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빠
사 나

사성제 1

2012-04-26

<고통의 원인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1. 존재하고자 하는 갈애 또는 집착, 삶에 대한 집착 (바와딴나:BHAVATANHA) 


 이 갈망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살고자 하는 욕망,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을 말합니다. 자신의 생명과 자신의 종족을 유지하려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이 가지는 본능적인 욕망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의, 식, 주, 의약품 등을 필요로 하며, 이 외에도 본능적으로 성적인 욕구를 가집니다. 성적인 욕구는 앞서 말한 인간의 기본적인 생존의 필수 요건 못지않게 강력한 것으로서, 경제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다섯 번째 생존 요건으로 간주되기도 합니다. 인간에게는 삶을 유지하고 보존하려는 본능으로 인해 여러 가지 것들을 필요로 하는 마음이 생기며, 이성적인 욕구로 인해 다른 사람에 대한 ‘소유욕’이 생깁니다.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한 다섯 가지 요건이 모두 제공되었을 때 과연 인간이 100% 만족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도 인간은 결코 만족하지 않습니다. 소유에 대한 욕구가 해결되면 존재에 대한 새로운 욕구가 생기게 됩니다. 즉, 남보다 더 뛰어나게 되고, 더 유명해지고,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칭찬받고 존경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는 것이지요. 니체는 이것을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으로 인해 인간은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남보다 더 가지려고 싸우고 경쟁하면서 결국에는 자신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닫게 되는 것입니다.


 법(담마:Dhamma)이나 올바른 진리를 바탕으로 생활하는 사람은 “진리가 곧 힘이다.”라는 원칙 아래 이러한 욕구를 지혜로운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에 철저히 물질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도덕적인 진리는 상관하지 않은 채 “힘이 곧 진리이다, 결과만 좋으면 수단과 방법은 어떠해도 상관없다.”는 원칙 아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합니다. 이렇게 극도의 물질주의적인 관점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초래하는가는 역사를 살펴보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극도의 물질주의적 관점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희생되었습니다. 또한,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으로 인해 가족, 친구 간의 살인, 배신 또는 기타 다양한 종류의 범죄나 학살 등이 수없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한 번 잡으면 무엇이든지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게 해주는 ‘권력’, ‘힘’은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이나 사탕과도 같습니다. 누구든 달콤한 초콜릿이나 사탕을 보거나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먹고 싶어 군침이 돌지 않습니까? 특히나, 초콜릿이나 사탕을 보는 사람이 절제를 모르는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에 있는 경우에는 십중팔구 이 달콤함의 유혹에 쉽사리 빠져버리게 됩니다. 권력이나 힘도 마찬가지입니다. 권력이나 힘을 한 번이라도 맛 본 사람은 마치 마약에 중독되는 것처럼 이것에 중독이 되어 버립니다. 일단 권력과 힘을 소유하게 되면 영원히 소유하기 위해 집착하게 됩니다. 또한, 이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바르고 그릇된 것을 무시한 채 모든 종류의 수단을 동원할 수도 있게 됩니다. 이처럼 수단은 무시하고 결과만 중시하는 세계, 소유하고자 하는 집착과 존재에 대한 집착이 원동력이 되어 굴러가는 세상에서 인간은 스스로 만들어내는 고통으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 받습니다. 


 인간이 자신과 자신이 속한 사회를 보존하고 보호하려고 할 뿐 아니라 자신의 ‘현재 상태’보다 더 나아지고자 하는 의지, 즉 이미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권력과 힘을 원한다는 사실이 바로 인간이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의 영향 아래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니체는 지적하였습니다. 인간은 경쟁에서 승리하고 싶어 하고 다른 사람을 지배하고 싶어 합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이나 학계 또는 철학 분야의 문학 작품을 보면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이 군대나 정치 분야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납니다. 경쟁은 인간 삶의 모든 측면에서 공공연하게 때로는 암묵적으로 일어납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보다 더 뛰어나거나 더 특별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경쟁에 뛰어 들어야할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니체는 앞서 서술한 권력과 힘에 대한 이야기를 도덕성의 문제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장 위대한 정복자는 자기 자신의 욕망을 정복한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니체가 말한 초인은 자신의 동물적 본능을 이겨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즉, 자기를 정복하거나 또는 인간 내면의 가장 저급한 욕망을 정복한 사람인 것이죠. 이것이 바로 가장 위대한 승리입니다.


 그의 이러한 견해는 “Atta Have Jitam Seyyo: 자기 자신을 정복하는 것보다 더 큰 승리는 없다.”라고 설하신 부처님의 말씀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가장 위대한 투사이며, 이렇게 보았을 때 초인이란 다름 아닌 부처님과 그의 성스러운 제자들을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인간이 자신의 저급한 본능 또는 불교 용어로는 속세의 때나 업을 극복해 낸다면 세상은 훨씬 살기 좋은 곳이 될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불필요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며 인간은 지금보다 훨씬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소유와 존재에 대한 욕구가 많아지고 즐거움과 권력을 더 많이 추구할수록, 인간 자신과 그가 속한 사회에 더 많은 문제가 생겨납니다.


 불교도적인 경지에서 경쟁이란 내면적인 것을 말합니다. 즉, 자기 내면의 힘과 나약함이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경쟁하거나, 온갖 생각과 감정에 맞서서 내면적인 투쟁을 벌이는 것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끊임없는 내면의 투쟁에서 어느 측면이 더욱 우세한지를 볼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또는 퇴보했는지를 볼 수 있는 자가 진단 과정입니다. 감정보다 내면의 힘이 항상은 아니지만 종종 승리하거나, 나약함보다 내면의 힘이 더 많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면 자신이 진보한 것입니다. 만약 이와 반대의 상황이라면 자신이 퇴보한 것이므로 이에 대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해야만 합니다.


 이제 위에서 설명한 내용을 정리해보면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 또는 존재에 대한 갈망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일으키는 또 다른 원인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권력과 힘에 대한 욕망을 자신의 감정과 각종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내면의 힘에 대한 의지와, 자신의 저급하고 악한 본성을 극복하려는 의지로 전환해야만 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정화 또는 승화라고 합니다.


 브와딴하(BHAVATANHA)의 두 번째 의미, 삶에 대한 집착을 살펴봅시다. 이것은 인간과 동물이 자신의 삶을 유지하고 보존하기 위해 투쟁하게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요인입니다. 모든 생명체가 이렇듯 소중하게 여기는 삶은 실상 행복보다는 더 많은 고통을 그들에게 안겨줍니다. 가난한 사람들과 비참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이 얼마나 불행한 인생을 살아가는지,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이 얼마나 버거운 부담과 고통을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를 살펴보십시오. 노예가 주인을 섬기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섬기는 대가로 받는 고통을 말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들은 살기를 원하고 그들의 몸이 살아 있는 한 여전히 그 몸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이들은 앞으로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살아갑니다. 절망적인 순간에도 자신의 삶을 유지하면서 자신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사실로 스스로를 위로합니다. 이것이 바로 삶에 대한 집착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모든 생명체에게 있어서 삶이란 가장 소중한 것이라는 말이 사실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비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삶도 이렇게 소중할진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지고 온갖 즐거움으로 둘러싸인 부유하고 행복한 사람들의 인생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두말할 것도 없이 이들은 자신의 삶에 집착하고 고통, 질병, 죽음을 두려워하면서 자기 인생의 이방인이 되어 갑니다.



*주1) 우리나라에서는 길거리에서 개들이 몰려 다니거나, 먹이를 두고 싸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없지만, 동남아시아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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