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 선원에서의 일이다. 아마도 주말 수행을 마치고 나서 수행자들끼리 법담을 나누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구걸을 하는 노인이나 아이들 뒤에 그들의 돈을 착취하는 나쁜 집단이 있다는 뉴스를 봤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 말을 듣고 서로 이제부터는 함부로 기부를 하면 안 되겠다는 말이 오고 갔다. 좋은 의도가 악용되는 세태에 대한 걱정도 이어졌다. 한쪽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A 수행자가 입을 열었다.
“그들을 도우려는 선한 마음을 실행하면 그 뿐인데, 그 이후의 일을 염려하거나 속지 않게 위해 돕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바른 것일까요?”
순간 모두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한 순간에 반전된 분위기. 사람들의 말에 이끌려 이제부터 조심하거나 기부하지 말아야지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정말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수행자가 달리 보였다. 법담을 나누며 도반에게 배우는 것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선한 의도를 기억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상대하는 사람 뒤에 확실하게 나쁜 조직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그냥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실천하면 그 뿐이지 않은가. 속지 않으려고 경계하고 의심하느라 돕고자 하는 행위를 그만두는 것이 나도 좋고 상대에게도 좋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때 A 도반의 그 말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인색한 삶을 선택하며 살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리석고 순진하게 무조건 믿고 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속지 않거나 피해보지 않으려고 경계하고 의심하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며 습관적으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보시하면서 연말을 따뜻하게 보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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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민2024-12-01 11:45
나름의 정당함을 이유로 마음 속에 의심, 경계 등의 작은 악의가 피어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회사에서 그런 경우가 많은데, 최근엔 저의 옹졸함이 참 부끄럽다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마음이 좀 더 넓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과 함께 수행으로 번뇌를 그대로 보고자 노력하고 싶습니다. 수행처 도반분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12월 한 달의 시작을 수행자님 글을 통해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봅니다. 감사드립니다.
저도 같은 자리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이 가물가물. 맞는지 모르겠지만, 그때 선원에 보시하려고 가져온 보시금을 선원에 보시하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지하철에서 구걸하시는 분께 보시하는 게 나을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라는 질문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선원에만 100% 보시하고 나머지는 사양하겠다 하는 태도도 맞지도 않고 그렇게 할 수도 없겠지요. 때에 따라 알면서도 속고, 속을지라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 것처럼 상황에 맞게 그때그때 보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저는 생각이 좀더 가치있는 곳에 내가 할 수 있는 보시나 에너지를 쓰는 것이 좋겠다에 많이 기울어져 있습니다.
압구정 선원에서의 일이다. 아마도 주말 수행을 마치고 나서 수행자들끼리 법담을 나누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가 구걸을 하는 노인이나 아이들 뒤에 그들의 돈을 착취하는 나쁜 집단이 있다는 뉴스를 봤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 말을 듣고 서로 이제부터는 함부로 기부를 하면 안 되겠다는 말이 오고 갔다. 좋은 의도가 악용되는 세태에 대한 걱정도 이어졌다. 한쪽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A 수행자가 입을 열었다.
“그들을 도우려는 선한 마음을 실행하면 그 뿐인데, 그 이후의 일을 염려하거나 속지 않게 위해 돕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바른 것일까요?”
순간 모두 입을 다물고 말았다. 한 순간에 반전된 분위기. 사람들의 말에 이끌려 이제부터 조심하거나 기부하지 말아야지 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정말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수행자가 달리 보였다. 법담을 나누며 도반에게 배우는 것이 많았던 시절이었다.
선한 의도를 기억하지 않으면 한 순간에 습관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상대하는 사람 뒤에 확실하게 나쁜 조직이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그냥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진심을 담아 실천하면 그 뿐이지 않은가. 속지 않으려고 경계하고 의심하느라 돕고자 하는 행위를 그만두는 것이 나도 좋고 상대에게도 좋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 때 A 도반의 그 말이 아니었다면, 아마 나는 인색한 삶을 선택하며 살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리석고 순진하게 무조건 믿고 살자는 이야기는 아니다. 다만 속지 않거나 피해보지 않으려고 경계하고 의심하다가 정말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며 습관적으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보시하면서 연말을 따뜻하게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