있었다.

 

수건으로 얼굴과 옷들을 훔치며, 코에도 국물이 들어가 따갑다고 동생한테 징징대면서 생각했다. ‘그래, 무엇이든 한 번에 바꾸려고 하면 부작용도 만만치가 않지. 그동안 쌓아온 것이 있는데 수행도 한 걸음씩 천천히 해나가야겠다.’

 

모두 말끔히 닦아내고서 한쪽에서 공기를 빼는 동생 옆에 앉아서, 조금씩 뚜껑을 돌려가며 공기를 빼내었다.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무사히 공기를 빼낸 우리는 장아찌 병을 냉장고에 넣으면서 또다시 공기가 차면 천천히 같이 빼내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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