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행위를 알아차리는 것은 수행자의 삶이다. 즉, 수행자가 자신의 행위를 관찰하지 않는다면 그는 그의 삶을 잃은 것이다. 알아차림(Sati) · 마음집중(Samaadhi) · 지혜(Panna)가 없기 때문에 그는 수행자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 하나의 모든 일상의 행위에 대해 알아차려야 한다. 만일 일상의 행위에 대해서 마음을 챙길 수 없다면, 수행의 향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대념처경에는 가고, 서고, 앉고, 눕는 동작 뿐만 아니라 앞뒤를 볼 때도, 구부리거나 펼 때도, 옷을 입을 때도, 음식을 먹고 마시고 씹고 삼키는 동안에도, 대소변을 볼 때도, 말하거나 침묵하고 있을 때도, 잠자리에 들거나 일어날 때도 모두 분명하게 알아차릴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일상의 행위를 알아차리지 않기 때문에 마음챙김의 큰 공백이 생기는 것으로, 한 순간에서 다음 순간으로 끊어지지 않는 알아차림의 지속성이 필요하다. 수행자의 ‘알아차림의 기능(念根: satindriya)’에는 하루종일 지속적이고 끊어짐이 없는 마음챙김이 내포되어 있다.
지속적이고, 끊어짐 없는 알아차림으로부터 깊은 마음집중이 생긴다. 깊은 마음집중이 있어야만, 수행자는, 정신적 육체적 현상의 본래적인 본질을 자각할 수 있고, 이 자각에 의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여러분이 지속적이고 끊어짐 없는 알아차림을 지니고 있다면, 매일 매일 발견하게 될 수많은 새로운 현상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집중수행기간 동안에 여러분이 해야할 일은 마음 챙기는 것밖에 없기에 서두를 일이 없다. 마하시 사야도께서는 수행자를 아주 천천히 움직이는 환자에 비유했다. 아주 천천히 움직이면 수행자의 마음은 저절로 집중하게 되기에, 만일 여러분이 수행을 통해서 무엇인가 성취하고자 원한다면 천천히 움직이는 일에 익숙해져야 한다.
선풍기가 빨리 돌아갈 때, 여러분은 있는 그대로 그것을 보지 못한다. 만일 천천히 돌아간다면 그때는 쉽게 선풍기 날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내 몸과 내 마음이 아닌, 정신적 육체적 과정을 있는 그대로 명확하게 보기 위해서는 수행자는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바쁘게 일을 하는 사람들 틈에 있을 때, 수행자는 주위 사람들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말고 아주 힘있게 자신의 모든 정신적 육체적 행위들을 알아차려야 한다.
말하는 것은 수행의 향상을 이루는데 가장 큰 장애이다. 5분 동안 이야기하면, 수행자의 하루 동안의 마음집중이 깨져버린다. 차라리 잠을 자는 것이 더 좋다. 왜냐하면 잠을 자는 것은 자신만 수행에 게을러진 것이지만, 대화를 하는 경우는 다른 수행자의 수행까지 방해하는 것이기에 수행에서 가장 위험한 행위로서 알아야 한다.
읽지도 말고, 외우지도 말고, 회상하지도 말고 오직 현재 자신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알고자 해야 한다. 그런 것들은 수행자들의 수행 진보에 있어서 장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