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불교에 관심 가진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인간 붓다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다른 종교는 처음부터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창조론부터 시작하는데 불교는 석가모니가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외치며 가는 걸음마다 연꽃이 피었다는 설화로 시작했다. 심지어 ‘신’이 아닌데 자그마치 2,600년간 계속 위대하신 분이라는 칭호를 쓰는 점은 더 의아했다. 가족과 일가친척 중에 절에 다니는 사람은 업장을 소멸하고 복을 짓기 위해 불전에 공양물과 절을 올리며 기도를 하러 다녔다. 부처님은 램프의 요정처럼 소원을 들어 주는 분인가.
몇 해 전 태국에서 머물 때 붓다의 생애가 담긴 책 한 권을 들고 갔다. (태국이니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서양의 대성당과 비할 바 없이 사찰마다 웅장했다. 한적한 숲에서 빨래를 마친 스님들이 웃으며 오렌지색 가사를 걷어 정리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붓다는 어떤 분인가. 이동할 때마다 틈틈이 책을 읽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왕자로 태어나 자랐지만 생노병사의 고통에 직면하려 출가했고 고행을 끝내며 유미죽을 마시는 장면에서 이유 모를 눈물이 흘렀다.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들 때까지 수행하던 인간 붓다의 이야기는 처절하고 또 아름다웠다. 알 수 없는 마음이 함께 흘러 나왔다.
얼마 후 한국에 돌아와 명상을 배웠다. 분명 배울 때는 마음이 편하고 좋았는데 만원버스만 타면 몸에 부딪치는 사람들 때문에 몹시 짜증이 났다. 아차 싶었다. 명상하고 왔는데 왜 이렇게 화가 날까. 명상안내자에게 이런 마음을 질문했더니 “아닛짜”라는 답이 돌아왔다. 상태가 좋을 때는 잘 넘어갔고 문제가 조금이라도 변형되어 나타나면 새로운 고통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이곳저곳 명상수업을 들으러 다녔지만 편안함이 오래가지 않았다. 편안함의 주기가 길어지도록 명상을 더 오래 자주 다녔다. 그러니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다. 삶의 문제가 대충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몇 년 전 보리수 선원에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만났다. 또 어떤 명상법인가 궁금해서 시작했다. 걷고 앉고 하루 종일 그것만 했다. 명상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았고 수행이라 불렀다. 사마타 수행의 첫인상은 ‘대체 뭘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였다. 며칠 간의 수행을 숙제처럼 마치며 일상으로 돌아갔고 수행이 힘들어서 다시 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고 나서 그 걸음걸음이 자꾸 떠올랐다. 걸을 때 들었던 묘한 느낌, 걷는 동안 평온했다. 불현듯 내가 걸을 때 느꼈던 그 평온함이 지난 명상을 해오던 때의 그것과 어딘가 다른 것 같았다. 기본수행이 열린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수행당일 보리수선원으로 달려가 스님께 받아달라고 부탁드렸다. 겁도 없이 집중수행까지 덜컥 참여했다. 여전히 허리가 아프고 발바닥도 아팠다. 그럼에도 수행하러 선원으로 간 이유는 소원을 이루기 위한 것도 신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세속의 고통을 잊기 위한 수행에 그치지 않고 그 고통의 뿌리까지 뽑아버릴 가능성을 보여주신 부처님의 행적을, 수행으로써 알고 싶었다. 그 분의 가르침에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사소한 마음의 변화 하나까지 들어있다. 어느 경전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전부 내게 필요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그러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법문을 듣고 수행하는 일을 더는 미룰 이유가 없었다. 부처님도 나처럼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었기에.
“붓다는 어떤 분인가”
마하나마여, 여기 그대는 여래에 대하여 ‘이와 같이 그분 세존께서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은 님, 사람을 길들이는 님, 신들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 세상의 존귀한 님이다.’라고 새김을 확립해야 합니다.
마하나마여, 고귀한 제자가 여래에 대하여 새김을 확립하면, 그때에 탐욕에 사로잡힌 마음이 없어지고, 성냄에 사로잡힌 마음이 없어지고, 어리석음에 사로잡힌 마음이 없어지고, 그때에 여래에 관하여 마음이 올바로 정초됩니다. 마하나마여, 마음이 올바로 정초되면 고귀한 제자는 의취에 대한 감동을 얻고 원리에 대한 감동을 얻고 가르침에 수반되는 기쁨을 얻습니다. 기쁨이 있으면 희열이 생겨나고, 희열이 있으면 몸이 고요해지고, 몸이 고요해지면 행복이 체험되고, 행복이 있으면 마음이 삼매에 듭니다. 마하나마여, 이 고귀한 제자는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 가운데 올바른 길을 가고, 폭력의 길을 가는 사람 가운데 비폭력의 길을 가고, 진리의 흐름에 들어 부처님에 대한 새김을 닦습니다. (Mahanama-sutta, A11:12(2-1))
…그러므로 마하나마여, 그대는 부처님에 대한 새김이라면 가면서도 닦아야 하고, 서있으면서도 닦아야 하고, 앉아서도 닦아야 하고, 누워서도 닦아야 하고, 일을 하면서도 닦아야 하고, 아이들로 붐비는 집안에서 살더라도 닦아야 합니다. (Mahanama-sutta, A11:12(2-2))
붓다는 어떤 분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듯 부처님의 수승한 공덕을 기리는 수행주제가 있다. 아눗사띠(ānussati) 는 계속해서 상기하고 거듭 숙고하는 사마타 수행법이다. anu 는 again의 의미를 가지므로 아눗사띠는 지속적으로 sati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 붓다눗사띠 (Buddhānussati)는 부처님을 지속적으로 상기하고 거듭 숙고하는 것이며 한역으로 불수념(佛隨念)이라 표현한다. 수행주제로 삼을 때는 부처님의 공덕(Guṇa:성질,성품,덕, 공덕)에 대해 거듭 마음을 두면 된다. 이 수행법은 부처님께서 직접 가르치신 염불수행법으로써 공포나 두려움이 생기거나 수행의 진척이 없을 때 마음에 일어나는 번뇌와 장애로부터 마음을 보호하는 보호수행법 중 하나이다. 또한 몸이 아프거나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염불수행처럼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는 단어를 반복해서 읊조리되 공덕에 대해 거듭 떠올리며 붓다눗사띠를 지속했다. 거듭할수록 붓다의 생애를 책으로 읽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이 올라왔다. 당시 흘렸던 눈물은 어쩌면 부처님 공덕에 대한 감동과 찬탄의 눈물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잔잔한 기쁨이 올라왔다. 물론 생각일 뿐이다. 당분간 부처님은 어떤 분인지 그 공덕을 더욱 기려볼까 한다. 다음 수행이 궁금해진다.
처음 불교에 관심 가진 이유는 단 하나였다. 인간 붓다에 대한 막연한 궁금증 때문이었다. 다른 종교는 처음부터 ‘신’이 세상을 만들었다는 창조론부터 시작하는데 불교는 석가모니가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 외치며 가는 걸음마다 연꽃이 피었다는 설화로 시작했다. 심지어 ‘신’이 아닌데 자그마치 2,600년간 계속 위대하신 분이라는 칭호를 쓰는 점은 더 의아했다. 가족과 일가친척 중에 절에 다니는 사람은 업장을 소멸하고 복을 짓기 위해 불전에 공양물과 절을 올리며 기도를 하러 다녔다. 부처님은 램프의 요정처럼 소원을 들어 주는 분인가.
몇 해 전 태국에서 머물 때 붓다의 생애가 담긴 책 한 권을 들고 갔다. (태국이니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서양의 대성당과 비할 바 없이 사찰마다 웅장했다. 한적한 숲에서 빨래를 마친 스님들이 웃으며 오렌지색 가사를 걷어 정리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붓다는 어떤 분인가. 이동할 때마다 틈틈이 책을 읽었다. 유복한 환경에서 왕자로 태어나 자랐지만 생노병사의 고통에 직면하려 출가했고 고행을 끝내며 유미죽을 마시는 장면에서 이유 모를 눈물이 흘렀다.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열반에 들 때까지 수행하던 인간 붓다의 이야기는 처절하고 또 아름다웠다. 알 수 없는 마음이 함께 흘러 나왔다.
얼마 후 한국에 돌아와 명상을 배웠다. 분명 배울 때는 마음이 편하고 좋았는데 만원버스만 타면 몸에 부딪치는 사람들 때문에 몹시 짜증이 났다. 아차 싶었다. 명상하고 왔는데 왜 이렇게 화가 날까. 명상안내자에게 이런 마음을 질문했더니 “아닛짜”라는 답이 돌아왔다. 상태가 좋을 때는 잘 넘어갔고 문제가 조금이라도 변형되어 나타나면 새로운 고통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이곳저곳 명상수업을 들으러 다녔지만 편안함이 오래가지 않았다. 편안함의 주기가 길어지도록 명상을 더 오래 자주 다녔다. 그러니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다. 삶의 문제가 대충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몇 년 전 보리수 선원에서 사마타와 위빠사나를 만났다. 또 어떤 명상법인가 궁금해서 시작했다. 걷고 앉고 하루 종일 그것만 했다. 명상이라는 용어는 쓰지 않았고 수행이라 불렀다. 사마타 수행의 첫인상은 ‘대체 뭘 하는 건지 알 수 없다’ 였다. 며칠 간의 수행을 숙제처럼 마치며 일상으로 돌아갔고 수행이 힘들어서 다시 갈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몇달이 지나고 나서 그 걸음걸음이 자꾸 떠올랐다. 걸을 때 들었던 묘한 느낌, 걷는 동안 평온했다. 불현듯 내가 걸을 때 느꼈던 그 평온함이 지난 명상을 해오던 때의 그것과 어딘가 다른 것 같았다. 기본수행이 열린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수행당일 보리수선원으로 달려가 스님께 받아달라고 부탁드렸다. 겁도 없이 집중수행까지 덜컥 참여했다. 여전히 허리가 아프고 발바닥도 아팠다. 그럼에도 수행하러 선원으로 간 이유는 소원을 이루기 위한 것도 신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단지 세속의 고통을 잊기 위한 수행에 그치지 않고 그 고통의 뿌리까지 뽑아버릴 가능성을 보여주신 부처님의 행적을, 수행으로써 알고 싶었다. 그 분의 가르침에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사소한 마음의 변화 하나까지 들어있다. 어느 경전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도 전부 내게 필요한 내용으로 가득했다. 그러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기 위해 법문을 듣고 수행하는 일을 더는 미룰 이유가 없었다. 부처님도 나처럼 고통을 느끼는 인간이었기에.
“붓다는 어떤 분인가”
마하나마여, 여기 그대는 여래에 대하여 ‘이와 같이 그분 세존께서는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 명지와 덕행을 갖춘 님, 올바른 길로 잘 가신 님, 세상을 아는 님, 위없이 높은 님, 사람을 길들이는 님, 신들과 인간의 스승이신 님, 깨달은 님, 세상의 존귀한 님이다.’라고 새김을 확립해야 합니다.
마하나마여, 고귀한 제자가 여래에 대하여 새김을 확립하면, 그때에 탐욕에 사로잡힌 마음이 없어지고, 성냄에 사로잡힌 마음이 없어지고, 어리석음에 사로잡힌 마음이 없어지고, 그때에 여래에 관하여 마음이 올바로 정초됩니다. 마하나마여, 마음이 올바로 정초되면 고귀한 제자는 의취에 대한 감동을 얻고 원리에 대한 감동을 얻고 가르침에 수반되는 기쁨을 얻습니다. 기쁨이 있으면 희열이 생겨나고, 희열이 있으면 몸이 고요해지고, 몸이 고요해지면 행복이 체험되고, 행복이 있으면 마음이 삼매에 듭니다. 마하나마여, 이 고귀한 제자는 잘못된 길을 가는 사람 가운데 올바른 길을 가고, 폭력의 길을 가는 사람 가운데 비폭력의 길을 가고, 진리의 흐름에 들어 부처님에 대한 새김을 닦습니다. (Mahanama-sutta, A11:12(2-1))
…그러므로 마하나마여, 그대는 부처님에 대한 새김이라면 가면서도 닦아야 하고, 서있으면서도 닦아야 하고, 앉아서도 닦아야 하고, 누워서도 닦아야 하고, 일을 하면서도 닦아야 하고, 아이들로 붐비는 집안에서 살더라도 닦아야 합니다. (Mahanama-sutta, A11:12(2-2))
붓다는 어떤 분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듯 부처님의 수승한 공덕을 기리는 수행주제가 있다. 아눗사띠(ānussati) 는 계속해서 상기하고 거듭 숙고하는 사마타 수행법이다. anu 는 again의 의미를 가지므로 아눗사띠는 지속적으로 sati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중에서 붓다눗사띠 (Buddhānussati)는 부처님을 지속적으로 상기하고 거듭 숙고하는 것이며 한역으로 불수념(佛隨念)이라 표현한다. 수행주제로 삼을 때는 부처님의 공덕(Guṇa:성질,성품,덕, 공덕)에 대해 거듭 마음을 두면 된다. 이 수행법은 부처님께서 직접 가르치신 염불수행법으로써 공포나 두려움이 생기거나 수행의 진척이 없을 때 마음에 일어나는 번뇌와 장애로부터 마음을 보호하는 보호수행법 중 하나이다. 또한 몸이 아프거나 죽음을 앞두고 있을 때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염불수행처럼 부처님의 공덕을 기리는 단어를 반복해서 읊조리되 공덕에 대해 거듭 떠올리며 붓다눗사띠를 지속했다. 거듭할수록 붓다의 생애를 책으로 읽을 때 느꼈던 그 감정이 올라왔다. 당시 흘렸던 눈물은 어쩌면 부처님 공덕에 대한 감동과 찬탄의 눈물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잔잔한 기쁨이 올라왔다. 물론 생각일 뿐이다. 당분간 부처님은 어떤 분인지 그 공덕을 더욱 기려볼까 한다. 다음 수행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