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향기

선원이 용두동에 있을 때, 첫 자애 수행을 했다. 자애 수행 역시 그 당시 아주 생소한 수행이었는데 참가자가 많았다.

기억에 남는 것은, 나 이외의 사람들이나 불특정 다수를 향한 자애 수행은 처음 해 보는 신선함과 열정으로 어려움이 없었다. 그런데 자신을 대상으로 하자 갑자기 장벽을 만난 듯 나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았다. 애를 쓰면 간신히 흐릿하게 이미지가 생기는 듯하다 이내 사라져 버렸다. 할 수 없이 자애 문구에 집중하려 했지만, 이것 역시 매우 건조해서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내가 행복을 바라지 않고 있었음을.

또 다른 기억은 ‘행복한 기억 떠올리기’에서 몇몇 행복 영상이 지나고 자애 수행하는 좌선 모습에 종착했다. 그렇게 나타난 이미지를 그때는 알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존재할 때가 가장 행복한 것임을. 이렇듯 나의 첫 자애 수행은 마치 빨간 사과가 되기 전 가을에 잠시 나왔다 사라지는 풋사과 같았다.

두 번째 자애 수행은 선원이 압구정동에 있을 때였다. 당시 선원 수행에 참여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왔다. 지금 기억으론 집중 자애 수행은 3일을 했던 것 같다.

자애 수행이 시작되면서 한 첫 문구가 ‘내가 모든 적개심에서 벗어나기를!’ 이었다. 그런데 이 문구를 반복할 때마다 눈물이 났다. 특별히 생각나는 사건이 떠오른 것도 아닌데 눈물이 자꾸 솟구쳤다. 마치 ‘적개심’이란 화살에 맞아 꼼짝달싹할 수 없는 것처럼 도저히 다음으로 넘어갈 수 없었다. 어디서 기원한 간절함인지 모르지만 아주 간절하게 내가 모든 적개심에서 벗어나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했다.

이 기원은 하루하고도 반나절이 넘어가도록 계속 이어졌다. 그러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수정같이 깨끗해지고 가벼워졌다. 아주 환하게 밝아진 마음은 다음 대상으로 자연스럽게 옮겨갔고, 떠올린 대상마다 아주 깨끗하게 반짝거리며 빛났다. 자애의 대상을 넓혀가면 갈수록 충만한 기쁨과 행복감도 더욱 커졌다. 어느덧 기원하고 푼 대상이 사라지고 찰칵 하얀빛 속에 그대로 머물렀다. 행복했다.

...

만약 내가 자애 수행을 만나지 못하고 긴 긴 생 쌓아 놓은 성냄의 쳇바퀴 속에 살고 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가정만으로도 끔찍하다. 왜냐하면 성냄은 너무도 빠르게 불행한 마음과 고통으로 치닫게 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내가 알게 된 자애는 불행한 마음을 따스하고 건강한 행복으로 이끈다. 거칠고 어두운 마음을 부드럽고 환한 마음으로 이끈다. 또한 자신은 물론이고 나 이외의 존재에게도 안녕과 행복을 기원할 수 있는 넓은 마음과 순수함으로 이끈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안타깝게도 성냄은 크든 작든, 미세하든 조건만 되면 쉽게 일어날 수 있음을 수행하면 할수록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수행의 끈을 놓을 수 없다. 그리고 기원하게 된다. 부디 자애가 깊어져 성냄에서 멀어지고 마음에서 향기가 나는 수행자가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