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나이가 들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인 것 같다. 그렇다고 스스로 나이 들었다고 말하기에는 연세 드신 분들께 혼날 것 같은 애매한 나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생전 하지 않던 달리기가 하고 싶었다. 가벼운 운동 후 몇 분씩 달려 보는데, 이 정도로 ‘달리기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은 계기로 집중수행과 일상 수행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었다.
그동안 나는 어느 곳에서 집중수행을 하든, 그 결과는 언제나 선하고 행복해졌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단순하고 가벼웠다. 수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마치 가파른 험난한 고지를 오른 듯한 뿌듯함이나 훈장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면 집중수행에서 가졌던 집중과 알아차림은 어김없이 무뎌졌다.
마음은 분명 부드러워졌고, 내려놓아진 것도 많았고, 번뇌가 일어나는 빈도도 줄었다. 그런데 수행 중 경험했던 눈부시도록 화사한 생기는 일상에서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나는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좌절하고 괴로워했다. 그래서 다시 집중수행을 기다리곤 했다.
생각해 보면, 집중 수행은 단거리 달리기와 닮았다. 단거리 선수들이 보폭과 빈도를 최적화하며 전력 질주하듯, 집중수행도 불필요한 외부 조건을 차단하고, 현재 일어나는 대상을 명확히 알아차리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알아차리는 빈도를 최대한 높일 때, 빠르게 변하는 대상을 놓치지 않고, 바른 앎이 생겨난다.
하지만 마라톤은 다르다. 전력 질주할 수 없고, 페이스를 조절해야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 날씨나 지형 등 변수도 많아 무리하게 속도를 내면 포기하기 쉽다. 일상에서의 수행도 마찬가지이다. 집중수행처럼 할 수 없는데도 같은 기대치를 가지면 좌절과 실망이 커져 수행을 지속하기 어렵다. 더구나 일상에서는 늘 변수가 있고, 혼자서 해야 하기에 꾸준한 의지와 끈기가 없으면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위빠사나 수행으로 번뇌인 탐진치를 소멸하는 것임을 알아도 내려놓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몸과 마음의 고통이나 괴로움이 있거나, 수행에 관한 호기심이나 열정이 있을 때 수행이 쉬워진다. 하지만 그러한 동기가 없을 때 수행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군불을 때다가 땔감이 떨어지면 불이 약해진다. 이때 새로운 땔감을 넣어주면 화력이 살아난다. 이 화력 같은 역할이 집중수행이다.
그러나 만약 불이 꺼지면 불씨를 살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 온기도 사라진다.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바로 일상에서 수행을 지속하는 것과 같다. 이 점에서 일상생활이 진정한 수행처임을 실감하게 된다. 일상에서는 수행처처럼 몸과 마음을 보호할 수 없기에, 수행의 진정한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더구나 일상에서는 알아차림 없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면 그 결과가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바로 나타날 때가 많다. 또한, 뿌리 깊은 무지로 굳어진 잘못된 습관이 고쳐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일상이다.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일상 수행은 원인과 결과를 가르쳐주는 좋은 스승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든, 집중수행이든 일상 수행이든, 지금 현재 하고 있는 것에 마음이 있으면 된다. 수행을 구분하지 말고, 탐욕이나 성냄으로 하지 않으려 할 때 수행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알아차린 것에 만족하게 된다. 불만족이 생기면 그저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된다.
그저 일어난 것이 무엇이든 알아차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정리되자 마음이 어느새 평화로워진다. 이제 이 마음도 내려놓고 다시 한 걸음 나아가려 한다.
주변에서 나이가 들었다는 소리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기인 것 같다. 그렇다고 스스로 나이 들었다고 말하기에는 연세 드신 분들께 혼날 것 같은 애매한 나이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생전 하지 않던 달리기가 하고 싶었다. 가벼운 운동 후 몇 분씩 달려 보는데, 이 정도로 ‘달리기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작은 계기로 집중수행과 일상 수행에 대한 생각이 정리되었다.
그동안 나는 어느 곳에서 집중수행을 하든, 그 결과는 언제나 선하고 행복해졌고, 작은 것에 만족하며 단순하고 가벼웠다. 수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면, 마치 가파른 험난한 고지를 오른 듯한 뿌듯함이나 훈장을 받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면 집중수행에서 가졌던 집중과 알아차림은 어김없이 무뎌졌다.
마음은 분명 부드러워졌고, 내려놓아진 것도 많았고, 번뇌가 일어나는 빈도도 줄었다. 그런데 수행 중 경험했던 눈부시도록 화사한 생기는 일상에서는 좀처럼 찾아오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나는 그런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좌절하고 괴로워했다. 그래서 다시 집중수행을 기다리곤 했다.
생각해 보면, 집중 수행은 단거리 달리기와 닮았다. 단거리 선수들이 보폭과 빈도를 최적화하며 전력 질주하듯, 집중수행도 불필요한 외부 조건을 차단하고, 현재 일어나는 대상을 명확히 알아차리는 데 온 힘을 쏟아야 한다. 알아차리는 빈도를 최대한 높일 때, 빠르게 변하는 대상을 놓치지 않고, 바른 앎이 생겨난다.
하지만 마라톤은 다르다. 전력 질주할 수 없고, 페이스를 조절해야 끝까지 완주할 수 있다. 날씨나 지형 등 변수도 많아 무리하게 속도를 내면 포기하기 쉽다. 일상에서의 수행도 마찬가지이다. 집중수행처럼 할 수 없는데도 같은 기대치를 가지면 좌절과 실망이 커져 수행을 지속하기 어렵다. 더구나 일상에서는 늘 변수가 있고, 혼자서 해야 하기에 꾸준한 의지와 끈기가 없으면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위빠사나 수행으로 번뇌인 탐진치를 소멸하는 것임을 알아도 내려놓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몸과 마음의 고통이나 괴로움이 있거나, 수행에 관한 호기심이나 열정이 있을 때 수행이 쉬워진다. 하지만 그러한 동기가 없을 때 수행을 이어가기는 쉽지 않다. 군불을 때다가 땔감이 떨어지면 불이 약해진다. 이때 새로운 땔감을 넣어주면 화력이 살아난다. 이 화력 같은 역할이 집중수행이다.
그러나 만약 불이 꺼지면 불씨를 살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 온기도 사라진다.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바로 일상에서 수행을 지속하는 것과 같다. 이 점에서 일상생활이 진정한 수행처임을 실감하게 된다. 일상에서는 수행처처럼 몸과 마음을 보호할 수 없기에, 수행의 진정한 본질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더구나 일상에서는 알아차림 없이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면 그 결과가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이 바로 나타날 때가 많다. 또한, 뿌리 깊은 무지로 굳어진 잘못된 습관이 고쳐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일상이다. 좋은 결과든 나쁜 결과든, 일상 수행은 원인과 결과를 가르쳐주는 좋은 스승이기도 하다.
어떤 경우든, 집중수행이든 일상 수행이든, 지금 현재 하고 있는 것에 마음이 있으면 된다. 수행을 구분하지 말고, 탐욕이나 성냄으로 하지 않으려 할 때 수행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그리고 알아차린 것에 만족하게 된다. 불만족이 생기면 그저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된다.
그저 일어난 것이 무엇이든 알아차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정리되자 마음이 어느새 평화로워진다. 이제 이 마음도 내려놓고 다시 한 걸음 나아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