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1월 4일~15일
보리수선원
<차례>
1. 수행자가 준비해야 할 네 가지
2. 왜 우리는 수행해야 하는가?
3.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4. 말루카풋타숫타
5. 열 가지 나쁜 행위
6. 열 가지 공덕
7. 위빠싸나 수행의 이익
8. 행복으로 가는 길 (1)
9. 행복으로 가는 길 (2)
10. 자애관의 이익
4. 말루까뿟따숫따 (MalukyaPuttaSutta)
오늘은 말루까뿟따숫따(經)에 대해 법문하려고 합니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말루까뿟따라는 비구에게 가르쳐 주셨고, 경장의 쌍윳타니카야(상응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경은 위빠싸나 수행의 원칙에 대해 근본적인 지식을 주기 때문에 나는 오늘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제따와나 수행처에 계실 동안 말루까뿟따의 요청으로 이 경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처님께 그가 요청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거룩하신 스승님, 담마를 간단하게 저에게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담마의 정수를 듣고 저는 혼자서, 지속적으로 방심하지 않고, 맹렬히, 그리고 일심으로 수행할 것입니다.”
실제로 말루까뿟따는 부처님께 수행의 주제를 자신에게 맞게 주시기를 요청했고, 그는 조용한 곳에서 바른 방법으로 수행하기를 원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은 집중에 도움을 주기에 수행에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만일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면 산란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혼자 있을 수 없다면 자신의 일에만 마음을 써야만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일에 마음 쓰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수행자는 전적으로 담마에 마음을 집중하면서, 말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이 무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을 바라봐서도 안됩니다.
‘방심하지 않는’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수행처에서, 수행자들은 항상 방심하지 않고 수행자들이 담마의 깨달음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한 대상을 보았을 때 방심 하지 않고 알아차립니다.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닿고 또는 생각할 때 들음, 냄새 맡음, 맛봄, 닿음, 생각함을 마음챙김합니다. 작은 행동이 나 움직임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관찰되지 않고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수행자들은 마음을 기민하게 유지하고 결코 대상들 중에서 더 좋은 것을 얻고자 부주의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루까뿟따의 요청에 응하셔서 다음과 같이 그에게 위빠싸나 수행에 있어서 기본에 관해 질문을 하셨습니다.
“말루까뿟따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가 이전엔 보지 못한, 지금 보지 못하는, 또는 미래에 보고 싶지 않은 어떤 보이는 대상들이 있다. 이런 대상들이 너에게 욕구, 욕망 또는 애정을 야기 하겠느냐?”
말루까뿟따는 부처님의 질문에 답변하기를 “경험하지 못한 또는 상상조차 못한 감각대상들에 대해서 어떤 욕구, 욕망, 애정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서 부처님께서 계속 가르쳐 주셨습니다. “말루까뿟따여! 담마는 보여지고, 들리고, 생각하고, 아는 순간에 있다. 네가 볼 때 단지 그것을 보기만 하고, 네가 들을 때 단지 그것을 듣기만 하고, 네가 생각할 때 단지 그것을 생각만 하라, 그리고 알 때 그것을 단지 알기만 하라.”
여기서 번뇌는 감각대상들이 여섯 개의 감각의 문을 넘어서 들어올 수 없을 때 일어날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여섯 개의 감각의 문에서 감각 대상들이 나타날 때 어떻게 번뇌를 쫓아낼 지에 대한 질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봄, 들음, 생각함, 앎의 네 가지 방식과 관련하여 위빠싸나 수행의 요점을 설명 하셨습니다. 여기서 냄새 맡고, 맛보고, 닿는 감각들은 간결을 위하여 생각의 범주에 포함 시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상, 불만족, 무아의 세 가지 특성에 대한 수행은 봄, 들음, 생각함, 앎의 네 가지 방식의 핵심입니다. 이들 감각 의식과 감각 대상은 ‘나’, ‘나의 것’ 또는 ‘나 자신’은 아닙니다. 대상은 단지 여섯 개의 감각의 문에 한 순간에 나타나고 수행자는 단지 그 순간에 보거나 듣기만 합니다.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위빠싸나 방법의 요체 입니다.
봄이 일어날 때 단지 그것을 보기만 하십시오. 뭔가 더 이상하지 마십시오. 경전에 말한 것과 같이 “봄에 있어서, 그대로 보기만 하라.” 들음이나 맛봄에 대한 생각과 정의 수련은 보는 것의 그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들음이 일어날 때, 단지 그것을 듣기만 하십시오. “들음에 있어서, 그대로 듣기만 하라.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마라.” 이것은 빨리어로 ‘Sutesutamattambhavissati.’입니다. 그러나 단지 봄, 들음으로 짧게 멈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초보 수행자들은 봄의 과정이 형성되는 생각의 순간을 포착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상이 일어난 즉시 머물기가 불가능하므로, 초보 수행자는 실제로 그것을 알기 원하는 것처럼 마음의 눈에서 나타나는 대상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통과해 가는 것은 무엇이나 항상 확인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초보자들은 그것을 식별하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 보여진 대상에 눈의 의식을 맞추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보이는 대상에 대해 생각을 하는 마음의 의식에 의지해야 합니다. 들음, 냄새맡음 등의 과정 또한 모두 같습니다.
말루까뿟따가 여섯 감각의 활동들에 마음챙김을 하여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수행자가 지속적으로 마음챙김 한다면 그는 귀라는 문(듣는 기관)에 나타난 것을 단지 들을 뿐입니다. 더 이상 어떤 것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이 법문을 하고 있을 때 여러분들은 내가 발음하고 있는 각 음절에 집중한다면 여러분들은 확실히 내가 여러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의 중요성과 의미를 놓칠 것입니다. 내가 만드는 소리의 인식에만 멈춘다면 여러분들은 개념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알아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들은 것에 관해 어떤 개념을 형성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냄새를 맡을 때 여러분들은 단지 냄새를 아십시오. 의식은 그 이상 더 멀리 흘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촉각감각을 느껴서 그것에만 멈추었을 때 여러분들은 단지 여러분들이 뭔가에 닿은 것, 또는 뭔가 여러분에게 닿은 것을 알 것이고 여러분들은 그 이상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정신적인 대상들에 있어서도 역시 여러분들은 마음의 의식이 개념을 형성함이 없이 일어나는 그 지점에서 멈출 것입니다. 그러면 번뇌는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수행자가 봄, 들음의 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관찰할 때 그 수행자는 사라짐의 지혜를 깨달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라짐이 일어난 그 순간에 드러날 것입니다. 수행자가 그 순간에 머문다면 위빠싸나 지혜는 강해질 것이고 그 이익이 따를 것입니다. 다음의 부처님의 가르침이 위의 설명을 입증합니다.
“말루까뿟따여! 만약, 네가 볼 때, 그것을 보기만 하라. 네가 들을 때, 그것을 듣기만 하라. 생각할 때, 단지 그것을 생각하기만 하라. 알 때, 그것을 알기만 하라. 그러면 네 가지 각 한 감각 대상들이 너와 아무 상관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여러분들이 지각한 감각 대상들에 관련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은 감각 대상들이 통상 야기하는 탐, 진, 치(욕망, 성냄, 미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봄, 들음 등에서 멈추기를 실패한다면 여러분들의 마음은 그런 열정에 집착 할 것이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그런 감각 대상을 생각할 때마다 다시 탐, 진, 치(욕망, 성냄, 미혹)가 야기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말루까뿟따여! 네 가지 각 한 감각 대상과 아무 상관이 없을 때 너는 그 감각 대상들에 아무런 발판이 없게 될 것이고 그 대상들에 발판을 잃을 때 너는 이 세상에 이곳에 있지도 않을 것이며 다른 세상의 저 곳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아니함은 고통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다.”
말루까뿟따에게 간단하게 설명된 경을 듣고서, 여러분들 모두 위빠싸나 수행을 맹렬히 수행하기를 바라고 탐, 진, 치(욕망, 성냄, 미혹)가 없고 고통의 종말인 닙바나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2002년 11월 7일
2002년 11월 4일~15일
보리수선원
<차례>
1. 수행자가 준비해야 할 네 가지
2. 왜 우리는 수행해야 하는가?
3.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4. 말루카풋타숫타
5. 열 가지 나쁜 행위
6. 열 가지 공덕
7. 위빠싸나 수행의 이익
8. 행복으로 가는 길 (1)
9. 행복으로 가는 길 (2)
10. 자애관의 이익
4. 말루까뿟따숫따 (MalukyaPuttaSutta)
오늘은 말루까뿟따숫따(經)에 대해 법문하려고 합니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말루까뿟따라는 비구에게 가르쳐 주셨고, 경장의 쌍윳타니카야(상응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경은 위빠싸나 수행의 원칙에 대해 근본적인 지식을 주기 때문에 나는 오늘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부처님께서 제따와나 수행처에 계실 동안 말루까뿟따의 요청으로 이 경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처님께 그가 요청한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거룩하신 스승님, 담마를 간단하게 저에게 가르쳐 주셨으면 합니다. 담마의 정수를 듣고 저는 혼자서, 지속적으로 방심하지 않고, 맹렬히, 그리고 일심으로 수행할 것입니다.”
실제로 말루까뿟따는 부처님께 수행의 주제를 자신에게 맞게 주시기를 요청했고, 그는 조용한 곳에서 바른 방법으로 수행하기를 원했습니다. 혼자 있는 것은 집중에 도움을 주기에 수행에 있어서 필수적입니다. 만일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면 산란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혼자 있을 수 없다면 자신의 일에만 마음을 써야만 하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일에 마음 쓰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수행자는 전적으로 담마에 마음을 집중하면서, 말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들이 무얼 하는지 다른 사람들을 바라봐서도 안됩니다.
‘방심하지 않는’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수행처에서, 수행자들은 항상 방심하지 않고 수행자들이 담마의 깨달음을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한 대상을 보았을 때 방심 하지 않고 알아차립니다.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닿고 또는 생각할 때 들음, 냄새 맡음, 맛봄, 닿음, 생각함을 마음챙김합니다. 작은 행동이 나 움직임도 알아차리지 못하거나 관찰되지 않고서는 그냥 넘어가지 않습니다. 수행자들은 마음을 기민하게 유지하고 결코 대상들 중에서 더 좋은 것을 얻고자 부주의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말루까뿟따의 요청에 응하셔서 다음과 같이 그에게 위빠싸나 수행에 있어서 기본에 관해 질문을 하셨습니다.
“말루까뿟따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네가 이전엔 보지 못한, 지금 보지 못하는, 또는 미래에 보고 싶지 않은 어떤 보이는 대상들이 있다. 이런 대상들이 너에게 욕구, 욕망 또는 애정을 야기 하겠느냐?”
말루까뿟따는 부처님의 질문에 답변하기를 “경험하지 못한 또는 상상조차 못한 감각대상들에 대해서 어떤 욕구, 욕망, 애정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서 부처님께서 계속 가르쳐 주셨습니다. “말루까뿟따여! 담마는 보여지고, 들리고, 생각하고, 아는 순간에 있다. 네가 볼 때 단지 그것을 보기만 하고, 네가 들을 때 단지 그것을 듣기만 하고, 네가 생각할 때 단지 그것을 생각만 하라, 그리고 알 때 그것을 단지 알기만 하라.”
여기서 번뇌는 감각대상들이 여섯 개의 감각의 문을 넘어서 들어올 수 없을 때 일어날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여섯 개의 감각의 문에서 감각 대상들이 나타날 때 어떻게 번뇌를 쫓아낼 지에 대한 질문이 생깁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봄, 들음, 생각함, 앎의 네 가지 방식과 관련하여 위빠싸나 수행의 요점을 설명 하셨습니다. 여기서 냄새 맡고, 맛보고, 닿는 감각들은 간결을 위하여 생각의 범주에 포함 시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상, 불만족, 무아의 세 가지 특성에 대한 수행은 봄, 들음, 생각함, 앎의 네 가지 방식의 핵심입니다. 이들 감각 의식과 감각 대상은 ‘나’, ‘나의 것’ 또는 ‘나 자신’은 아닙니다. 대상은 단지 여섯 개의 감각의 문에 한 순간에 나타나고 수행자는 단지 그 순간에 보거나 듣기만 합니다. 그 이상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위빠싸나 방법의 요체 입니다.
봄이 일어날 때 단지 그것을 보기만 하십시오. 뭔가 더 이상하지 마십시오. 경전에 말한 것과 같이 “봄에 있어서, 그대로 보기만 하라.” 들음이나 맛봄에 대한 생각과 정의 수련은 보는 것의 그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들음이 일어날 때, 단지 그것을 듣기만 하십시오. “들음에 있어서, 그대로 듣기만 하라.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마라.” 이것은 빨리어로 ‘Sutesutamattambhavissati.’입니다. 그러나 단지 봄, 들음으로 짧게 멈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초보 수행자들은 봄의 과정이 형성되는 생각의 순간을 포착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현상이 일어난 즉시 머물기가 불가능하므로, 초보 수행자는 실제로 그것을 알기 원하는 것처럼 마음의 눈에서 나타나는 대상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의 문을 통과해 가는 것은 무엇이나 항상 확인되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초보자들은 그것을 식별하기 위한 노력에 있어서 보여진 대상에 눈의 의식을 맞추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보이는 대상에 대해 생각을 하는 마음의 의식에 의지해야 합니다. 들음, 냄새맡음 등의 과정 또한 모두 같습니다.
말루까뿟따가 여섯 감각의 활동들에 마음챙김을 하여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수행자가 지속적으로 마음챙김 한다면 그는 귀라는 문(듣는 기관)에 나타난 것을 단지 들을 뿐입니다. 더 이상 어떤 것도 없을 것입니다. 내가 이 법문을 하고 있을 때 여러분들은 내가 발음하고 있는 각 음절에 집중한다면 여러분들은 확실히 내가 여러분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것의 중요성과 의미를 놓칠 것입니다. 내가 만드는 소리의 인식에만 멈춘다면 여러분들은 개념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알아차릴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여러분들이 들은 것에 관해 어떤 개념을 형성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찬가지로 냄새를 맡을 때 여러분들은 단지 냄새를 아십시오. 의식은 그 이상 더 멀리 흘러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촉각감각을 느껴서 그것에만 멈추었을 때 여러분들은 단지 여러분들이 뭔가에 닿은 것, 또는 뭔가 여러분에게 닿은 것을 알 것이고 여러분들은 그 이상은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정신적인 대상들에 있어서도 역시 여러분들은 마음의 의식이 개념을 형성함이 없이 일어나는 그 지점에서 멈출 것입니다. 그러면 번뇌는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수행자가 봄, 들음의 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관찰할 때 그 수행자는 사라짐의 지혜를 깨달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라짐이 일어난 그 순간에 드러날 것입니다. 수행자가 그 순간에 머문다면 위빠싸나 지혜는 강해질 것이고 그 이익이 따를 것입니다. 다음의 부처님의 가르침이 위의 설명을 입증합니다.
“말루까뿟따여! 만약, 네가 볼 때, 그것을 보기만 하라. 네가 들을 때, 그것을 듣기만 하라. 생각할 때, 단지 그것을 생각하기만 하라. 알 때, 그것을 알기만 하라. 그러면 네 가지 각 한 감각 대상들이 너와 아무 상관없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여러분들이 지각한 감각 대상들에 관련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들은 감각 대상들이 통상 야기하는 탐, 진, 치(욕망, 성냄, 미혹)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봄, 들음 등에서 멈추기를 실패한다면 여러분들의 마음은 그런 열정에 집착 할 것이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그런 감각 대상을 생각할 때마다 다시 탐, 진, 치(욕망, 성냄, 미혹)가 야기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말루까뿟따여! 네 가지 각 한 감각 대상과 아무 상관이 없을 때 너는 그 감각 대상들에 아무런 발판이 없게 될 것이고 그 대상들에 발판을 잃을 때 너는 이 세상에 이곳에 있지도 않을 것이며 다른 세상의 저 곳에 있지도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아니함은 고통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다.”
말루까뿟따에게 간단하게 설명된 경을 듣고서, 여러분들 모두 위빠싸나 수행을 맹렬히 수행하기를 바라고 탐, 진, 치(욕망, 성냄, 미혹)가 없고 고통의 종말인 닙바나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2002년 11월 7일