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의 종교를 총망라하거나 종교를 초월한다면 정신 계발법이란 결국 두 가지의 범위에 있게 됩니다.
먼저 마음을 고요히 하는 사마타 수행법은 한 대상에만 일편단심 하는 것입니다. 한 대상에 집중했을 때, 산란한 마음이 빠르게 고요해질 수 있는 힘을 갖습니다. 그러나 집중이 안 되었을 때는 평화스러움이나 고요함 등은 지속되지 않고 다시 원상태인 산란한 상태가 됩니다.
사마타는 대상이 꼭 한 가지입니다. 예를 들면 좌선을 할 때 배의 일어남과 꺼짐을 보고 있는데 생각이 밖으로 나가면, 그 생각을 따라 밖으로 나가지 말고 일어남-꺼짐의 일차적인 대상을 그대로 보고자 노력하는 것이 사마타입니다. 사마타에서는 한 가지 대상을 정하면 그 외에는 다른 것에 관심을 두거나 다른 인식대상으로 바꿔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위빠사나는 대상이 한 가지로만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위빠사나는 모든 것이 다 대상이 됩니다. 즉 이 순간에 인식하는 것이 다 대상이 됩니다. 예를 들면 1차적 대상인 배의 일어남, 꺼짐을 보고 있을 때 마음이 밖으로 나가면, 밖으로 나간 것은 지금이고 배가 일어나고 꺼지는 것을 안 것은 과거입니다. 그러면 과거에 매달리지 말고 현재 밖으로 나간, 인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알았을 때, 시간은 멈춰있지 않고 계속 지나가고 대상 또한 그곳에 멈춰있지 않고 다른 데로 갑니다. 다른 데로 간다는 것은 장소를 이동했다는 의미가 아니라 한 대상에 집중되어 있더라도 그 대상이 바뀌는 것을 안다는 뜻입니다. 대상이 바뀌더라도 알고 있기에 번뇌가 들어오지 않고 변화를 보기에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지혜가 일어납니다.
위빠사나는 지금 이 시간, 내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다 대상이 됩니다. 졸음이 오면 졸음이 대상이 되고 가려우면 가려움이 대상이 되고 뻐근함이나 성냄, 수행이 안 될 때의 불쾌함 등 모든 것이 수행인 알아차림의 대상이 됩니다. 알아차림(사띠)의 대상은 4가지(身, 受, 心, 法)입니다.
사마타는 정신집중만 있습니다. 위빠사나는 빠른 정신집중과 지혜를 갖습니다. 그러나 수행하는 데 있어서는 사마타와 위빠사나가 자전거 바퀴처럼 굴러가야 합니다. 사마타는 집중수행에서 벗어나 현실로 왔을 때는 집중 상태의 희열, 즐거움, 고요함을 느끼지 못하고, 위빠사나는 대상을 벗어나더라도 수행을 기억한다면 이어질 수 있습니다. 위빠사나는 이 순간에 인식하고 있는 모든 것이 대상이 되므로 정신집중이 언제나 끊이지 않고 지속될 수 있는 장점이 있고 그 장점이 있는 만큼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