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바다 끝자락의 한적한 어촌에 기러기를 사랑한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새벽녘 해변에 서서 그는 날개를 편 기러기들에게 먹이를 주곤 했습니다. 기러기들은 그의 손등과 어깨에 익숙하게 내려앉았고, 마치 그와 하나가 된 듯 친밀하게 어울렸습니다. 아버지는 이 광경을 지켜보다 욕심이 생겼습니다. 아들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해 큰돈을 벌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이 기러기들을 시장에 팔면 우리에게 큰 재산이 될 것이다"라며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아들은 처음엔 거부했으나, 결국 아버지의 간곡한 말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오직 적막뿐이었습니다. 기러기들은 그의 곁을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수행을 시작한 지 수년이 되면서 점차 호흡이 잘 감지되었고 그에 따라 산란한 마음도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업무에도 적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기 전 컴퓨터 앞에 앉아 선명한 마음이 들 때까지 호흡에 집중하기를 몇 달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평소엔 대략 10분 안에 집중의 초입에 들어가지만, 15분, 20분이 지나도 집중이 잘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산란함과 불안감만 더해졌습니다. 그 후 유튜브나 웹서핑 등으로 한동안 시간을 흘려보내곤 했습니다. 얼마 동안 ‘나의 수행력이 약해서 그랬겠지’ 생각하며 지내다 최근에는 중요한 일은 하지 않고 웹서핑에 정신없이 빠져있는 자신을 문득 보게 되었습니다. 혹시 수행과 연관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의 행동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시작했을 때가 오히려 더 집중이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잠깐만 생각해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수행의 본질은 욕망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하는데, 잘 되고자 하는 욕망을 설정하고 시작하니 당연히 엇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마치 주차 브레이크를 올리고 액셀레이터를 밟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눈앞 일의 성공을 위해 마음을 비우고 거기서 피어오르는 지혜를 이용하자? 얼마나 뻔한 장삿속인가! 더욱 집중은 멀어지고 그럴수록 마음은 더 초조해지며 결국 파탄난 채 마음은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쳐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직시하자 나의 마음에게 너무 미안하여 비통한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마치 내 심장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귀한 외아들을 어떤 이익을 위해 사지로 내몬 부모의 심정과 같았습니다. 근면과 성실, 유능함이라는 미덕에 숨겨진 더러운 욕망을 보지 못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이 얼마나 컸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일을 시작할까?
그러나 이 또한 결국 집착과 산란으로 끝나버림이 뻔하기에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1분만 사마디로 호흡에만 집중해 보자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1분이 흐른 다음 바로 눈앞의 작업에 3분간만 마치 사마디의 대상처럼 집중해 보자. 대신 핸드폰이나 웹서핑, 이메일 체크, 잡담 등을 일절 배제한 채 3분만 버티는 건 가능할 것 같았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 후 5분간만 더 유혹을 참고 집중을 지속해 보고 여기서 10분만 더 진행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1, 3, 5, 10분을 단계적으로 목표 삼아 조금씩 늘려나가니 큰 결심 없이도 총 20분간 집중을 이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 30분으로 집중을 늘리니 어느덧 '벌써 30분이 흘렀나?' 싶을 정도로 편안했습니다. 종종 30분씩 세 타임을 연속적으로 더 지속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최소 50분 이상을 업무에 큰 부담 없이 집중할 수 있게 되어 목표하진 않았지만 실제로 업무 능률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중요한 일일수록 오히려 시작을 회피하고 시작하더라도 온갖 걱정으로 제대로 집중할 수 없어, 일 자체보다 감정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훨씬 많았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때 결심만 하면 위와 같은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집중으로 흘러 들어갔다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싫은 일, 어려운 일, 새로 시작하는 일 등 여러 꺼림이 있었던 일들도 위와 같은 습관으로 대하니 마치 다양한 종류의 번뇌를 성냄이 없이 대할 때, 생겼다 사라짐만을 관찰하듯이 마음이 편안히 일을 처리하고 털어내는 기분입니다.
한가지 새로 관찰한 점은 몰입이 깊을수록 그 대상에 지나치게 빠져버린다는 측면입니다. 몰입의 중요성에 대해 세상에선 상당히 강조하나 너무 근시안적으로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습니다. 이 경우 복싱 선수의 자세가 떠오릅니다. 상대방과 맞붙을 때 점차 거리가 너무 가까워집니다. 원래 팔을 뻗은 길이 정도가 적절한데, 시합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거리가 점차 좁혀지면서 훅이나 어퍼컷 같은 치명적인 공격에 노출됩니다. 그래서 코치가 지도할 때는 항상 '거리 유지!'를 외치며 지속해서 경고합니다. 그처럼 집중 상태에 있더라도 계속 사띠를 유지해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목적을 잊지 않게 됩니다. '보고서 작성 중', '미팅 중', '수업 함', '장부 정리 중' 등 주기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내면에서 말하며 일깨워야 어느 순간 '내가 뭘 하고 있지?'와 같은 자신을 잃는 일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복싱에서 상대가 체급이 높거나 숙련자일 때 본능적으로 두려워 점차 상대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이 경우 매우 위험한데, 상대가 코너로 몰아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곳에서 연신 펀치를 허용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때도 코치가 '거리 좁혀!' 하며 계속 경고를 합니다. 이처럼 집중이 산만함으로 넘어가는 순간 마음속으로 '산만함!'을 외치며 스스로 경고할 때, 나와 약속했던 10분 혹은 30분의 집중 시간을 깨지 않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띠가 나의 마음을 주시하며 맴돌고 적절할 때 경고를 날리는 코치와 같네요.
이제 나의 마음에 진심으로 말합니다.
"그동안 너무 미안했다, 마음아!"
깊은 바다 끝자락의 한적한 어촌에 기러기를 사랑한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새벽녘 해변에 서서 그는 날개를 편 기러기들에게 먹이를 주곤 했습니다. 기러기들은 그의 손등과 어깨에 익숙하게 내려앉았고, 마치 그와 하나가 된 듯 친밀하게 어울렸습니다. 아버지는 이 광경을 지켜보다 욕심이 생겼습니다. 아들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해 큰돈을 벌어보고 싶어졌습니다. "이 기러기들을 시장에 팔면 우리에게 큰 재산이 될 것이다"라며 끈질기게 설득했습니다. 아들은 처음엔 거부했으나, 결국 아버지의 간곡한 말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오직 적막뿐이었습니다. 기러기들은 그의 곁을 떠나 영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수행을 시작한 지 수년이 되면서 점차 호흡이 잘 감지되었고 그에 따라 산란한 마음도 점차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업무에도 적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일을 시작하기 전 컴퓨터 앞에 앉아 선명한 마음이 들 때까지 호흡에 집중하기를 몇 달간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평소엔 대략 10분 안에 집중의 초입에 들어가지만, 15분, 20분이 지나도 집중이 잘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산란함과 불안감만 더해졌습니다. 그 후 유튜브나 웹서핑 등으로 한동안 시간을 흘려보내곤 했습니다. 얼마 동안 ‘나의 수행력이 약해서 그랬겠지’ 생각하며 지내다 최근에는 중요한 일은 하지 않고 웹서핑에 정신없이 빠져있는 자신을 문득 보게 되었습니다. 혹시 수행과 연관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그동안의 행동을 회상해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일을 시작했을 때가 오히려 더 집중이 좋았던 것 같았습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잠깐만 생각해도 금방 알 수 있었습니다. 수행의 본질은 욕망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하는데, 잘 되고자 하는 욕망을 설정하고 시작하니 당연히 엇나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마치 주차 브레이크를 올리고 액셀레이터를 밟는 것과 같은 상황이었습니다. 눈앞 일의 성공을 위해 마음을 비우고 거기서 피어오르는 지혜를 이용하자? 얼마나 뻔한 장삿속인가! 더욱 집중은 멀어지고 그럴수록 마음은 더 초조해지며 결국 파탄난 채 마음은 일을 시작도 하기 전에 지쳐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직시하자 나의 마음에게 너무 미안하여 비통한 감정이 밀려왔습니다. 마치 내 심장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을 귀한 외아들을 어떤 이익을 위해 사지로 내몬 부모의 심정과 같았습니다. 근면과 성실, 유능함이라는 미덕에 숨겨진 더러운 욕망을 보지 못했던 자신의 어리석음이 얼마나 컸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예전처럼 아무 생각 없이 바로 일을 시작할까?
그러나 이 또한 결국 집착과 산란으로 끝나버림이 뻔하기에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1분만 사마디로 호흡에만 집중해 보자 하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렇게 1분이 흐른 다음 바로 눈앞의 작업에 3분간만 마치 사마디의 대상처럼 집중해 보자. 대신 핸드폰이나 웹서핑, 이메일 체크, 잡담 등을 일절 배제한 채 3분만 버티는 건 가능할 것 같았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그 후 5분간만 더 유혹을 참고 집중을 지속해 보고 여기서 10분만 더 진행해 보았습니다. 그렇게 1, 3, 5, 10분을 단계적으로 목표 삼아 조금씩 늘려나가니 큰 결심 없이도 총 20분간 집중을 이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 30분으로 집중을 늘리니 어느덧 '벌써 30분이 흘렀나?' 싶을 정도로 편안했습니다. 종종 30분씩 세 타임을 연속적으로 더 지속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렇게 최소 50분 이상을 업무에 큰 부담 없이 집중할 수 있게 되어 목표하진 않았지만 실제로 업무 능률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중요한 일일수록 오히려 시작을 회피하고 시작하더라도 온갖 걱정으로 제대로 집중할 수 없어, 일 자체보다 감정적으로 소모되는 에너지가 훨씬 많았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때 결심만 하면 위와 같은 방법으로 자연스럽게 집중으로 흘러 들어갔다 가벼운 마음으로 일을 마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싫은 일, 어려운 일, 새로 시작하는 일 등 여러 꺼림이 있었던 일들도 위와 같은 습관으로 대하니 마치 다양한 종류의 번뇌를 성냄이 없이 대할 때, 생겼다 사라짐만을 관찰하듯이 마음이 편안히 일을 처리하고 털어내는 기분입니다.
한가지 새로 관찰한 점은 몰입이 깊을수록 그 대상에 지나치게 빠져버린다는 측면입니다. 몰입의 중요성에 대해 세상에선 상당히 강조하나 너무 근시안적으로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는 치명적 단점이 있습니다. 이 경우 복싱 선수의 자세가 떠오릅니다. 상대방과 맞붙을 때 점차 거리가 너무 가까워집니다. 원래 팔을 뻗은 길이 정도가 적절한데, 시합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거리가 점차 좁혀지면서 훅이나 어퍼컷 같은 치명적인 공격에 노출됩니다. 그래서 코치가 지도할 때는 항상 '거리 유지!'를 외치며 지속해서 경고합니다. 그처럼 집중 상태에 있더라도 계속 사띠를 유지해야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목적을 잊지 않게 됩니다. '보고서 작성 중', '미팅 중', '수업 함', '장부 정리 중' 등 주기적으로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내면에서 말하며 일깨워야 어느 순간 '내가 뭘 하고 있지?'와 같은 자신을 잃는 일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복싱에서 상대가 체급이 높거나 숙련자일 때 본능적으로 두려워 점차 상대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이 경우 매우 위험한데, 상대가 코너로 몰아 더 이상 도망갈 수 없는 곳에서 연신 펀치를 허용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때도 코치가 '거리 좁혀!' 하며 계속 경고를 합니다. 이처럼 집중이 산만함으로 넘어가는 순간 마음속으로 '산만함!'을 외치며 스스로 경고할 때, 나와 약속했던 10분 혹은 30분의 집중 시간을 깨지 않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사띠가 나의 마음을 주시하며 맴돌고 적절할 때 경고를 날리는 코치와 같네요.
이제 나의 마음에 진심으로 말합니다.
"그동안 너무 미안했다, 마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