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빠
사 나

붓다의 가르침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

2012-08-07

 붓다께서는 B.C(기원전) 589년에 깨달음을 얻으셨고, 그때 당시의 나이는 서른 다섯이셨습니다. 깨달음을 얻으신 이후 45년 동안 모든 살아 있는 존재의 행복을 위해 춥거나, 덥거나, 피곤하거나, 아프신 것과 상관없이 수많은 가르침을 모든 살아 있는 존재들에게 베푸셨습니다. 붓다께서는 다음과 같은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습니다.


 “아난타여, 나는 계(siila)와 담마(dhamma, 법)를 모두 너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것으로 내가 이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너는 너 자신의 스승이 되도록 하여라.”

 

 이 세상 속에 붓다께서 남기신 계(silla)와 담마가 존재하는 한, 붓다께서 살아 계신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붓다께서 남기신 계와 법은 Sasana(가르침)라고 불립니다. 이러한, Sasana(사사나)의 존재가 의미가 있는 것은, 이것이 계(siila)와 담마(dhamma, 법) 에 의지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만약 계와 법이 사라지게 된다면, 붓다의 가르침 또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일이 생긴다면, 온 세상은 무지의 어둠으로 뒤덮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붓다의 제자들은 붓다의 가르침이 사람들의 무지로 말미암아 잘못 이해되지 않고,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붓다께서 남기신 계와 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러 세대를 통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위태롭게 하는 많은 장애물이 발생을 하게 되었습니다. 빅쿠들은 이러한 장애물에 꺾이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향상시키고 전파하기 위해서 대규모의 회의를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을 계승하는 왕들과 사람들은 이 회의의 성공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붓다께서는 마하빠리닙바나(완전한 열반)을 B.C(기원전) 554년에 얻으셨습니다. 이때가 불교의 시대를 여는 첫해로 여겨집니다. 현재, 붓다께서 이 세상을 떠나신 이래로 이천오백 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모두 여섯 번의 테라와다 불교의 대규모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여섯 번의 회의에서는 수백 명의 빅쿠들이 모여서 붓다의 가르침을 하나 되어 증명하는 의미로 붓다께서 남기신 계(siila) 와 담마(dhamma, 법)을 엄격하게 원래의 텍스트에 따라 어떠한 변경이나, 추가나 바뀜이 없이 암송하였습니다.



● 첫 번째 결집회의


 붓다께서 세상을 떠나 신지 3개월 후에 첫 번째의 큰 회의가 라자가하시 근처의 웨하라산의 삿따빠니 동굴(Sattapanni Cave Pavillion)에서 열렸습니다. 수밧다라는 빅쿠는 나이가 들어서 빅쿠가 되었는데, 붓다께서 세상을 떠나 신지 칠일 째 되던 날에 여러 명의 빅쿠들 앞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비난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모욕적인 말을 듣자마자, 마하카싸빠께서는 붓다의 가르침을 보존하기 위한 최초의 회의를 열기로 결심을 하셨습니다. 오백 명의 아라한과 우빨리, 아난타를 포함한 분들이 이 회의에 참석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8월의 보름부터 시작되어 일곱 달 간 지속되었습니다. 

 


● 두 번째 결집회의


 두 번째 회의는 B.C(기원전) 443년경에 웨살리시 근처에 있는 와루카마(Valukarama) 수행처에서 개최되었습니다. 웨지(Vajji)의 웨살리(Vesali)로부터 온 빅쿠들이 붓다의 가르침을 열 가지 방법으로 불법적으로 수정을 하여 가르치고 실행을 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일에 대해 논의를 하기 위해 회의가 개최되었습니다. 야싸(Yasa)의 지휘 아래 칠백 명의 아라한들이 참석을 하였고, 웨살리 왕국의 왕 칼라소카(Kalasoka) 등과 그밖에 사람들은 이 회의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회의는 팔 개월 간 지속하였습니다.

 


● 세 번째 결집회의


 세 번째 회의는 빠탈리뿌따(Pataliputta) 시 안에 있는 아소카르마(Asokarama)라는 사원에서 B.C(기원전) 308년에 개최되었습니다. 이 회의에는 육만 명의 수행자들이 상가의 법도에 따라 참가를 하였습니다. 이 회의는 타락한 삶과, 이단의 시선으로 오염된 Sasana(가르침)를 바로 잡기 위한 것이 주요한 이유였습니다. 또한, 천 명의 아라한들이 Sasana(가르침)를 지키기 위해 모였습니다. 마하목갈리뿟따 띠사는 회의를 주재하였고, 빠탈리뿌따 왕국의 스리담마소카(Siridhammasoka) 왕은 회의를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물품들을 제공하였습니다. 회의는 구 개월 간 지속되었고, 세 번째 회의가 무사히 끝난 후 Sasana(사사나)를 많은 이들에게 알리기 위해 아홉 개의 임무를 맡은 사람들은 각각 아홉 개의 장소로 보내졌습니다. 다섯 명의 아라한의 임무는 소나(Sona) 테라와 우따라(Uttara) 테라에 의해 지휘되었습니다.

 


● 네 번째 결집회의


 네 번째 회의는 B.C(기원전) 94년에 스리랑카의 말라야(Malaya) 구역에 있는 알로카(Aloka) 장소에서 열렸습니다. 그때 당시 스리랑카 사람들은 반역자에 의해 아픔을 당하고 배고픔과 기아로 12년간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빅쿠들은 붓다의 가르침을 보존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연로한 빅쿠들은 만약 이와 같은 위험이 다시 닥친다면 많은 빅쿠들이 붓다의 계와 법을 마음으로 지키지 못할 것을 염려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네 번째 회의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마하담마락키타(Mahadhammarakkhita) 의 지도 아래 오백 명의 빅쿠들은 종려 나뭇가지 위에 붓다께서 남기신 모든 말씀들을 기록하였습니다. 와따가마니(Vattagamani) 왕과 말라야(Malaya) 지역의 사람들은 이 회의를 지원하기 위해 노력을 다했습니다. 네 번째 회의는 일 년 동안 지속 되었습니다.



● 다섯 번째 결집회의


 다섯 번째 회의는 미안먀의 만달라야(Mandalay)에서 1871년 11월 첫 번째 보름 날에, 열렸습니다. 종려나무에 기록된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랫동안 지속하지 못하였습니다. 게다가 거기에는 많은 훼손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 붓다의 가르침은 대리석 석판에 다시 기록되었습니다. 이천 사백 명의 빅쿠들은 자가라 비왐사(Jagarabhivamsa) 테라의 지도로 만달레이(Mandalay)에서 모여 붓다의 가르침을 암송하였고 이 회의로 말미암아 붓다의 말씀은 다시 한번 많은 사람에 의해 증명이 되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처음으로 칠백 스물아홉 개의 대리석 석판에 기록되었습니다. 이 작업이 끝나는데 칠년 육개월 십사일이 걸렸습니다. 다섯 번째의 회의 후에 빨리어로 된 붓다의 가르침은 미얀마어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붓다의 계와 법은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전 세계에 멀리 퍼져 나갔습니다.



● 여섯 번째 결집회의


 1954년 5월에, 여섯 번째 회의가 미안먀 양곤의 마하빠사나(Mahapasana) 에서 열렸습니다. 그때 당시 미얀마는 100년 동안 영국의 식민지였고, 붓다의 사사나(Sasana:가르침)는 이 기간에 많이 약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여섯 번째 회의는 붓다의 사사나(Sasana:가르침)을 증진시키고 정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열리게 되었습니다. 아홉개 테라와다 불교 국가로부터 온 이천오백 명의 빅쿠들이 이 회의에 참가하였습니다. 레와따(Revata), 얀 사야도(Yan Sayadaw)께서 이 회의 의장이 되었습니다.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 소바하나(Sobhana)와 민군 사야도(Mingun) 등이 회의를 이끌기 위한 책임을 맡았습니다.


 불교의 교리에 대한 질문들은 다섯 국가, 미안먀, 스리랑카, 타일랜드, 라오스, 캄보디아 국가에서 온 사람들에 의해 질문이 되었고, 곧 해결이 되었습니다. 다른 29개국도 이 회의를 지원하기 위해 도움을 주었습니다. 이 회의에서는 빨리어 경전으로 된 붓다의 가르침 뿐만 아니라, 논평과, 주석으로 달린 문장들이 다시 설명되었습니다. 붓다의 가르침은 어떠한 변경이나 수정 없이 증명이 되었습니다.


 1980년 6월의 어느 보름 날에 테라와다 불교를 순수하게 지키고 전파하기 위하여, 상가(Samgha) 마하나야까(Mahanayaka) 위원회가 조직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종교의식은 상가에 의해 실행이 되었고 재가 신자들은 서로 협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붓다의 사사나(Sasana:가르침) 의 증대와 영구보존과 모든 나라의 도덕적인 발전을 위한 여러 가지가 척도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기부 덕분으로 두 개의 빠리야띠 사사나 (Pariyatti Sasana, 경전학교) 대학들이 양곤과 만달라야에 세워졌습니다. 비합리적인 교리와 임무들은 제거되었고, 붓다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기 위한 사명을 띤 사람들이 외국에 까지 보내졌습니다. 이상이 불교 기원의 역사를 시대 순으로 간략히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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